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하기엔 너무 귀찮은 ‘정보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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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불쑥 나타나는 메신저·휴대전화 문자·팝업창… 근로자 생산성 저해하는 업무 훼방꾼

10년 전만 해도 종업원이 최고경영자(CEO)에게 이메일을 보내면 개인적으로 답장을 받았다. 이메일은 정보화의 상징으로 CEO와 말단 종업원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효율적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요즘 종업원이 CEO에게 이메일을 보내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일단 답장받을 확률은 매우 낮고, 더욱이 CEO가 이메일을 읽을 확률은 더 낮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여러 스팸메일 속에 묻혀 아예 전달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간섭’ 후 5~15분 걸려야 집중력 회복

이메일로는 아무런 주목을 못 끄는 시대가 됐다. 이제 이메일은 꼭 필요한 의사소통 수단이지만 쓰레기가 넘쳐나 처치 곤란이다. CEO에게 주목받고 싶다면 오히려 전화를 거는 게 낫다. 아마 직접 자필로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정보화시대에는 과도한 정보화가 독이 되기도 한다. 앞서 거론한 이메일이 대표적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도한 정보가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 됐다. 마구잡이로 보내는 이메일은 이제 해킹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인터넷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무수한 정보는 역으로 ‘종합적인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또한 이제는 정보과잉 못지않게 ‘정보간섭’이 정보화시대의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메신저·휴대전화 문자·팝업창 등 본의와 상관없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특히 사무직 노동자의 생산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뉴욕에 있는 정보기술(IT) 연구기관인 베이섹스는 최근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1000명의 사무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정보간섭 실태를 조사한 것이다. 인스턴트 메신저, 인터넷 팝업, 휴대전화(통화 및 문자메시지) 등 각종 정보화기기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지 알아본 결과는 놀라웠다. 노동자 한 사람이 하루에 무려 평균 2.1시간을 정보간섭으로 인해 허비했다.

물론 2.1시간에는 메신저를 통한 잡담 등 직접적인 시간만 포함된 것은 아니다. 업무에 열중하다가도 메신저상에서 애인과 다투고 나면 이전과 같은 업무효율을 발휘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2.1시간에는 이같이 업무로 복귀하는 데 드는 시간까지 포함됐다.

과거에는 소위 잡상인이나 고객 등 사람이나 전화벨 소리가 집중을 방해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메일, 메신저, 휴대전화(통화 및 문자메시지)·개인휴대단말기(PDA) 등 다양한 개인 정보기기에 침해당한다. 노동효율을 높이기 위한 도구가 오히려 방해꾼으로 기능했을 때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 종전의 집중력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들까.

한 정보기술(IT) 전문가는 “이같은 종류의 ‘정보간섭’은 지식노동에 있어 훨씬 더 해악이 크다”며 ‘간섭’ 이후 다시 당초의 집중력을 회복해 업무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5~15분이 걸리는 것으로 추정했다.

정보화기기에 의한 업무능률 저하는 다른 수치로도 확인된다. 영국 런던 대학은 정보화기기가 없는 조용한 환경과 메신저 등 다양한 정보간섭이 존재하는 일상적인 사무환경을 비교했다. 일상적인 사무환경은 대부분의 사무직 노동자가 늘 경험하는 곳으로 PC모니터상의 느닷없는 메신저 대화창 등장이나 휴대전화의 문자 도착 알림 신호 등이 상존한다.

이용자 중독 예방 ‘사이버 방학’ 권장

이런 근무환경에서 업무수행 결과는 조용한 곳에서 일할 때에 비해 지능지수(IQ)가 10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IQ 130인 사람이 정보간섭이 심한 곳에서는 IQ 120의 효율밖에 발휘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러다이트운동처럼 정보화기기를 사무현장에서 없애버리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영국의 한 IT기기 유통회사는 2년 전 사무공간에서 이메일을 쓰지 못하도록 해 화제를 모았다. 물론 지금은 이메일을 쓰도록 허용했지만 범위가 상당히 제한된다. 메신저는 금지되며 대부분 의사소통은 얼굴을 맞대고 이뤄진다.

뉴욕대의 연구는 이 회사의 방침이 극단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크리스 킴블 교수는 휴렛패커드와 공동연구를 통해 “온라인상에서 어떤 일이 잘 이뤄지고 있을 때 이 일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당사자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보간섭은 이용자를 중독시킨다는 문제점도 노정시킨다. 이메일, 메신저,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즉각 처리하면 뭔가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길게 보면 간섭없이 스스로 세운 일정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는 게 더 효율이 높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점점 더 ‘즉시성’에 매몰된다.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처방보다는 이메일, 메신저 등이 생산성을 높이는 데 유익하다는 것은 인정하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 대신 이러한 기능을 이용자가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 역으로 이러한 기능이 사람을 통제할 때 부작용이 일어난다는 지적이다. 회사마다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노동환경이나 성격에 따라 정보간섭을 최소화하면서 정보화기기 사용에 따른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개별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정보간섭’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모든 네트워크로부터 자신을 떼어놓는 ‘사이버방학’도 권장했다. 미국의 한 IT기업 CEO는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1년에 1~2주 모든 종류의 네트워크로부터 완벽하게 자신을 격리시킨다. 그때는 휴대전화, 인터넷, 메신저 등 모든 종류의 정보화기기로부터 ‘언플러그’시킨다.

정보화 진전에 따른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제 이용자들이 더 현명해져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국제부/안치용 기자 ahn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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