OPEC 가입 국가만 수출 거금 챙겨… ‘산유국 국민은 불행’ 역사 반복

식량을 받기 위해 앞다퉈 손을 내미는 앙골라의 아이들.
‘나라는 석유 부자, 그러나 국민은 지독한 가난’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3월 21일자로 올해 1월 31년 만에 처음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새로운 회원국이 된 아프리카 앙골라의 ‘속내’를 전하는 기사를 실었다. 대규모 석유개발이 그 나라 보통 국민들에게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세계 역사가 가르쳐준 경험이 열두 번째 OPEC 가입국이 된 앙골라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IHT는 보도했다.
요즘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에서 호텔방을 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두 달 전에 예약을 해야 겨우 잡을 수 있을 정도다. 방값도 선진국 대도시 못지않게 비싸다. 하룻밤 보내는 데 적어도 200달러는 줘야 한다.
루안다 호텔 방을 찾는 주고객들은 석유회사 관계자들이다. 미국의 엑손모빌과 세브론, 영국의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 세계적인 석유 메이저 회사와 많은 하청업체 직원들이 앙골라를 부지런히 드나들고 있다. 이들은 미국 텍사스 등에서 전세기를 빌려 앙골라로 날아온다.
인구 70% 하루 2달러 미만 수입
미국, 영국 이외에도 이탈리아 에니사는 지난해 석유 채굴권을 사는 데 9억달러를 썼고, 중국의 시노펙(중국석유화학공사)은 해상광구 2곳에 22억 달러를 투자했다. 석유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는 앙골라 해안에서 또 다른 ‘노다지’를 찾기 위한 세계 주요국들의 경쟁 열기는 아프리카의 더위를 무색케 하고 있다.
석유개발이 속속 성과를 거두면서 앙골라는 지난해 하루 15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했다. 현재 세계 열 번째 석유 수출국이다. 이런 위상을 감안, OPEC는 각별한 ‘대접’을 해주며 1975년 가봉 이후 처음으로 앙골라를 새 회원으로 영입했다.
OPEC는 앙골라에는 기존 회원국과 달리 원유 생산쿼터를 제한하는 OPEC 규정을 면제해주는 특혜를 줬다. 앙골라 국영 석유회사 마뉴엘 비센테는 최근 열린 OPEC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하며 “우리는 이제 진정한 석유 수출국 대우를 받고 있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특권층에만 고유가 ‘단물’ 돌아가

위_앙골라는 어린이 4명 중 1명이 다섯살도 안 돼 숨질 정도로 의료가 낙후되어 있다. 아래_앙골라 국민의 70%는 하루 수입이 2달러도 되지 않는 절대 빈곤에 허덕인다. 사진은 한 앙골라 여성이 밭에서 일하는 모습.
앙골라 석유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밝은 편이다. 앙골라의 확인된 매장량은 114억 배럴에 달한다. 게다가 석유 메이저들의 탐사 열기가 뜨거워 새로운 석유 발견 소식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해안에서 160㎞ 정도 떨어진 바다가 앙골라 석유의 보고다.
앙골라는 2011년에는 지금보다 생산량을 2배 가까이 늘려 지금의 쿠웨이트와 비슷한 하루 평균 260만 배럴의 석유를 세계시장에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앙골라는 석유의 판로 걱정도 없다. 정치적 이유 때문에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미국이 아프리카 석유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 석유 수입국인 미국은 현재 15% 정도인 아프리카산 석유 수입 비중을 2015년까지 25%로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
에너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중국 또한 아프리카 산유국에 들이는 ‘정성’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중국은 지난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직접 앙골라를 찾았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또 다른 석유 대국 나이지리아를 방문했다. 중국이 지난해 아프리카에서 사온 석유는 하루 77만 배럴에 달한다.
앙골라는 지난해 석유 수출로 300억 달러(약 28조5000억 원)라는 거금을 벌었다. 세계적인 반도체회사를 가진 한국이 반도체 수출을 통해 번 돈과 맞먹는다.
그러면 석유 수입은 앙골라 보통 사람들의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대답은 ‘전혀 아니다’라는 것이다. IHT는 세계은행의 자료를 인용해 앙골라 인구의 70%는 하루 2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국가 총 석유 수입을 국민 1인당으로 계산하면 국민 한 사람당 2500달러 정도다. 그런데도 국민 70%가 절대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이다. 글자를 전혀 읽지 못하는 사람도 인구의 30%를 넘고 있다.
IHT는 “국민 대다수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어린이 4명 중 1명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숨진다”고 밝혔다. 신문은 “앙골라의 이런 상황은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400달러에 불과한 나이지리아와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석유 팔아 번 돈이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만성화된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의 부패 때문이다. 아프리카 다른 나라들처럼 앙골라도 정부의 투명성이 크게 부족하다.
앙골라는 27년간 지독한 내전을 겪은 나라다. 전쟁은 2002년에 겨우 끝났다. 미국과 옛 소련이 벌인 냉전의 아프리카판 대리전이 앙골라에서 벌어졌다. 내전 동안 앙골라에서는 50만 명이 숨지고 수많은 집이 부서졌다. 이런 희생을 치른 국민들에게는 ‘검은 황금’의 혜택이 전혀 돌아가지 않고 몇몇 지도자와 일부 특권계급만 고유가의 ‘단물’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앙골라를 비롯한 아프리카 자원부국들이 국민을 위한 국가체제와 분배시스템을 만들지 않을 경우 하늘이 준 자원이 도리어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원의 관할권을 두고 내부 갈등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자원이 없다면 신경조차 쓰지 않을 다국적 기업이나 강대국들이 내정에 지나치게 간섭할 여지가 커져 석유를 내주고 피와 눈물을 받는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부/김용석 기자 kimy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