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미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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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미술

차분한 정조와 혁명에의 열정

이주헌 지음, 학고재, 1만5000원

이주헌 지음, 학고재, 1만5000원

러시아 예술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음악에서는 차이코프스키, 문학에서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거장’으로 각인돼 있다. 그런데 유독 미술에서만큼은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나마 샤갈과 칸딘스키를 알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샤갈, 칸딘스키는 현대 화가이다. 게다가 그들의 작품에는 추상적인 요소가 많다. 이 때문에 러시아 미술을 행여 이해하기 어렵다고 치부할지 모른다. 전위예술을 표방한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이 20세기 러시아 미술을 이끌어갔고 샤갈과 칸딘스키가 그들에게 영향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이 러시아 미술의 전부는 아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유럽의 미술처럼 러시아 미술도 기독교의 영향권에 있었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 사실주의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러시아 미술의 역사적인 특징이다. 혁명의 시기에는 이념적인 색채가 짙게 배어들면서 생활고를 겪는 민중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기도 했다.

러시아 미술을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미술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이주헌이 이번에는 러시아의 미술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러시아 미술을 역사적으로 개괄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네 곳의 미술관을 ‘순례’하며 각각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작품을 놓고 러시아 미술을 소개한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과 러시아 미술관은 러시아 미술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전시하고 있고 에르미타슈 박물관과 푸슈킨 미술관은 러시아가 아닌 서유럽 미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네 곳의 미술관을 ‘순례’하면 러시아는 물론이고 서유럽의 미술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위주로 하되, 결코 미술관 중심이 아니라 작품 중심으로 정리했다고 말한다. 자칫 ‘미술관’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서술이 제한받을 것 같은 우려에서 벗어나는 것과 동시에 “감상의 밀도를 높이고 러시아 회화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미술에서 ‘이콘’(미술품에 나타난 인물 혹은 형상)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0세기 말 비잔틴문명의 영향권에 편입된 러시아 미술은 이콘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14세기 말부터 15세기 초 ‘이콘의 전성시대’를 거쳐 17세기까지, 이콘은 러시아 미술의 큰 축이었다. 인물의 살아 있는 표정이 러시아 회화의 강점이 된 것은 아마도 이콘의 역할이 크지 않을까 한다.

사회주의 혁명의 진원지인 러시아의 미술에 민중의 고달픈 생활상, 혁명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녹아들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화폭에 대자연을 담고,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의 초상화를 그린 것도 광활한 자연과 위대한 예술가를 다수 배출한 러시아만의 특권일지 모른다.

20세기 들어서서 아방가르드 운동을 주도한 러시아는 그 영향을 받은 샤갈과 칸딘스키를 잉태했다. 하지만 혁명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유일한 창작방법론으로 채택했다. 이는 예술에 엄격한 통제를 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때문에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러시아 미술이 많이 소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양화지만 그 속에 동양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는 점, 차분한 정조와 혁명에의 열정이 절묘하게 어울려 있다는 점, 러시아만의 길고 매서운 겨울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는 점, 초췌하지만 서로 합심하고 있는 민중이 등장한다는 점 등은 러시아 미술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자 매력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러시아 미술의 이같은 매력을 맛보게 한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아침으로 꽃다발 먹기

한국인입양아 ‘지선’의 ‘미아’이야기

쉰네 순 뢰에스 지음, 손화수 옮김, 문학동네, 9500원

쉰네 순 뢰에스 지음, 손화수 옮김, 문학동네, 9500원

노르웨이 출신 작가는 우리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유명한 희곡 ‘인형의 집’의 작가 헨리 입센 외에는 노르웨이 출신 작가 중 딱히 우리와 친숙하다고 할 만한 작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센 이후 100여 년이 흐른 지금 또 한 명의 노르웨이 작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노르웨이의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브라게 문학상’ 수상작인 ‘아침으로 꽃다발 먹기’를 들고 작가가 직접 방한한 것이다. 엄밀히 말해 작가 쉰네 순 뢰에스는 우리나라 사람이다. 작가 뢰에스는 생후 7개월 때 노르웨이로 입양된, ‘지선’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한국 사람이다.

그렇다고 작품에 대해 미리 단정짓지 말기 바란다. 뢰에스가 들고 온 작품 ‘아침으로 꽃다발 먹기’는 낯선 땅에서 입양아로 살아가면서 겪은 이야기, 혹은 국적은 같으나 이방인으로 취급되는 입양아의 정체성 찾기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아침으로 꽃다발 먹기’는 17세 소녀 ‘미아’가 정신질환에 시달리다가 점차 정상적인 삶을 되찾는다는 이야기이다. 가을부터 시작해 이듬해 봄까지 이어지는 작품 속 계절 변화가 ‘미아’의 정신적 변화에 맞물린다는 점은 이 작품의 탁월함 중 하나다.

찬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스산한 가을, 서서히 쇠락해가는 가을의 이미지와 합치되며 미아는 점점 심각한 정신질환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차갑고 황폐한 겨울이 되자 미아의 정신상태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심지어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을 만큼 미아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온갖 시련을 겪고 주변 사람들의 극진한 간호 덕에 미아는 이윽고 봄이 되자 살고자 하는 의지를 되찾고 정신도 정상으로 돌아온다.

많은 평자가 뢰에스의 또 하나의 강점으로 꼽는 것은 문체이다. 이 작품에서도 의식의 흐름 기법에 걸맞은 간결한 문체는 미아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전달하는 것과 동시에 속도감을 안겨준다.

이 작품은 광기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 뢰에스가 정신의학과 간호사로 근무하며 겪은 경험을 토대로 했다.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미아가 보여준 삐딱한 시선과 회의적인 생각은 어느 특정 사람에 국한된 모습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브라게 문학상 심사평은 이 작품을 대하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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