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의 시대 & 크레타로 가는 밤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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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의 시대

세계적 펀드매니저가 비판한 미국

조지 소로스 지음, 전병준 외 옮김, Nemo Books, 1만3000원

조지 소로스 지음, 전병준 외 옮김, Nemo Books, 1만3000원

조지 소로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인 그는 ‘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고 1997년에는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로부터 당시 동남아시아에 불어닥친 통화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받기도 했다. 이러한 부정적 평가와는 달리 가난한 국가와 비민주적인 사회의 개선을 위해 매년 막대한 액수를 기부하는 기부가로, 불합리한 정책과 노선을 비판하는 지식인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소로스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표현은 마케도니아의 총리이던 브란코 츠르벤코브스키의 ‘국적 없는 정치인’이다. 사실 소로스의 인생 역정을 따져본다면 ‘국적 없는’이라는 수식이 꽤 어울린다. 유대계 헝가리인으로 태어나 주로 영국에서 성장했으며 본격적인 활동은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했다.

소로스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소로스가 “나의 진정한 친구”라고 말할 만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으며 IMF 외환위기 때 방한해 대한 투자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소로스는 또한 미국 부시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4년 미국 대선 때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부시 재선 반대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오류의 시대’는 스스로 “인생의 마지막 책이 될 것”이라고 한 만큼 소로스의 인생철학이 담긴 노작이다.
이 책에서는 펀드매니저로서의 그의 활약상을 보기는 힘들다. 이 책은 현재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그것이 야기된 까닭 등을 파헤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책에서 소로스가 목표로 세워둔 사회는 ‘열린 사회’이다. ‘열린 사회’는 일찍이 칼 포퍼가 주장하던 바다. 소로스의 스승이 바로 칼 포퍼이다. 그러나 소로스가 얘기하는 ‘열린 사회’는 스승이 얘기한 ‘열린 사회’의 개념과 차이가 있다. 소로스는 이 책에서 열린사회를 “혁신과 변화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있는 합리적으로 안정된 사회”라고 정의한다.

소로스에 따르면 전 세계 각국의 열린 사회 형성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미국이다. 소로스는 미국이 지금처럼 일방적인 태도와 정책을 지속한다면 인류문명이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또한 미국은 현재 불쾌한 현실과 대면하기를 기피하는 ‘자기도취 사회’가 되어버린 것도 큰 문제다. 불쾌할지라도 미국이 비판을 받아들이고 일방적 태도와 정책을 수정해야만 열린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소로스는 근본원인을 ‘현실에 대한 그릇된 수사에서 비롯된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진단한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 아래 미국은 일방적 태도와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누가 봐도 억지이고 무리수이지만 ‘9·11테러에 대한 당연한 대응’이라는 논리가 억지와 무리수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

소로스가 비판하는 것은 ‘부시 정권’이라고 못박는 것보다는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는 미국의 오만함, 세계질서를 어지럽히는 미국의 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언뜻 노엄 촘스키가 떠오르는 대목이지만 소로스와 촘스키는 다르다. 촘스키는 사심을 떠나 미국의 오만함과 패권주의의 잘못된 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수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지만 소로스의 비판에는 다소 사심이 가미돼 있으며 때론 논리가 맞지 않는 대목도 발견할 수 있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크레타로 가는 밤배

감명 깊었던 책 속 스승을 찾아서

박수인 글, 사진, 북 하우스, 1만2800원

박수인 글, 사진, 북 하우스, 1만2800원

학창시절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등장하는 곳, 혹은 작가가 태어난 곳이나 작가가 죽어 묻힌 곳 등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면 그 생각은 더욱 짙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학창시절엔 혼자 덜컥 낯선 곳으로 여행하기가 두려웠다. 외국이라면 특히 더했다. 게다가 돈도 없다. 사회에 진출해 자력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됐고 세상 물정에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지만 이젠 바쁜 일상이 발목을 붙잡는다. 낯선 곳으로 긴 여행을 하려면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크게 작심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여기, 그것을 실행한 사람이 있다. 지난날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고 인생을 가르쳐준 책 속의 연인과 스승을 만나러 멀고 먼 유럽까지,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날아갔다. 그의 나이 38세. 한창 일할 때이다. 그렇지만 그는 지난날 누구나 품어봄직한 앞의 생각을 과감히 실천했다.

그가 찾은 곳은 주로 묘지다. 고전을 통해 사상을 통해 그를 가르친 스승, 그를 감동시킨 사람은 모두 저 세상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외치며 오늘날까치 영향력을 미치는 카를 마르크스, 낭만주의 시대의 열정이 흠뻑 묻어 있는 ‘폭풍의 언덕’의 작가 에밀리 브론테, 이탈리아의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 가난과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위대한 작품을 남긴 반 고흐, 역시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잔과 피카소, 그리고 그의 기억에 뚜렷한 인상을 남긴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던 이들이 묻힌 곳을 돌아보며 저자는 그들의 지난날과 자신의 지난날을 하나의 글로 교직한다.

보통 사람은 그의 행동을 두고 ‘무슨 배부른 짓이냐’고 타박할지 모른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이 무슨 한가한 짓이냐고 비아냥거릴지 모른다. 아니면 원래 여유로운 사람이니 관심 밖이라고 치부할지 모른다.

저자의 단행을 두고 뭐라 평가하든 그것은 개인적인 차이이다. 분명한 것은 저자는 결코 ‘원래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직업인 출판편집자와 여유로움 또한 연결짓기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저자는 “좋은 추억으로 우리는 겨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소박한 사람이다. 그에게는 과감한 단행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현재 삶이 숨 가쁘거나 지루하다면 결단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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