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해가지지 않는 나라’ 원동력은
제국 하면 제일 먼저 로마가 떠오른다. 그 옛날 유럽을 평정한 로마는 수백 년 간 평화를 구가하며 ‘팍스로마나’라는 말을 이끌어냈다.
기원 전 로마제국이 있었다면 기원 후에는 영제국이 있다. 그것도 비교적 최근인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은 전 세계 영토와 인구의 4분의 1을 지배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기원 전 로마는 유럽을 지배하는 데 그쳤지만 영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할 것 없이 막강 화력을 앞세워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옥스퍼드대 교수를 거쳐 현재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닐 퍼거슨은 꽤 두꺼운 책 ‘제국’에서 17세기까지만 해도 유럽 변방의 섬나라에 불과했던 영국이 어떻게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이와 함께 영국의 세계 지배가 역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점검한다.
사실 17세기 초까지만 해도 영국은 세계는커녕 유럽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나라였다. 퍼거슨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앞장선 ‘신대륙의 발견’ 시절, 영국은 단지 제국이 남긴 부스러기를 찾아다니는 해적에 불과했으며 그들을 따라하려는 ‘제국의 모방자’였다고 평가한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더 이상 ‘제국의 모방자’로 머물 수 없었다. 변방의 섬나라는 급속하게 성장하는 경제를 모두 소화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포화상태에 이른 섬에서 벗어나 영국은 대륙으로 진출했고 경제성장을 계속 이끌어갈 수 있는 땅인 식민지를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강력한 전함부대를 앞세운 영국은 급기야 기존의 ‘지배자’였던 에스파냐,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등을 물리치고 5대륙 43곳의 식민지를 건설하는 대제국을 이룩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은 영국이 얼마나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는지 대변한다.
그렇다면 영국의 대제국 건설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민족을 이주시켰다는 것이다. 영국은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해 자국민을 진출시켰다. 17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무려 2000만 명의 영국인이 조국을 떠나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사실상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미국 역시 조상은 영국인이 아닌가.
영국인의 세계 진출은 ‘영어의 국제화’와 직결된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7분의 1이 영어를 구사할 줄 알게 된 것도 ‘대영제국’의 영향이다. 만약 영국이 아닌 스페인이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모든 대륙에 식민지 통치를 했다면 아마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저자는 영제국의 부산물로 영어 외에 의회 민주주의의 확대, 자본주의 체제, 프로테스탄트의 영향력, 자유 무역의 확대 등을 꼽는다.
그러나 영제국이 남긴 것 중에는 부정적인 면도 많다. 무엇보다 영제국은 식민주의를 낳았다. 제국주의 시대가 사라진 지금, 식민주의는 의미가 없다고 할지 모르나 아직도 극심한 인종차별과 각국의 외국인 차별·혐오, 그리고 빈번하게 터지는 대량살상은 바로 식민주의와 노예무역에서 파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영제국의 건설과정과 그것의 영향을 꼼꼼히 분석하고 설명한 궁극적인 이유는, 결론 부분에서 짐작하건대 미국에 충고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이 과거 영제국의 영향력에 버금가는 힘을 발휘하고 있음(발전 과정은 다르지만)에 주목한 것이다.
사실 오늘날 영제국이 남긴 것 중에는 긍정적인 요소보다 부정적인 요소가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영어의 세계화, 의회 민주주의의 확대, 자본주의 체제, 자유 무역의 확대… 이러한 것들이 과연 인종차별과 대량살상보다 더 중요한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미국에 충고하는 저자도 영제국을 좋게 보고 있지는 않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명문기업가의 자식농사
부자 3대서 끝나지 않으려면
‘부자 3대 못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헤픈 씀씀이를 탓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식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많은 재물을 힘써 모은 사람은 흥청망청 쓰지 않는다. 재물을 바닥내는 사람은 아무 노력 없이 그저 윗대로부터 재물을 물려받은 자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식교육을 제대로 한다면 엄청난 부를 고스란히 이어갈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재물이 더 불어날 수도 있다.
이 책은 고 정주영 현대 회장, 고 이병철 삼성 회장, 고 최종현 SK 회장 등 자신의 성공을 2세, 3세까지 대물림한 재계의 내로라하는 명문가와 오너의 자식교육 방법을 담고 있다.
평범한 아버지도 자식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 힘들다. 자식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하물며 그룹 회장이라면 더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난 시절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고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를 있게 한 유명 회장들은 자식교육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자식에 관한 한 직접 챙기고 비록 짧은 시간일지라도 엄격하게 교육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은 생전에 자식들에게 어떤 문제이든 꼭 여섯 번 ‘왜?’라는 질문을 하라고 교육했다. 즉흥적·감정적인 결정을 피하고 모든 사정을 꼼꼼히 따져보고 난 후 결단을 내리라는 뜻이다. 남의 말을 경청하고 늘 메모하는 습관도 고 이 회장이 지금의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한 자식에게 길러준 것이다. 이러한 습관은 이건희 회장을 거쳐 그 아들인 이재용 상무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자녀교육은 아침밥상에서 시작된다. 현대 가(家)는 새벽 일찍 일어나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늘 온 가족이 아침밥상에 모여야 했다. 고 정 회장은 자식들에게 일찍 일어나는 습관과 가족의 소중함 등을 자연스럽게 가르쳤다.
자식교육 문제에서 대부분 명문 기업가의 공통점은 ‘혹독하게 키운다’는 것이다. ‘오냐오냐’ 하지 않고, 사자가 새끼를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듯 혹독하게 키웠다. 고 조홍제 효성 회장은 유학간 자녀에게 접시닦이를 시켜 경험을 쌓게 했으며 최진순 청풍 회장은 자녀의 학교 등록금과 유학자금을 스스로 벌게 했다.
오랫동안 경제분야 기자로 활동한 저자는 현장에서 보고 직접 수집한 자료를 종합해 15개 기업 오너의 자식교육 방법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요즘 부모에게 큰 보탬이 되는 책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