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에 묻은 피는 지워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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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 전쟁과 원주민 착취 ‘어두운 과거’… 할리우드 관련영화 개봉으로 논란 가열

시에라리온 코이두 지역의 다이아몬드 딜러인 삼바 사바리(76)가 다이아몬드 무게를 재고 있다.

시에라리온 코이두 지역의 다이아몬드 딜러인 삼바 사바리(76)가 다이아몬드 무게를 재고 있다.

순수함과 영원함, 사랑을 상징하는 보석 다이아몬드.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프리카의 비참한 현실과 ‘피묻은 다이아몬드’가 있다.

12월 8일 미국에서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가 다이아몬드 산업의 냉정하고 잔혹한 역사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회사들은 영화로 인해 이미지 손상은 물론 판매에도 타격을 입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피로 얼룩진 다이아몬드 영화는 1990년대 시에라리온에서 다이아몬드 밀거래를 둘러싸고 자금을 쥐어짜려는 반군과 다이아몬드 채취에 동원돼 착취당하는 원주민의 고단한 삶, 잔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주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진귀한 ‘핑크 다이아몬드’를 찾아 나선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용병으로 분했다.
1991년부터 11년 간 이어진 내전 기간 동안 시에라리온 반군인 혁명통합전선(RUF)은 무기 구입 자금과 사적인 치부를 위해 다이아몬드 밀거래에 나섰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한 정부군과 반군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5만 명이 희생됐다.

RUF는 8세 가량의 아이들을 유괴해 강제로 코카인, 헤로인 등 마약에 중독시켜 마음대로 조종했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정부군에 협조한 부모를 살해하지 않으면 너희를 죽이겠다”며 패륜을 강요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투표를 했다는 이유로 팔을 자르고 쓸데없는 말을 했다며 주민의 입을 도려내는 잔혹함을 보이기도 했다. 콩고, 앙골라, 라이베리아 등 다이아몬드가 풍부한 다른 아프리카 국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선조 때부터 수렵생활을 하며 칼라하리 사막에 살아온 ‘부시맨’ 산(San)족은 다이아몬드 개발을 위해 삶의 터전에서 내쫓겨야 했다. 이들은 디카프리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우리는 쫓겨났으며 다이아몬드는 우리에게 부와 아름다움이 아닌 재앙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우리는 다이아몬드의 희생자라는 것과 집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려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아프리카는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산지. 보츠와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나미비아,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국가들의 다이아몬드 생산량은 세계 50%를 차지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이어 러시아, 호주, 캐나다 등이 다이아몬드 생산 대국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시에라리온의 광부들이 다이아몬드의 토사를 냄비로 일고 있다.

시에라리온의 광부들이 다이아몬드의 토사를 냄비로 일고 있다.

다이아몬드 업계 “이미 해결된 문제” 다이아몬드 업계는 할리우드가 지나간 역사를 되짚으며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영화가 개봉된 12월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다이아몬드 연간 판매량의 5분의 1이 팔려나가는 대목이다.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시기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영화가 개봉되면 다이아몬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의 가디언은 “이 영화로 인해 다이아몬드가 모피만큼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산물이라는 인식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업계는 “영화가 그린 어두운 면은 이미 해결된 과거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광고문구로 유명한 ‘드비어스’는 캠페인을 위해 1500만 달러(약 140억 원)를 투입했다. 드비어스는 또 ‘블러드 다이아몬드’ 제작사에 공문을 보내 “영화의 내용은 허구이며 분쟁지역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는 현재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자막에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에드 즈윅 감독은 “내 영화가 피묻은 다이아몬드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이 기쁘다”는 말을 했을 뿐이다.

세계다이아몬드협회는 피묻은 다이아몬드에 대한 우려와 비판은 이미 지나간 과거를 들출 뿐이며 다이아몬드로 얻는 소득이 아프리카에 혜택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엘리 이자코프 회장은 “이 영화는 수년 전의 일, 이미 해결된 일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유통되는 다이아몬드의 99% 이상은 분쟁이 없는 지역에서 생산된 물량”이라며 “아프리카 주민들은 다이아몬드의 수익으로 의료와 교육서비스 혜택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보츠와나 노동자의 25%는 다이아몬드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
다이아몬드업계는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영화로 인한 비판을 막기 위한 인터넷 웹사이트(Diamondfacts.org)를 열기도 했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의 한 장면.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의 한 장면.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위해 수치상으로 현재 ‘피묻은 다이아몬드’의 거래량은 1% 미만에 불과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영인 모임인 ‘남아공 비즈니스 리더십‘은 지난 1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피묻은 다이아몬드 거래량은 90년대 중반 15%에서 꾸준히 줄어들어 현재는 1% 미만”이라고 밝혔다. 다이아몬드의 원산지 확인을 의무화하고 생산·유통 과정을 감시함으로써 피묻은 다이아몬드의 유통을 막은 ‘킴벌리 프로세스’ 협약을 맺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다이아몬드 산업이 일자리 창출, 외화 수입,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기여함으로써 남아공에 긍정적인 힘이 되어 왔다”고 밝혔다. 보고서 저자 중 한 명인 브룩스 스펙터는 “분쟁 다이아몬드들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대체로 억제되어 있다”며 “다이아몬드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전쟁과 분쟁 때문에 다이아몬드의 규제 밖 거래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또 피묻은 다이아몬드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가 장기적으로 업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피묻은 다이아몬드 밀거래는 오히려 더욱 정교해졌다. 인권단체 글로벌 위트니스(GW)와 파트너십 아프리카 캐나다(PAC)는 브라질과 과야나를 조사한 결과 대량의 ‘다이아몬드 세탁’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다이아몬드 업계가 킴벌리 프로세스를 공평한 관찰자처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무책임하고 열의 없는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다.

PAC은 밀거래 규제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는 서구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미국과 이스라엘, 유럽 국가들은 피묻은 다이아몬드와 밀거래를 감시하는 기구를 만들기 위한 펀드 모금을 거부하고 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즈윅 감독은 다이아몬드 산업과 소비자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했다. 그는 “영화는 소비라는 단순한 행위가 이 세계 어딘가에는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지갑을 여는 데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부/박지희 기자 viole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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