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이 ‘잠들자’ 이라크가 ‘시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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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집행 후폭풍’ 성난 수니파 반발 확산에 부시 행정부 고민 늘어

한 어린이가 사담 후세인의 사진을 머리 위로 들고 있다.

한 어린이가 사담 후세인의 사진을 머리 위로 들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처형됐지만 이라크 정국은 여전히 산 넘어 산이다. 선고가 나고 4일 만에 서둘러 사형을 집행한 점, 처형 장면이 동영상으로 유포된 점 등이 절차의 정당성 문제를 야기하면서 수니파의 반발을 사고 있다. 국제사회 역시 아직 다른 재판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148명을 학살한 사건 하나만으로 사형을 집행한 것이 정의로운 일인지 미국에 묻고 있다.

그러나 빨리 짐싸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인 미국에 책임을 묻는 것은 헛수고일지도 모른다. 후세인 처형의 후폭풍이 몰아치자 미국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정의실현인가 복수인가 재판과정도 불공정하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처형절차에 대한 논란은 더욱 뜨겁다. 우선 택일문제다. 사형이 집행된 12월 30일은 이슬람 최대 축제인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가 시작되는 날이다. 후세인 재판의 주심을 맡다 정치적 압력으로 물러났던 리즈가르 모하메드 아민 판사는 “이라크 법률은 희생제 기간 중 사형집행을 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정부가 이같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처형을 강행한 것은 후세인 지지자인 수니파들에게 린치를 가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은 희생제 이후로 사형을 미루자는 의견을 이라크에 전달했으나 누리 알 말리키 총리가 서둘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말리키 총리는 백악관의 ‘최고위급 인사’와 상의했다고 반박한다. 미국이 세운 현 이라크 정부가 과연 미국의 입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따져봤을 때 미국 측 주장은 선뜻 믿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사형명령서에 서명한 사람이 말리키 총리뿐이라는 점도 적법성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사형을 집행하려면 대통령과 부통령 2명이 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과 브라질을 비롯해 아랍권 친미국가인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도 재판절차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실정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점점 엉뚱한 곳으로 번지고 있다. 처형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이라크 정부가 관련자 색출에 나선 것이다. 휴대전화로 찍은 2분40초짜리 동영상은 후세인이 사형 직전 집행인들과 논쟁하는 모습은 물론, 집행이 끝난 뒤의 마지막 모습까지 담고 있다.

위_이라크의 복면한 사형집행인들이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목에 밧줄을 걸고 있다. 아래_모슬렘들이 사담 후세인 포스터 앞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위_이라크의 복면한 사형집행인들이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목에 밧줄을 걸고 있다. 아래_모슬렘들이 사담 후세인 포스터 앞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이 동영상은 수니파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후세인의 고향 티크리트 주민들 수백 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항의시위를 벌였고 바그다드 북부 둘루이야 지역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뉴욕타임스는 “복수심에 눈이 먼 시아파 정부의 성급한 행동이 후세인을 범죄자에서 순교자로 만들었다”며 “후세인 처형이 이라크의 불길한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슬그머니 발 빼는 미국 처형 직후 미국은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사형이 집행되던 날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후세인이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들은 뒤엔 미리 준비한 짧은 성명을 발표하는 것으로 소감을 대신했다. 2003년 후세인을 체포한 직후 “참 잘 된 일”이라며 즉흥적으로 감정을 표출했던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후세인이 사라진다 해서 이라크 문제가 절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현실 인식 때문이다.

미국은 종파간 분쟁을 진정시키고 이라크에서 빠져나오는 게 최대 목표다. 그러나 후세인 처형과 동영상 파문으로 수니파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미국을 고민스럽게 하고 있다. 시아파 지도자들마저 종파 간 화해보다 복수에 치중한다면 부시 행정부가 조만간 발표할 새로운 이라크 전략에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골치 아픈 문제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이 없는 미국은 즉각 후세인 문제와 거리두기에 나섰다. ‘우리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취하며 책임을 말리키 총리에게 떠넘기는 형국이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이라크는 주권국가이며 이라크 정부는 그들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바를 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잘메이 칼릴자드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가 이라크 정부 측에 ‘사형 집행을 희생제 이후로 미뤄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뒤늦게 전해진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말리키 총리의 퇴진설이 흘러나오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미국으로서는 말리키 총리가 미국의 부담까지 떠안고 자진 사퇴해주기를 바라고 있을 공산이 크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예상을 앞지른 조기 사형과 동영상 유포 등으로 불거진 국제사회의 비난에서 벗어나고자 후세인 문제에서 서서히 발을 빼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아파 득세하나 이라크 수니파 권력의 최고 정점이었던 후세인이 스러지면서 수니파 시대는 실질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완전히 막을 내렸다. 이에 따라 새롭게 힘을 얻은 시아파들이 수니파가 장악하고 있던 중동의 정치 지형을 뒤바꿀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시아파는 전 세계 12억 모슬렘 인구 중 15% 정도를 차지하는 이슬람의 소수파다. 그러나 이라크를 비롯해 레바논, 바레인, 이란 등에서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란은 시아파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다.

이란은 최근 이라크 문제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이라크, 시리아에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대규모 이라크 지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 시아파의 고위 정치인들이 후세인 시절 이란에 신세를 진 인연이 있어 이란의 대 이라크 영향력은 무시하기 어렵다. 이란은 레바논의 정치·무장세력 헤즈볼라에도 자금을 지원하며 시아파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수니파 국가인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이 각국 내부의 시아파들을 묶어 거대한 단일국가로 통합할 수도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시아파 일부는 이같은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이들은 수니파들이 실제로 두려워하는 것은 석유 수급문제라고 꼬집는다. 시아파가 유전을 장악할 경우 에너지 수입의 대부분을 이 지역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들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석유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국이 시아파에 힘을 몰아준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시아파 전문가 발리 나스르는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이 시아파 부활에 도움을 줬다”며 “시아파의 재기는 중동에서 수십 년 간 지속된 종파 간 균형을 흔들어 불안과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부/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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