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에게 묻는다, 너 윤리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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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 소비자 의식 변화… 환경친화적·아동착취 없는 기업 제품 선호

코스타리카 바나나농장에서 농부들이 수확한 바나나를 포장하고 있다.

코스타리카 바나나농장에서 농부들이 수확한 바나나를 포장하고 있다.

미국·유럽에서 소비자의 지형이 ‘합리적 소비자’에서 ‘윤리적 소비자’로 변화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좋은 제품을 싼 값에 구입하려는 대다수 합리적 소비자 사이에서 좋고 싼 제품이라도 기업이 생산·유통과정에서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았는지, 아동을 착취하지 않았는지를 살피는 윤리적 소비자들이 등장했다. 또 조금 값이 비싸더라도 환경보호를 강조하는 기업, 공정 무역에 힘쓰고 있는 기업 등의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 흐름도 보이고 있다. 더 나아가 소비자들이 비(非) 윤리적 기업을 윤리적 기업으로 바꾸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미국·유럽 소비자들의 변화로 기업들은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지점에 서게 됐다.

“비싸도 윤리적 기업 제품 구입” 최근 서구 소비자 30%가 ‘윤리적 소비’를 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설문 결과가 파이낸셜타임스에 보도됐다.

영국의 마케팅조사기관 GfK NOP가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5개국에 거주하는 시민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분의 1이 5~10%의 돈을 더 내고라도 윤리적 경영을 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겠다고 답했다. 국가별로는 영국 소비자들이 윤리적 기업의 제품을 가장 잘 알고 있었으며 윤리적 소비 성향을 가장 강하게 드러냈다. 영국 응답자들은 소매 금융 업체인 ‘코업’을 가장 윤리적인 기업으로 꼽았고, 다음으로 바디샵을 선정했다.

신문은 소비자들의 성향이 윤리적 소비 쪽으로 강하게 움직이는 추세라고 진단하고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위험 관리’가 아닌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GfK NOP 브랜드 전략센터장인 크리스 데이비스는 “어떤 기업 제품이 윤리적 브랜드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면 영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영국의 한 시장분석기관이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분의 1이 환경오염을 유발하지 않는 유기 농산물 생산 기업 제품을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답한 바 있어 ‘윤리적 소비’가 추세적 현상임을 보여줬다. 또 영국에서 공정 무역을 통해 상품을 파는 시장이 최근 4년 간 62%나 성장하는 등 윤리를 도입한 기업들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업 정책 변화까지 요구 소비자들이 기업 윤리를 강조한 기업에 손을 들어준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재활용·재사용과 같은 환경보호운동, 공정 무역, 동물실험 반대를 강조하며 1976년 탄생한 영국의 화장품기업 바디샵은 소비자들의 대단한 호응에 힘입어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1986년 20대 초반의 세 남자가 미국 보스턴에 설립한 이퀄 익스체인지는 공정거래 커피를 수입하며 전 세계의 농업 협동조합들과 관계를 맺어 사업에 성공했다. 현재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지사를 두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05년 전 세계 공정 무역의 규모는 전년보다 37% 증가해 14억 달러에 이르렀다. 윤리기업의 대표주자들이 성공을 거듭하면서 스타벅스나 네슬레 같은 다국적 기업들도 공정 무역 시장에 뛰어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조금 더 적극적인 형태의 구매·불매 운동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영국 환경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비행기 여행 자제 캠페인은 인터넷을 통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영국 국민 10%는 기후 변화를 유발하는 항공기 여행 횟수를 줄였다고 밝혔으며 3%는 아예 항공기 여행을 중단했다고 선언했다.

윤리적 소비자들이 기업의 정책을 바꾼 사례도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서 실시한 과다 포장 사용 자제 켐페인은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슈퍼마켓을 변화시키고 있다. 소비자들은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포장지의 종류를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며 대형 슈퍼마켓에 환경오염 유발 포장지 사용 중지를 요청하는 수천 통의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이에 일부 슈퍼마켓을 중심으로 환경오염 포장지 사용 자제 논의에 들어갔다.

기업을 바꾸는 소비자 혁명 이같은 소비자의 변화는 의식의 전환에서 시작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환경오염이나 근로자 착취와 같은 사회문제가 개인이나 조직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2001년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 엔론의 회계 부정 사건을 겪으면서 소비자의 의식화는 한층 탄력을 받았다. 미국 보스턴칼리지 기업시민센터 브래들리 구긴스 소장은 “미국의 경우 엔론 사태가 사회에 던진 충격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적극적인 켐페인이 소비자들을 변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많은 개인은 건강한 사회를 소망하는 시민인 동시에 질 좋은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이기 때문에 그 접점에서 윤리적 소비가 발생했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단순히 의식을 전환한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주체로 행동할 수 있게 된 배경으로 다국적 기업의 출현과 인터넷의 발달을 꼽는다. 소비자들이 상품 생산 과정을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기업이 생긴 데다 인터넷을 통해 기업의 세부정보를 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 소비자들이 직접 인터넷의 네트워크를 통해 구매·불매 운동 등 집합적 운동을 하며 소비자의 힘을 경험, 자신감도 얻게 됐다.

전문가들은 윤리적 소비가 환경문제나 세계화에 대해 고민하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캠페인에서 일반 소비자들의 소비 행태의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진단한다. 이같은 소비의 변화가 ‘환경 파괴와 제3세계 착취 반대’ 등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새로운 정치운동의 일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기대한다.

기업의 변화는 당연히 기대되는 효과다. 구긴스 소장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sibility)이 뜨고 있는 것은 소비자들의 요구가 있기 때문”라며 “앞으로 모든 기업이 소비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논의를 더욱 강도높게 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제부/김정선 기자 kjs043@kyunghyang.o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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