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의 역사
여성은 어떻게 차별받아왔는가?
성(性)과 관련해 최근에는 생물학적인 의미의 ‘섹스(sex)’보다는 사회적인 의미의 ‘젠더(gender)’를 더 자주 쓴다. 많은 사람이 젠더라는 단어에서 여권운동을 연상한다. 이 시대에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이 중요해진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이 차별받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 ‘젠더’는 곧잘 사용된다.
‘젠더’라는 용어가 일반화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초 여성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성적 차별화 구조를 연구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sex’와 구별되면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용어 ‘젠더’의 ‘인기’가 치솟은 까닭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남녀차별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알게 모르게 남녀차별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여성은 여러 분야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역사가 남성 중심이라는 사실 자체가 차별을 내포하고 있다. 여성은 이미 가정에서 ‘여성다워야 한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여성다워야 한다’는 것에 반하는 행동과 사고방식은 제재당할 만큼 사회구조적으로 차별받아왔다. 더욱이 그것은 차별이 아니라 당연시되어왔다.
메리 위스너-행크스의 ‘젠더의 역사’는 역사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어떤 식으로 젠더의 역할을 부여받고 수행했는지, 또 남성과 여성의 젠더 수행 과정이 젠더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먼저 가족 안에서 ‘젠더의 역할’이 어떻게 주입되고 고착되는지 설명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역사적으로 여성은 가정 내에서 이미 소극적·수동적인 이미지인 ‘여성다워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을 받는다. 가정에서 그러할진대 사회에서는 오죽하겠는가.
경제 분야에서 보면 더욱 심하다. 여성은 대부분 ‘단순한 일’에 종사했다. 산업화 이후 남성이 하던 일도 기계화되면서 단순해지자 여성이 남성의 자리에 대신 투입됐다. 단순화는 곧 지위와 임금의 저하를 불러왔다. 산업발전과정에서 기술도 젠더화했다. 여성은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점점 더 단순한 직종으로 밀려났고 신기술이 적용되는 곳은 언제나 남성이 선점했다.
정치 분야도 마찬가지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여성이 정치를 하는 것은 심지어 ‘극악무도한 행위’로 인식되었다. 일부 학자는 국가는 가정과 같아서 가정에서 아버지 혹은 남편 등 남성의 권위와 권력이 우선시되듯 국가도 남성 군주가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일부 극단적인 주장이지만 오늘날에도 여성의 정치참여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모자란 것을 보면 이런 주장이 발휘하는 영향력은 여전한 듯하다.
이 책을 보면 ‘역할의 젠더화’ ‘젠더의 고착화’에 가장 큰 주범은 종교와 사상인 것 같다. 종교는 여성에게 순종·순결 등을 강요하다시피 했으며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들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오늘날의 사상가들까지 곧잘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의 역할을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종교와 사상의 영향은 교육으로 이어져 ‘젠더의 구조’를 더 견고하게 만든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여성차별’의 역사를 쓴 것이 아니라 남성, 여성, 그리고 ‘제3의 젠더’까지 두루 짚겠다고 했지만 책의 내용은 대부분 역사적으로 여성이 어떻게 차별받아왔는지 낱낱이 보여주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가 예로 드는 역사적·문화인류학적 자료는 저자의 설명에 객관성을 보탠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성제훈의 우리말편지
엉터리 말, 맛깔스럽게 바로잡기
한글 글자 수는 1만1172자나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글자로 만들 수 있는 우리말은 얼마나 많을까.
세계에는 3000여 개의 언어가 있으나 문자를 가진 나라는 100여 개밖에 없다. 더욱이 자국어를 가진 나라는 28개국밖에 없다. 이중 한글만이 정확한 연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사실만으로도 한글은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위대한 유산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사회에는 우리말을 바로 아는 사람보다 다른 나라 말을 더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고 대접받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말은 무수히 많다. 그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말 중에서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책은 우리가 잘못 쓰고 있는 ‘엉터리 말’들을 일상에 빗대어 맛깔스럽게 바로잡을 뿐만 아니라 눈꽃처럼 빛나는 순 우리말을 가득 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말의 의미를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올바르지 않게 사용한다.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틀리다’와 ‘다르다’이다.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라는 뜻이고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라는 뜻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혼동해 사용한다. 예를 들어보면 ‘이 꽃과 저 꽃은 틀립니다’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이 꽃과 저 꽃은 다릅니다’로 표현해야 올바른 것이다. 그러므로 앞의 ‘이 꽃과 저 꽃은 틀립니다’라는 것은 ‘틀린’ 표현이다.
어려운 단어를 사용해야 말과 글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다비하면 도복한다’라는 문장과 ‘비료를 주면 잘 쓰러진다’라는 문장을 비교해보자. 같은 의미이지만 뒤의 문장이 훨씬 이해하기 쉽고 듣기에도 좋다. 우리말보다 한자어나 외래어를 더 많이 사용해야 말과 글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저자는 짤막한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을 제대로 알려준다. 책을 읽어가면서 우리말에 얼마나 소홀했는지, 왜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조지혜<인턴기자> dngur354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