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지난 원료 사용 ‘불량식품’ 유통… 회사 측 미온 대응에 소비자들 ‘배신감’

도쿄 긴자에 있는 후지야의 본점
일본의 한 유명 제과업체가 유통기한이 지난 원료를 사용한 제품을 시판해 일본 전체가 경악에 떨었다. 이 ‘불량 먹을거리’ 사건은 식생활과 관련한 민감한 이슈이기도 했지만 사건의 주인공이 명문 제과업체인 후지야(不二家)였고, 그 대응에서 매우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은 실망감에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불량’ 슈크림 판매 후지야는 케이크·양과자 체인과 슈퍼 등에서 판매하는 제과 제조가 주요 사업을 이루고 있는 제과업계 3위 업체이다. 직영점은 전국에 96개가 운영되고 있으며 프랜차이즈 707개점, 레스토랑·카페가 91개점에 이른다. 과자 공장은 전국 5곳에서 가동되고 있다.
불량 제품 문제는 사이타마현(埼玉縣)과 삿포로(札幌)에 위치한 과자 공장에서 일어났다. 사이타마현 공장에서 지난 7년 간 18차례나 소비기한이 지난 재료를 사용한 슈크림 등의 제품을 출하한 것. 일본에서 사용하는 기한 표시에는 상미기한(賞味期限)과 소비기한(消費期限)이 있는데 소비기한이 우리나라 식의 유통기한을 의미, 이 기간이 지나면 식품으로서 사용·판매해서는 안 된다. 상미기한은 기간을 넘기면 맛이 떨어지는 날짜이다.
공장에서 사용한 유통기한이 지난 원료는 유제품과 계란, 잼 등이었다. 이중 5건은 유통기한을 하루 넘긴 것이었으나 다른 사건에서는 며칠이나 지났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2004년부터 2006년 10월까지 푸딩 제품에 소비기한을 사내 기준보다 하루 더 길게 표시해 출고한 것도 수십 개에 이른다. 또 삿포로 공장에서는 지난해 5월부터 7월까지 양과자 제품에서 법령 기준을 상회하는 세균이 검출된 것이 6건 있었다.
후지이 린타로(藤井林太郞·68) 사장은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불량 제품을 출하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스캔들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후지야가 “윤리의식의 결여”로 품질관리 규정을 지키지 못했다며 “사업에 대한 자세를 전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스캔들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장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혔으나 사임시기는 “회사가 이번 문제를 해결하고 제품에 대한 품질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이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후지야는 현재 양과자의 판매 정지를 발표하고 공장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

후지이 린타로 사장(오른쪽)이 기자회견에서 사과를 하고 있는 모습.
사건 축소에만 급급 소비자들은 불량식품의 유통뿐 아니라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한 회사 측의 태도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회사는 당초 불량 원료의 사용이 “정년을 넘겨 아르바이트로 재고용된 사원의 개인적인 판단”에서 이루어졌다며 “베테랑의 안이함“에 그 화살을 돌렸다. 그러나 정밀조사 결과 불량제품 출하 15건 중 2건은 상사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건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공장과 회사 전체의 묵인하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후지야는 이 사실을 은폐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내부 메모가 발견됨에 따라 회사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후지야가 일부 직원들에게 건네준 메모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원료를 사용한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면 우리 회사는 유키지루시(雪印)유업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유키지루시유업은 2000년 오염된 우유를 출하, 소비자 1만2000 명에게 식중독을 일으킨 후 결국 문을 닫았다. 이는 일본 최악의 식중독 사건으로 기록됐다. 후지이 사장은 작년 11월 중순 자체 조사를 통해 불량제품 출하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으나 회사 측은 11일 언론에 보도된 후인 15일이 되어서야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실을 시인했다.
기자회견장에서의 불성실한 태도도 지적됐다. 후지이 사장은 대부분의 질문에 “현재 조사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품질관리 담당자는 위생관리 매뉴얼에 대해 묻는 질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아 대답할 수 없다”며 배짱을 부렸다.

신입사장 사쿠라이 야스후미
소비자들은 ‘배신감’ 후지야 사건에 일본 사회가 더욱 충격에 휩싸인 것은 이 회사가 ‘페코짱’이라는 캐릭터의 친근한 이미지로 신뢰를 구축한 전통 있는 업체라는 점 때문이다. 후지야는 메이지 시대인 1910년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양과자점으로 출발한 전통 있는 회사. 캐릭터 페코짱은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혀를 내민 귀여운 여자아이의 이미지이다. 밀크 캐러멜과 아이스크림, 푸딩, 슈크림빵 등 제품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꾸준한 인기와 신뢰를 얻어왔다.
그러나 현재 소비자들은 “당분간 후지야 제품은 살 생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회사원(남·57)은 “소비자는 회사 측이 제품을 회수하겠다고 말하지 않아도 선택해서 사지 않는다”며 “전 제품을 회수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퍼포먼스의 색이 짙다”고 지적했다.
프랜차이즈 운영 점장들도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30년 간 후지야 체인점을 운영해온 한 점장은 “후지야의 간판을 더럽힐 수 없다는 일념으로 위생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왔는데 그런 마음이 배신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 내가 만든 케이크의 재료에 불량 슈크림이 들어갔다고 생각할 때마다 즐거워하며 케이크를 사갔던 고객들의 얼굴이 떠올라 괴롭다”고 말했다.
도쿄의 한 프랜차이즈점 점장은 “후지야는 꿈을 파는 회사인데 이렇게 돼버렸다”며 “어렸을 적 생일에 후지야의 케이크를 먹었다는 손님의 소중한 추억까지 더럽혔다”고 탄식했다.

후지야의 프랜차이즈 점포.
후지야의 미래 족벌체제가 회사 경영을 느슨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은 후지야는 새로운 사장으로 사쿠라이 야스후미(櫻井康文)를 선임했다. 1995년부터 사장직에 있던 후지이 린타로는 창업자의 손자였다.
후지야는 일본 전국에 있는 707개 가맹 제과점에 대해서는 영업 중단에 대한 보상을 해줄 계획이다. 후지야는 또 이번 스캔들을 계기로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해 식품 위생과 품질 관리 체제 점검을 전담하는 위원회를 설치했다.
아사히 신문은 “소비자의 신뢰를 되돌리고 싶다면 회사 밖의 냉엄한 시선으로 경영을 일신하고 경영진 교체를 포함한 과감한 조치를 피해서는 안 된다”며 “이대로는 귀중한 재산인 브랜드파워마저 완전히 잃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제부/박지희 기자 viole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