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시 신드롬 & 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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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 지음, 이학수 옮김, 휴머니스트, 2만5000원.

앙리 루소 지음, 이학수 옮김, 휴머니스트, 2만5000원.

비시 신드롬

프랑스에 남아있는 ‘나치의 흔적’

우리에게 일제 식민시대와 관련한 과거청산은 광복 후 60년이 지난 지금도 힘겨운 작업이다. 광복 후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를 흡수했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와해되면서 사실상 친일파 단죄는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도 거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과거청산 문제에서 곧잘 모범사례로 꼽는 나라가 프랑스이다. 우리가 알기로 프랑스는 그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정부가 직접 나서서 청산한 나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의 지배에서 벗어난 프랑스는 독일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단죄했다. 심지어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무참히 학살하는 것(홀로코스트)을 도왔다는 이유로 당시 동조하지도 않았던 대통령이 직접 “프랑스인은 지울 수 없는 죄를 범했다”(1995년 7월 16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고 말할 정도로 프랑스는 과거를 고백하고 부끄러워했다. 역대 우리 정부와는 사뭇 대조된다.

혹자는 우리와 프랑스를 비교하기 곤란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36년간 지배당했고 프랑스는 고작 4년 정도밖에 지배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길고 긴 암흑을 견뎌내기가 어려웠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 혹독함은 어떤가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있고 독립을 위해 몸과 영혼을 초개같이 던진 사람도 있다. 우리의 경우 더 큰 문제는 친일파 단죄는커녕 독립투사에 대한 보상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대표적인 역사학자인 앙리 루소는 우리가 좋은 예로 삼고 있는 프랑스의 과거청산이 실은 불완전한 상태로 마무리됐다고 강조한다. 1941~1944 프랑스의 비시 정권은 독일 지배 당시 독일에 협력했다. 비시 정권은 프랑스의 어두운 과거사를 대표한다. 그런데 이 비시 정권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루소의 견해다.

비시 정권 때의 일이 재판에 회부될 때마다 프랑스 전역이 찬반으로 나뉘어 들끓고 비시 정권의 후예들이 프랑스 정계에 종종 등장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비시 정권의 후예임을 공공연하게 밝힌 국민전선의 후보 장 마리 르펜이 1차투표에서 리오넬 조스팽을 물리치고 2위를 차지한 것은 프랑스 내에 비시 정권이 살아 있음(비시 신드롬)을 똑똑히 보여준 예다.

루소는 국제사회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종종 같은 진영에 속했던 것도 비시 신드롬의 한 증거로 삼는다. 극단적으로 말해 ‘도살자의 후예들’이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것. 지난 시절을 묘사한 영화, 만화 등이 방영되고 인기리에 방송되는 것도 비시 신드롬이다.

‘비시 신드롬’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프랑스 비시 정권의 후예들이 현재 프랑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나 우리나라에서 친일파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음을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한반도’에 등장하는 총리(문성근 역)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존재한다.

1980년대에 발표한 루소의 비시 신드롬은 프랑스 사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로서는 프랑스의 정권이 나치 독일에 자발적으로 협력했다는 것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소의 주장은 결국 옳은 것으로 판명됐고 비시 정권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프랑스 사학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됐다.

비록 과거는 수치스럽지만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이미 1970년대부터 과거청산 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원만히 해결해나가고자 노력했다. 아마도 이와 같은 다양한 노력이 있었기에 2차대전의 한복판에서 갈가리 찢어졌던 유럽이 오늘날 하나로 묶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동아시아는 어떤가. 여러 가지 상황을 볼 때 동아시아의 각 나라는 모두 과거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동아시아가 하나로 묶이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 아닐까.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서하진 지음, 문학동네, 9800원.

서하진 지음, 문학동네, 9800원.

요트

순박한 사람들의 때 묻지 않은 꿈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섬세한 감성으로 애틋하게 승화해내는 서하진이 6편의 소설의 묶어 새 소설집을 냈다.
서하진의 소설은 대개 읽는 도중 눈살이 찌푸려지거나 읽고 나서 왠지 모르게 찜찜한 구석이 남지 않는다. 세상과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예쁘다고 느껴질 뿐만 아니라 한 편을 다 읽은 후에는 개운한 기분마저 든다.

이것은 그의 소설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착한 사람’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서하진의 소설 속 상황이 처참한 지경에 빠지거나 극한 지점으로 내몰리지 않은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보기에 따라 다를 순 있지만, 극도로 불우한 환경, 정신적인 피폐, 어두운 전망 등에 휩싸여 있는 소설과는 구별된다.

새 소설집 ‘요트’도 마찬가지다. 계간 ‘문학과사회’ 2005년 가을호에 발표된 바 있는 표제작 ‘요트’는 중산층 가정에서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을 다뤘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아 삽시간에 수억 원을 거머쥐게 됐지만 이들은 돈에 관한 한 그다지 욕심이 없다. 되레 남편은 강북으로 이사해 차익으로 요트를 구입해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고 조른다. 호사다마일까. 착실하던 고3 아들이 별안간 가출해버렸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착한 사람’이다. 투정부리는 남편에게, 대입시험을 앞두고 가출한 아들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잔소리도 삼가는 ‘나’, 요트세계일주를 꿈꾸는 남편, 가출했지만 비행(卑行)과는 거리가 멀어, 고요한 절 뒷마당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는 아들. 이들을 두고 사악하다거나 약삭빠르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착한 사람의 문제해결 방법 역시 매우 착하다. “천천히 생각해볼 작정입니다”라는 고백은 선택의 여지를 남기고 있지만 결국 ‘나’는 남편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고 짐작 가능하다. 남편의 말에 아들이 ‘혹’한 것도 한 이유다.

다정다감한 작품 ‘요트’ 외에 이번 소설집에는 주로 세상사에 묻혀 지내지만 인물이 아직 간직하고 있는 꿈을 이야기한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꿈을 실현하기가 버겁지만 그래도 인물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이들이 예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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