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전 회장 최종선고 앞두고 사망… 처벌 본보기 삼으려던 미국 의지 물거품

엔론사의 창업자인 케네스 레이 전 회장이 생전인 지난 1월 31일 부인과 함께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법정에 출두하고 있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회계부정 파문을 일으키며 ` ‘화이트칼라 범죄’의 대명사가 된 에너지 기업 엔론사의 창업자인 케네스 레이 전 회장에 대한 단죄는 결국 이 세상에서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권과 유착 엄청난 로비자금 뿌려
지난해 5월 제프리 스킬링 전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은행 사기와 은행에 대한 허위 사업보고 등 6개 혐의에 대해 유죄평결을 받았던 레이 전 회장이 5일 콜로라도주 애스핀의 별장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들에 대한 최종 형량선고는 오는 10월 23일로 예정돼 있었는데 레이 전 회장은 최대 16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다 최소 20년 이상의 형량이 확실시되고 있던 터라 사실상 남은 생애를 감옥에서 보내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그는 죽음으로 법의 심판을 피하게 됐다. 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엔론 사태의 막후 비밀까지 무덤에 묻혀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엔론은 한때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에서 7위를 차지할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초대형 에너지 기업이었다. 그러나 시장가치만 680억 달러에 달하던 엔론은 2001년 회계 부정을 저지르고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수천 개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등 투자자와 종사자들에게 천문학적 피해를 입혔다.
엔론은 1980년대 미국을 휩쓴 기업합병의 산물이었다. 천연가스 공급회사였던 엔론은 에너지 판매 전반에 뛰어 들면서 규모와 사업영역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데 성공해 자회사가 한때 1000여 개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처럼 폭발적인 성장의 배경은 부정직한 회계 처리에 탐욕과 방탕으로 점철된 경영, 그리고 정치권과의 검은 유착 등이었음이 훗날 밝혀졌다.
엔론은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끌어쓰면서 이를 장부외 거래로 처리하고 큰 이익이 발생한 것처럼 위장하는 분식회계를 자행했고 회계업무를 맡았던 회계사 법인 아서 앤더슨은 엄청난 회계업무비를 받고도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사실을 입증할 문서들을 파기했다.
엔론은 또 막강한 로비력을 동원해 사업확장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들을 없애는 괴력을 발휘했다. 1993년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는 엔론의 전력 판매에 관한 재무보고서 제출의무를 면제해주었고 당시 이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필 그램 상원의원은 이 결정이 난 직후 엄청난 보수가 보장되는 엔론의 이사가 됐다.

휴스턴에 있는 엔론 본사 건물.
이와 같은 엔론의 로비력은 정치권과의 검은 유착에서 나온 것이었다. 엔론은 1990년대 이후 정치권에 60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대주었으며 이중 대부분은 공화당에 집중됐다. 엔론은 특히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와 친분이 깊다. 1992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 도전 당시 레이 전 회장은 공화당 전당대회장을 맡았고 2000년 부시 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후보가 됐을 때는 거액의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를 ` ‘케니 보이’라는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엔론 임직원들은 당시 제국의 제왕처럼 방탕한 향락을 즐겼다. 엔론이 파산한 뒤 언론에 폭로된 이들의 생활은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텔리그라프’는 당시 엔론을 ‘`돈·섹스·방탕한 생활이 뒤섞인 칵테일’로 표현하면서 “엔론에서는 사내 불륜이 만연했고 고위 임원들의 이혼이 전염병처럼 유행했으며 심야 회의가 끝난 사무실의 유리벽이 남녀가 내뿜는 김으로 흐려진다는 이야기가 휴스턴에 널리 퍼졌다”고 전했다.
휴스턴 일대에서 엔론 직원 부인들은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와 모직 스웨터, 가죽 바지로 유명했다. 명문대를 졸업한 인재들을 엄청난 돈과 향락으로 유혹해 분식회계로 지어진 허망한 유리성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이들의 파티는 한순간에 끝났다.
레이 전 회장은 엔론의 흥망에 핵심적 역할은 한 인물이다. 미주리주 티론의 가난한 침례교 전도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신문배달과 잔디깎기 등으로 집안 살림을 보태야 했다. 미주리대를 졸업하고 휴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딸 때까지 그는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하는 고학생이었다.
은닉재산 추적 벌금추징 계획도 차질
그러나 다국적 에너지기업 엑손모빌의 전신인 험블 오일 앤 리파이닝에 입사해 에너지 인생을 시작한 뒤 성공시대를 달렸다. 1985년 휴스턴천연가스와 인터노스를 합병해 미국 최대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망을 구축하며 엔론을 탄생시켰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레이 전 회장에 대해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처럼 추락하기 전까지 그의 삶은 화려한 경력으로 채워져 있었다”면서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정직했던 한 소년의 아메리칸 드림이 비극적 결말을 맺었다”고 보도했다.
엔론이 파산하기 직전 레이 전 회장 자신은 3700만 달러 상당의 주식을 모두 처분하면서 퇴직연금을 모두 엔론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던 종업원들에게는 주식을 처분하지 못하게 했다. 엔론 파산으로 5600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21억 달러의 연금 손실이 발생했다. 한때 90달러를 웃돌던 엔론 주식이 휴지로 변하면서 투자자들이 입은 손해까지 감안하면 총 피해액은 600억 달러에 이른다.
레이 전 회장이 사망하자 엔론 사건을 분식회계 경영자 처벌의 본보기로 삼으려 했던 미국 정부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레이 전 회장이 비록 배심원단으로부터 유죄 평결을 받았지만 최종 선고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평결이 무의미해졌고 레이 전 회장의 숨겨진 재산을 찾아 벌금을 추징하려던 계획 역시 큰 차질을 빚게 됐기 때문이다.
레이 전 회장은 마지막 재판에서 순부채만 25만 달러에 이를 정도로 재정 상황이 악화했다고 증언했지만 미국 정부는 그가 630만 달러 상당의 투자 계정과 150만 달러짜리 고급 아파트를 갖고 있는 등 아직 은닉 자산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률가들은 그의 사망으로 정부의 노력이 지장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스킬링 전 CEO 역시 레이 전 회장의 사망으로 곤혹스러워졌다. 최소 20년 정도의 징역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그는 이제 마지막 남은 `엔론 사태 책임자’로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의 눈총을 한몸에 받아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한편 레이 전 회장으로부터 막대한 재정지원을 받고 그를 한때 재무장관 후보 물망에 올릴 정도로 막역한 친분관계를 유지했던 부시 대통령은 ` ‘케니 보이’의 사망 소식에 대해 아무런 공식 언급 없이 침묵을 지켰다.
<국제부/유신모 기자 sim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