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 평전
항일독립투사의 생생한 일대기
김산이라는 이름은 이제 낯설지 않다. 오해하지 마시라. 여기 언급하는 김산은 ‘슛돌이2’에 등장하는 골키퍼 김병지 선수의 아들이자 ‘최단신 골키퍼’인 김산이 아니다. 항일독립투사인 김산(본명 장지락)을 말하는 것이다.
냉전과 군사독재를 함께 겪던 지난 시절에 김산을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1984년 님 웨일스(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의 ‘아리랑’(원제:아리랑의 노래)이 한국어로 처음 번역, 소개되면서 독립투사 김산의 이름은 국내에서 널리 퍼졌다. 김산의 활약과 생애를 담은 웨일스의 ‘아리랑’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필독서였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님 웨일스의 ‘아리랑’은 웨일스가 김산을 스무 번 남짓 인터뷰한 것만 토대로 쓴 것이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김산이 언급한 지역을 답사하지 못했고 김산의 주변 인물을 그다지 많이 만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김산이 인터뷰 도중 말한 것을 철저하게 고증하지 못한 채 숨어 있는 항일독립투쟁사를 발굴한 것이다.
‘아리랑’이 소개된 후, 특히 사회주의 항일투쟁그룹에 대한 연구와 발굴이 활발해졌다. 물론 그동안 철저하게 금기시돼왔던 공산주의의 문이 일반인을 향해 조금씩 열리게 된 시대상황도 한몫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사회주의 항일투쟁그룹의 활약상이 속속 밝혀지면서 김산에 대해서도 많은 자료가 발굴되었다.
‘김산 평전’은 ‘아리랑’의 한계를 메우고 김산의 생애를 생생하게 되살려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김산이 활동하던 무대를 직접 답사해 그의 자취를 담아냈다는 점, 항일투쟁사 전체를 개괄하는 가운데 김산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점, 김산과 관련을 맺고 있던 인물을 조명했다는 점 등이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김산은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평북 용천에서 출생해 15세에 만주의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가 그곳을 졸업했다. 이후 김원봉, 유자명 등과 관계를 맺으며 의열단에 가입했고 아나키스트가 됐다. 동지이자 이론적 스승인 김성숙의 영향으로 공산주의에 경도된 김산은 초기 중국공산당의 주요멤버가 됐다. 주로 중국 내의 비밀무장조직을 지도했던 김산은 그러나 후일 변절자로 낙인찍히는 시련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숙, 박건웅 등과 함께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해 항일투쟁을 계속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김산을 ‘일제간첩’으로 지목해 처형했다.
의열단원의 활약을 담은 소설 ‘기묘한 무기’를 쓴 작가로, ‘장북성’이라는 필명으로 외국 서적을 번역·소개한 번역가로도 이름을 날린 김산은 1938년 34세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억울하고도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1983년 중국공산당은 과오를 인정하고 김산을 복권시켰다. 우리 정부도 2005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미공개 자료를 발굴·소개하고 김산의 생애와 주변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낸 이 책은 분명 ‘아리랑’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저자인 이원규 동국대 겸임교수는 문학상을 다수 수상한 소설가이다. 이 책에서 김산의 삶을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저자는 이미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한 ‘약산 김원봉’을 통해 평전에도 일가견이 있음을 증명한 바 있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나르시시즘의 심리학
성숙하지 못한 ‘자아도취’는 피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죽어서 수선화가 된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 1889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폴 네카는 나르키소스와 연관지어 ‘자기 자신을 사랑하거나 자신에게 애착하는 것’을 나르시시즘이라 명명했다.
아주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나르시시즘을 갖고 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주병, 왕자병, 도끼병과 같은 신조어도 나르시시즘에서 비롯했다.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돌아보게 만들며 더 나은 앞날을 위한 자기계발의 자극제가 된다.
하지만 나르시시즘이 지나치면 해롭다. 본인의 인격장애에만 그친다면 덜하겠지만 지나친 나르시시즘 때문에 빚어진 인격장애는 사회적으로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건강하지 못한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끝없이 타인을 착취한다. 그러면서도 전혀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인은 자신에게 순종하고 봉사해야 하며 자신에게 덤벼서도 안 된다. 이런 사람은 부끄러움도 모를 뿐더러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는 사고방식에 틀 지워져 있다. 이들과 엮이면 사랑마저도 고통이 될 공산이 크다.
어린애처럼 굴면서 아내를 괴롭히는 남편, 가족의 신용카드를 제멋대로 쓰는 사람, 사랑만 받기 바라는 연인, ‘가정 같은 직장’을 내세워 부하직원의 사생활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직장상사…. 이들은 모두 건강하지 못한 나르시시즘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을 없앨 수는 없다. 사회생활을 하는 한 이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상처받지 않고 이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미국의 심리치료사인 샌디 호치키스는 이들과 현명하게 함께할 수 있는 네 가지 전략을 제시한다. 나 자신을 정확히 알고, 현실을 직시하며, 나르시시스트와 분명한 경계를 정해, 서로 주고받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에 많은 해악을 끼치는 건강하지 못한 나르시시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나르시시즘이 건강하게 발전하느냐, 건강하지 못하게 고착되느냐는 유아기와 유년기 초반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만들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