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내용 반복하고 기업 홍보에만 주력… 학생들 불만에 기업·학교 ‘네 탓이오’

위_5월 4일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강당. 시작되기 전 300석 규모의 강당이 꽉 찼다.
아래_5월 17일 연세대학교 경영관 강당. 설명회 시작 1시간 뒤, 학생들 대부분은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어쩌죠? 팜플렛이 다 떨어졌는데….”
5월 4일 오후 1시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강당에서는 한 국내 대기업의 취업설명회가 열렸다. 행사 시작이 20분이나 남았지만 준비된 유인물 300부는 동이 났다.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에 빈자리가 없어 늦게 온 학생은 통로에 앉고 벽에 기대어 섰다.
“많이 와주셨네요. 반갑습니다.”
인사 팀장의 첫마디에 강당 안이 조용해지고 설명회가 시작됐다. 기업의 홍보 동영상에 학생은 시선을 고정하고 손에 볼펜과 메모지를 들었다. 그런데 30분이 지나자 학생이 하나 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리를 뜨는 학생이 늘어나더니 설명회가 끝날 즈음에는 자리의 삼분의 일 가량이 비었다.
졸업을 앞둔 이화여대 진수영씨(24)도 이 날 1시간 일찍 취업설명회를 찾았다. 그런데 진씨는 설명회 시작 40분 만에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서류 심사나 면접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만 또 들었네요. 수업도 빠지고 왔는데….”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취업설명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입 사원 채용이 집중된 올해 4, 5월 각 대학마다 열리는 기업의 취업설명회는 60여 회에 달한다. 설명회 규모에 따라 수백 명에서 많게는 2000여 명의 학생이 참석한다. 그러나 취업정보를 얻는 가장 공식적인 통로로 인식되고 있는 취업설명회는 실질적으로 학생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실정이다.
5월 9일부터 23일까지 취업설명회 현장에서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학생 1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9.1%가 취업설명회에서 기대한 바를 얻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이 취업설명회에 기대한 것으로는 ‘전형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60.9%로 가장 많았다. 이 밖에 회사 소개를 듣고 싶어 참석한 학생이 20.9%, 입사한 직원을 보기 위해서 왔다는 학생이 18.2%로 조사됐다.
구체적 정보의 부족 취업준비생들이 취업설명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불만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가운데 68.1%가 취업설명회가 불만족스러운 이유로 ‘구체적이고 새로운 정보의 부족’을 꼽았다.
“채용 인원도 밝힐 수 없다면 뭘 밝힐 수 있겠습니까. 자세한 준비방법은 둘째 치고 기본적인 정보조차 알려줄 수 없다면 앉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대학생들이 취업정보 안내판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설명회장에서 올해 예상채용인원을 물었던 이승훈씨(26)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지 못했다. “회사 방침상 말해줄 수 없다”는 것이 돌아온 대답이다. 이씨는 4월 12일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언론사 취업 설명회’에 참석했다. 미디어잡 주최로 MBC, KBS, YTN,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5개 언론사가 참여한 이 날 행사에는 1700여 명이 참석했다.
미디어잡 김시출 대표는 설명회를 시작하며 “주요 신문·방송사의 올해 채용계획 및 채용 인재상을 회사 인사 담당자에게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언론사 취업 준비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설명회를 듣고 난 학생들의 반응은 달랐다.
“혹시나 혹시나 하면서 6시간을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 긴 시간에 뭘 얻었는지 모르겠어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정말 허탈하네요.”
설명회가 끝난 오후 7시 강당 앞에서 만난 박보희씨(24)는 지쳐보였다.
외국계 기업 취업설명회에서도 구체적 정보를 얻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뻔한 얘기를 들으러 온 게 아니잖아요.” 22일 서강대에서 잡코리아와 마이크로 소프트의 후원으로 열린 ‘외국계 기업 입사 면접 특강’에 참석했던 박도윤씨(26)가 말했다. “답답하죠. 제가 지원할 회사를 정해서 구체적으로 물어봤는데 특별히 준비할 수 있는 게 없다잖아요.” 일주일에 2번 정도 외국계 기업 취업설명회를 찾는다는 박씨는 다른 설명회에서도 새로운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고 했다.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야죠. 사실 올해 안에 취업하려는 사람들은 이미 다 조사를 하고 오거든요. 그런데 기업들이 매번 다 아는 얘기만 하고 정작 궁금한 것은 말해주질 않아요.”
또 다른 참석자 임종태씨(26)는 설명회 전반부에 진행된 프레젠테이션 기술 특강에 대해 “수업에서 다 배운 내용”이라며 불평했다. 임씨는 “솔직히 취업 전략이라고 하는 것도 너무 개괄적”이라며 “당장 몇 개월 안에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려는 사람들에게 저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말했다.
유명무실한 설명회 참석 혜택 취업준비생들은 설명회 참석여부를 전형과정에 반영한다는 기업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삼성그룹은 설명회에 앞서 학생에게 “설명회 현장에서만 지원자격을 부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서도 지원 자격이 주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학생은 설명회 참석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LG를 비롯한 몇몇 대기업은 참석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에 지원했던 취업준비생은 “참석여부가 전형결과에는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취업준비생의 한 인터넷 카페에서는 설명회 참석자에게 주는 가산점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LG CNS 서류전형결과가 발표된 후였다. 한 사람이 “설명회에 참석하고도 불합격했다”는 글을 올리자 47명이 댓글에 자신의 설명회 참석 및 합격여부를 밝혔다. ‘설명회에 참석하지 않고도 서류전형에 합격’한 사람은 22명으로 ‘참석하고 합격했다’는 사람보다 5명 많았다. 또한 ‘설명회에 참석하고도 불합격했다’는 사람이 4명이었다. 이에 취업준비생은 설명회에서 주는 가산점이 영향력이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지나친 기업 홍보 취업준비생들은 기업이 취업설명회를 여는 취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지나친 회사홍보 때문이다. 설문조사에서 18.2%의 응답자가 ‘회사의 지나친 홍보’를 문제로 지적했다.
“취업설명회인지 제품홍보회인지….” 한 국내 화장품회사 채용설명회 현장에서 만난 이동은씨(23)는 취업설명회에서 받은 화장품을 들고 있었다. 이씨는 “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보다는 특정 화장품에 대한 홍보가 주를 이뤘다”며 “친구들에게 추천해달라는 말까지 했다”고 말했다.
5월 18일 성균관대학교 경영관 강당에서 진행된 한 국내 컨설팅 기업 설명회에서도 참석자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참 기분이 나쁘네요.” 이직을 생각하고 이 날 취업설명회를 찾았다는 변기섭씨(29)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정보 대신 과장된 홍보뿐이었다”며 “기업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행사 같았다”고 말했다. “회사 소개를 안 할 수는 없지만 한 시간 넘게 회사 자랑만 늘어놓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컨설팅 업계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보니 홍보가 과장되었다는 것이 눈에 다 보입니다. 오늘 행사가 무엇을 위한 건지 모르겠군요.” 변씨는 강당 밖에 있던 직원들에게 불만을 표한 후 자리를 떴다.
이 날 설명회가 끝나고 300여 명의 학생들은 다시 강당 앞에 마련된 안내데스크에 줄을 섰다. 직원들은 학생들에게 작은 상자를 하나씩 나눠 주고 있었다. 김동현씨(27)는 “아무래도 기념품이 사람들을 끝까지 잡아 놓은 것 아니겠어요?”라며 회사의 이름이 새겨진 USB메모리(대용량 저장 장치)를 들어보였다. 그러나 김씨는 “취업설명회라기보다는 회사 홍보행사 같았다”고 말했다.
기업의 무관심과 학교의 한계 학생의 이런 불만에 대해 기업은 무관심하다. 잡코리아 해외경력개발팀 이건민씨는 “이제까지 대체적으로 설명회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행사 후 ‘학생의 반응을 조사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모든 학생의 의견을 묻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학생의 반응보다는 참석한 학생 수로 그 날 행사의 성공여부를 판단한다”며 400명이 참석한 충남대를 가장 성공적인 경우로 뽑았다.
미디어잡 기획운영팀 김기섭씨는 ‘취업설명회에서의 홍보가 지나치다’는 취업준비생의 지적에 대해 “홍보에 할애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후원을 받는 이상 특정 업체의 홍보를 안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업과 함께 설명회를 주관하는 학교 측도 학생들의 불만을 수용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고려대학교 학생처 취업지원팀 안성식씨는 “한 해 열리는 취업설명회만도 500회 이상인데 어떻게 매번 학생 반응을 조사하냐”며 “설명회를 주최하는 일만으로도 인력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안씨는 “취업설명회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겠지만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기회를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화여대 경력개발센터 이경희씨는 “취업설명회의 방식이나 내용은 전적으로 기업 측에서 기획한다”며 “학교는 더욱 많은 취업설명회를 유치하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원하는 취업설명회 학생이 불만족스러워하는 다수의 취업설명회와는 달리 좋은 평가를 받은 설명회들도 있다. 취업준비생들이 설명회에 기대하는 바를 충실히 반영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은행 취업설명회에 참석했던 최명원씨(25)는 “직원이 늦게까지 남아 많은 질문에도 성의껏 답해줬다”며 “이 회사에 꼭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취업설명회도 취업준비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희연씨(24)는 “일반적인 정보를 주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며 “회사에 지원할 때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HR운용팀 오진환 대리는 “지원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회를 구성하고 그들을 우리 회사의 잠재적 직원으로 대했다”며 “설명회에서 나온 질문과 질문자의 이름을 따로 기록해 놓는다”고 말했다.
한편 취업준비생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설명회 대부분은 면담식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궁금한 사항을 직원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면담식 설명회를 선호하는 경향은 특히 나이가 많은 학생들에게 두드러졌다. 설문조사 응답자 중 강연식 설명회를 선호하는 학생들의 평균연령은 24.1세인데 비해 면담식 설명회를 선호하는 학생들의 평균나이는 26.3세로 조사됐다. 당장 취업을 앞둔 학생들일수록 직접 정보를 얻고자 하는 욕구가 큰 것이다. 조동재씨(27)는 “구체적인 정보를 얻는 데는 면담식 설명회가 좋지만 자주 열리지는 않는 것 같다”며 “학교와 기업이 자주 면담식 설명회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들은 현재 취업설명회들이 여러 면에서 불만족스러운 실정이지만 다시 취업설명회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설문조사에서 ‘앞으로도 취업설명회를 찾겠다’는 학생은 80.9%나 됐다. “실망만 하고 올 때도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갈 거예요. 딱히 다른 방법도 없고 다음번에는 정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을지도 모르잖아요.” 취업설명회에서 받은 유인물을 챙기며 이희정씨(24)가 말했다. 이씨는 “가만히 있으면 너무 불안하니까요” 라며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10명 중 6명 ‘설명회 불만족’![]()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취업상담 창구. 24세부터 29세의 취업준비생들 110명에게 현재 실시되고 있는 취업설명회에 대해 물었다. ‘취업설명회를 찾은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59.1%(65명)가 ‘달성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또 설명회가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60%(66명)의 학생이 ‘효율적이지 못했다’고 답해 취업준비생들이 취업설명회의 내용과 진행방식 모두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준비생들이 취업설명회에서 가장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은 ‘구체적이고 새로운 정보가 없다는 점’으로 응답자의 68.1%(75명)가 이 같이 답했다. ‘지나친 회사 홍보’는 18.2%(20명), ‘질문 시간의 부족’은 11.8%로 조사됐다. 향후 취업설명회 참석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80.9%(89명)가 ‘참석하겠다’고 답했고 19.1%만이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
김아름〈이화여자대학교 언론정보학과 4학년〉
임소정〈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