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의 귀재들 곤충
미약한 존재들의 놀라운 생존법

토머스 아이스너 지음, 김소정 옮김, 삼인, 4만8000원
동물의 세계는 참 오묘하다. TV에서 방영하는 ‘동물의 왕국’을 보며 동물의 생활방식에 때론 감탄을 내뱉기도 한다. 인간처럼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지도 않고 사악한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는다. 대부분 본능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동물의 세계는 오로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할 뿐이다. 인간만이 자연의 법칙에 거스른다. 인간의 ‘횡포’가 아니라면 인위적으로 멸종하는 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곤충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알기는커녕 오히려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곤충은 해만 끼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와 같은 인식이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미국 코넬 대학의 석좌교수인 토머스 아이스너의 표현에 따르면 곤충은 ‘환경친화적인 개발업자’이다. 곤충은 식물을 해치지만(대부분 먹이로) 반대로 식물의 꽃가루받이를 도움으로써 오히려 식물을 번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토머스 아이스너는 동물행동학·생태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다. 어릴 때부터 곤충의 생활방식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아이스너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곤충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꽤 두꺼운 책 ‘전략의 귀재들 곤충’은 아이스너의 주요 연구를 집약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곤충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프랑스의 파브르이다. 그의 ‘곤충기’는 학창시절 필독서로 꼽힌다. 아이스너는 파브르를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은 50년이 넘는 그의 연구와 노력의 결과물이다. 또한 자신이 어떻게 곤충에 애정을 갖게 되었는지, 지금까지 어떤 연구와 탐구를 해왔는지 털어놓는 회고록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발견의 즐거움에 관한 책”이라고 말한 아이스너는 “곤충이 지구상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특별한 생존 전략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에서 아이스너가 가장 비중을 많이 둔 부분은 곤충의 특별한 생존 전략이다. 미약할 따름인 것처럼 보이는 곤충은 사실 대단히 놀라운 생존 전략을 발휘한다. 먹이와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생식 방법 등을 살펴보면 곤충이 얼마나 독특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딱정벌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적이 출현했을 때 섭씨 100도가 넘는 액체를 분비해 적의 접근을 차단한다. 이런 예를 나무달팽이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나무달팽이는 ‘흉포한’ 개미들을 물리치기 위해 점액질의 액체를 분비한다. 딱정벌레는 또한 공격을 받으면 자그마치 6만 개나 되는 강모를 이용해 떨어지지 않고 찰싹 달라붙는다. 딱정벌레의 끌어당기는 힘은 자기 몸무게의 200배나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적에게 공격받으면 응원군을 불러 모으는 곤충도 있다. 병정흰개미는 공격을 받으면 끈끈한 액체를 분비하는데 이 액체는 동료 병정흰개미를 불러 모으는 집결 신호다.
끈끈이주걱은 끈끈한 액체를 발사해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식물이다. 그런데 이 식충식물이 곤충에게 잡아먹히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것도 애벌레에 당하는 것이다. 나방 애벌레는 끈끈이주걱이 분비하는 끈끈한 액체뿐만 아니라 끈끈이주걱까지 먹어치운다. 이 외에도 곤충은 하나같이 나름대로의 놀라운 생존 방식을 갖고 있다.
이 책은 흥미로우면서도 인간의 지식욕을 만족시켜준다. 비록 논문에서 볼 수 있는 연구결과를 담고 있지만 경어체와 쉬운 표현, 생생한 사진자료 덕에 읽기에 무리는 없다. 아이스너가 이 책을 출간한 목적은 의외로 소박하다.
“이 책이 조금이라도 자연보호주의자들을 대변할 수 있다면 제 목표는 충분히 달성하는 셈입니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길 위의 생, 도플갱어
동서양 두 거장의 ‘묵직한’ 이야기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이레, 1만2000원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거장의 작품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딱히 문학에 애착을 갖는 사람이 아니어도 훌륭한 작가의 작품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동·서양의 대표작가 두 명의 작품이 출간됐다. ‘일본 문학의 빛나는 별’ 일본의 ‘국민작가’로 통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길 위의 생’과 포르투갈의 현존 최고 작가이며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도플갱어’다.
‘길 위의 생’은 소세키 최후의 장편소설이자 자전적 소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겐조는 소세키의 분신이라 해도 무방하다. 작품에서 묘사된 겐조의 유년기는 소세키의 그것이다. 겐조의 현재 모습은 소세키가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쓸 때의 그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소세키의 성장과정과 가장 왕성한 의욕을 갖고 있던 시절을 엿볼 수 있다. 인생이 그렇듯 겐조의 삶에도 영광도, 암흑 같은 고뇌도 깃들어 있다. 인생의 의미와 인간의 숙명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해냄, 1만3000원
사라마구의 ‘도플갱어’는 ‘나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이고도 영원한 질문을 다시금 던진다.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란 뜻인 ‘도플갱어’는 우리에게는 ‘분신’이라는 말로 익숙하다. 제목이 함축하듯 이 작품은 나와 똑같은, 심지어 무릎에 난 상처까지 똑같은 사람을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다’는 모티브는 꽤 낯익다. 그러나 낯익은 모티브를 어떻게 이끌어가고 승화하느냐에 탁월함과 식상함이 결정될 것이다.
존재의 위기감, 특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익명성과 몰개성을 신랄하게 꼬집는 이 작품은 분명 식상함보다는 탁월함에 점수를 줘야 할 듯하다. 더욱이 죽음으로 맺는 결과는 개성을 상실한 인간은 존재가치가 없음을 대변하고 있다.
이 작품은 ‘눈먼 자들의 도시’ ‘동굴’과 함께 사라마구의 ‘인간의 조건 3부작’으로 통한다.
일부 젊은 작가의 현란한 말재주와 얕은 통찰력에 식상해 있는 독자라면 동·서양을 대표하는, 약 100년의 시차를 둔 두 거장의 작품을 읽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