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도로 민정당’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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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소장·개혁파의 뜨거운 몸짓… “이대로 가면 내년 대선 승리는 요원”

한나라당 내 대표적 소장 개혁그룹인 수요모임의 남경필 신임대표(오른쪽)와 박형준 전 대표가 7월 20일 염창동 당사에서 기자브리핑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 대표적 소장 개혁그룹인 수요모임의 남경필 신임대표(오른쪽)와 박형준 전 대표가 7월 20일 염창동 당사에서 기자브리핑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20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한나라당 범소장·개혁파 연합체인 미래모임 토론회. ‘전당대회 평가와 한나라당의 진로’라는 제목의 이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박형준 의원은 “미래모임이 영원한 미래의 추억으로 사라질 줄 알았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하지만 국회의원·지구당운영위원장 114명이 가입한 ‘거대 정치결사체’ 주인공 중 참석자는 3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하객’인 기자가 더 많이 관전한 토론회였다.

미래모임 토론회 각종 충고 쏟아져

지난 7·11전당대회에서 ‘미래모임’의 단일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일명 ‘작전세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소장·개혁파의 몰락’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미래모임 단일후보 권영세 의원의 경선탈락(6위) 후유증이 여전했던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패널이 쏟아낸 충고는 “뼈아픈 자기반성 속에 목표의식과 행동력을 갖추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각범 IT전략연구원 원장은 “7·11전당대회 이후 일말이나마 갖고 있던 한나라당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접었다”면서 “이대로(보수강화·색깔공방·대권후보의 줄 세우기를 의미) 간다면 내년 대선에서의 승리는 요원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아마 전당대회 이후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떨어졌을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이 집권에서 멀어지는 선행지수의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때 YS가 이회창 총리를 해임시킨 뒤 YS지지도는 90%에서 2% 정도 빠졌지만 그 이후 전혀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20%대 초반까지 지속적으로 추락하는 계기가 된 것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성한용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는 “7·11전당대회는 한편의 개그”라고 혹평하고 그 이유를 강재섭 대표와 이재오 최고위원이 벌인 색깔논쟁과 목표의식도 없는 소장개혁파의 느슨한 연대를 꼬집었다. 그는 특히 “이재오 최고위원이 좌파라면 젊은 시절 학생운동을 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좌파고, 아버지가 좌파였던 박근혜 전 대표도 좌파로 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 민정당’은 영남 보수당, 과거회귀, 색깔론, 대리전 등등 7·11 전당대회 이후 한나라당에 쏟아지는 비판의 상징어이다. 그 가운데 젊은 세력은 일단 ‘보수에 대한 저항’으로 활로를 찾는 중이다.

남경필 의원은 “당 지도부의 개혁의지와 프로그램을 지켜보겠으며 언제든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거기에 대한 비판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형준 의원도 “대여투쟁, 민생정치를 몸으로 보여주는 당내 건전한 개혁그룹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장·개혁파의 독특한 정체성과 존재가치가 당의 집권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미래모임이 새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새 출발은 미래모임의 인적 재편도 포함된다.

일단 2~3개월 시간을 갖고 대선후보 경선국면을 준비하겠다는 게 소장·개혁파의 전략이다. 소장파의 한 의원은 “이대로 간다면 내년 6월 예정된 대권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들러리가 될 것이 분명한데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마음 속 고민을 털어놓았다.

수요모임 새 대표 뽑고 전열 재정비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

이와 같은 전략실현을 위해 미래모임의 핵심그룹이며 소장·개혁파를 주도하고 있는 ‘수요모임’은 새롭게 전열을 재정비했다. 7월 19, 20일 1박2일간 강화도에서 소속의원 12명이 전원 참석한 가운데 워크숍을 갖고 남경필 의원를 새 대표로, 박승환 의원을 언론 부대표로 그리고 안홍준 의원을 정책 부대표로 선출하고 ‘개혁의 깃발 아래 균형자 역할‘이라는 좌표를 설정했다. 남경필 대표는 “당 지도부가 ‘세상 물줄기가 보수화로 흘렀다’며 ‘이대로 잘 하면 집권하는 것이 아니냐’는 착시현상에 빠져있는 것 같다”면서 “개혁의 목소리를 계속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의 보수색깔 빼기에 나서겠다는 전선포고인 셈이다. 고진화 의원도 “벼랑에 선 심정으로 당의 보수회귀와 지역주의화를 막기 위한 방법을 원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변화와 개혁추구’라는 총론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실천한는 방법론에는 이견이 적지 않다. 우선 친박(親朴) 세력과 어떤 전선을 만들 것인지에 대해 견해가 다르다. 수요모임의 한 관계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박승환 의원을 부대표로 뽑은 것은 수요모임이 반박모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흐름은 소장·개혁파 중에서도 일부를 제외하고 국민참여경선 제도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은 데서 알 수 있다. 지명직 최고위원이 된 권영세 의원은 “혁신안에 국민이 50% 참여하도록 되어 있는데 많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준 의원도 “당 차원에선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정병국 의원 등은 “누구든지 당에 들어와서 승부를 걸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국민참여경선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이는 외부인사의 영입을 용이하게 할뿐만 아니라 반박 세력의 이탈 특히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나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탈당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이들 생각이다.

어떻든 현재 대선구도에 만족 못하는 상황에서 소장·개혁파 어떤 형태로든 정면돌파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원희룡 의원은7·11전당대회 결과에 대해 “당심과 민심 사이의 거리를 얘기한 것”이라면서 “과거의 권위주의와 대세론에 빠져 줄세우기하는 전철을 밟는다면 당에 많은 지각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고진화 의원도 “정당을 뛰어넘는 연대도 모색하고 젊은 개혁 목소리를 내기 위해 비전과 전략 논의는 물론 실천도 활발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정당 내부에 충격을 줘서 정당에 변화를 몰고 오기 위해서”라는 단서를 달았다.

과연 한나라당 당내 개혁세력도 추스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초당적 협력이 될지는 미지수다. 정치권 일각에는 열린우리당의 실용주의적 개혁세력과 민주당, 한나라당 내 일부 소장·개혁세력 등이 모여 ‘새 살림’을 하자는 아이디어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방법이 무엇이든 소위 영남보수를 주축으로 한 ‘도로 민정당’ 포위전략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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