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말리아 고민’ 전전긍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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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모가디슈 이슬람반군세력이 점령… 알 카에다 연계성·테러조직 피난처 우려

모가디슈를 장악한 JIC의 민병대.

모가디슈를 장악한 JIC의 민병대.

15년 내란의 종지부를 찍고 평화를 가져올 것인가,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것인가.

오랜 내전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이슬람 반군 세력인 ‘이슬람법정연대(JIC)’가 6월 6일, 수도 모가디슈를 장악하고 승리를 선언했다. 점령 후 한 달이 지났지만 소말리아의 미래는 여전히 안개에 싸여 있는 상태다.
1960년 영국과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한 소말리아는 91년부터 군벌간 내전으로 큰 혼란을 겪어왔다. 2년 전 유엔의 지원으로 과도정부가 설립됐으나 영향력은 전혀 없이 간판만 걸려 있는 상태다. 때문에 수도 모가디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군벌간 경쟁은 어떠한 제동장치도 없이 가속돼 소말리아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블랙 호크 다운’ 사태 악몽 떠올려

내전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모가디슈는 특정한 하나의 세력에 장악된 적이 없는 혼란의 땅이었다. JIC는 모가디슈를 확실하게 정복한 최초의 세력이다. JIC 지도자 셰이크 샤리프 셰이크 아메드는 6월 6일 현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슬람의 적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며 “이제 모가디슈는 국민의 손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JIC는 넉달에 걸친 교전 끝에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반테러연맹(ARPCT)을 격퇴,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반경 100㎞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AFP통신에 따르면 JIC는 6월 4일 모가디슈 북부에 위치한 ARPCT의 전략 요충지인 발라드를 점령했다. 목격자들은 ARPCT 지도자인 모하메드 카냐레가 JIC의 공격 직후 부하들과 함께 현지를 탈출했다고 전했다. 카냐레는 과도정부에서 치안장관을 맡고 있기도 하다. JIC는 지난 2월부터 ARPCT와 모가디슈 장악을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여 왔다. 이 과정에서 최소 330명이 숨지고 1500여 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3년 미군의 소말리아 철수를 그린 영화 ‘블랙 호크 다운’ 의 한 장면.

1993년 미군의 소말리아 철수를 그린 영화 ‘블랙 호크 다운’ 의 한 장면.

JIC의 ARPCT에 대한 승리는 미국에 대한 도발로도 분석되고 있다. ARPCT는 미국에 재정적 원조를 받고 있는 단체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소말리아 정부까지 미국과 ARPCT의 협력관계를 인정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미국은 “반테러 활동을 위한 지원일 뿐 내전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러한 전개는 미국으로서는 1993년 ‘블랙 호크 다운’ 사태의 악몽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블랙호크다운은 소말리아에서 반군 지도자 체포작전을 수행하던 미 헬기 2대가 추락, 미군 18명이 사망한 뒤 미군이 소말리아에서 철수를 결정한 사건이다. 미국은 같은 땅에서 13년 만에 또 다시 패배를 맛보는 셈이다.

미국이 JIC를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알 카에다의 연계성 때문이다. 미국은 JIC가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발생한 미 대사관 테러, 2002년 이스라엘에서 자행된 자살폭탄테러 등과 관련된 3명의 알 카에다 지도자를 숨겨주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JIC가 이슬람 율법을 기반으로 한 극단적인 통치체제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같은 정부를 성립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중동에서 아프리카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요지에 위치한 소말리아가 JIC의 수중에 들어가면 알 카에다 등 국제테러조직의 피난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미국의 걱정이다. 소말리아의 치안상태가 매우 불안한데다 입국 비자가 필요없는 것도 테러의 소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미국으로서는 소말리아를 손에 넣고 요리할 만한 마땅한 해법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JIC을 대신해 소말리아를 지도하도록 딱히 내세울 대안이 없다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ARPCT는 이미 JIC에 패퇴당했다. 과도정부는 여러 세력에 억눌린 유명무실한 존재이다. 과도정부는 JIC에 국제기구의 도움을 얻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협상이 결렬돼 망신만 당했다. 미 국무부의 대테러 조정관인 헨리 크럼프톤 대사는 “소말리아 내부에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합법적인 파트너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적당한 세력이 없다는 것이 현재 가장 큰 난제”라고 말했다. 미국의 싸늘한 시선과 달리 일부에서는 이슬람 반군이 소말리아에 평화를 가져올 새로운 전환점이라고 평하고 있다.

몇 달 전과 달리 현재 모가디슈 거리는 매우 평온한 상태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시가지 총격전 소리가 멈췄고, 얼마 전만 해도 불티나게 팔리던 총기류도 팔리지 않아 무기상이 울상을 지을 정도다. 오랜 내란으로 얼룩진 도시에 모처럼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JIC의 장악력이 확대되며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교전을 억제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다양한 반군이 점령했던 모가디슈를 JIC가 하나로 통합하면서 정부 붕괴 후 15년 만에 국가적인 통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오랜만의 평온’ 환영

소말리아인은 오랜만의 평온을 환영하고 있다. 모가디슈의 한 시민은 “우리는 JIC가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들이 지친 소말리아를 위해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JIC의 지도자 셰이크 샤리프 아메드.

JIC의 지도자 셰이크 샤리프 아메드.

JIC의 아메드는 “지난 15년간 빈곤과 내전에 시달려온 국민이 원하는 것은 오직 평화 뿐”이라며 “우리는 국제사회와도 원만한 관계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는 알 카에다와 관련된 인물은 한 명도 알지 못한다”며 알 카에다와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과도정부의 게디 총리 역시 “여타 군벌과 달리 JIC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가운데 6월 22일, 과도정부와 이슬람 반군세력은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내용의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BBC의 유세프 가라드 오마르 에디터는 “JIC와 과도정부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소말리아에 안정을 가져올 커다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유엔 평화유지군 배치에 대한 과도정부와 JIC의 입장 차이가 커 협약이 준수될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소말리아가 어떤 행보를 걷게 되든 JIC의 대두는 역사적 의미를 지닐 것으로 보인다. 미 미네소타주의 ‘소말리아정의옹호센터’ 오마르 자말 소장은 “JIC의 모가디슈 장악은 소말리아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제부/박지희 기자 viole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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