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위기 전세계‘잔뜩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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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속 경제 급성장 후유증… 30년 만에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

인플레이션이 세계경제의 화두로 부상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경제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했으나 ‘홀연히’ 인플레이션 우려가 세계 각국 중앙정부를 괴롭히고 있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을 사전에 제어하기 위해 지구촌에 금리인상 도미노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6월 8일 콜금리를 4.25%로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하반기부터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물가상승 압력에 선제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세계적인 조류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파이낸셜 타임스’ ‘월스리트 저널’ 등 해외 주요 언론은 최근 ‘세계경제의 인플레이션 우려’를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요즘 들어 기회 있을 때마다 금리인상을 시사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오는 28~29일 열리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의 금리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금융통화정책회의를 열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2.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지난 6개월 사이에 세 번째인 이번 금리인상으로 유로화 단일통화지역인 유로존 12개국의 기준금리는 지난 3년내 최고수준을 기록하게 됐다.

장 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인플레 기대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인상이 필요하며, 유로존 금리가 아직도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최근 금리를 올린 데 이어 추가적인 금리인상이 점쳐지고 있다.

오랜 숙적 인플레이션 버냉키 의장은 자신의 임무를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으로 규정하면서 한은 금통위에서 언급한 ‘선제 대응’을 역시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과 투쟁하는 데 온힘을 쏟았다. 1970년대는 세계적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고, 인플레이션은 1980년 중반에 접어들어서야 간신히 수그러들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했다. 2001년에 그린스펀 전 의장은 11차례나 금리를 인하해 연방기금 금리를 1%로까지 끌어내렸다. 버냉키 의장은 FRB를 물려받자마자 전임자와 180도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고유가의 영향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지난 7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 ‘석유의존도와 경제적 위험’을 주제로 한 청문회에 출석해 미국이 고유가의 충격에 서서히 노출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지금까지는 유가상승이라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금을 흡수할 수 있었지만, 최근 자료는 마침내 일부 충격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고유가에 관한 문제의식은 동일하지만 그러나 그 해법이 ‘인플레이션을 우선 제압하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믿는’ 버냉키 의장과 동일한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1990년대 후반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물가가 안정국면일 때 당시의 정보기술(IT) 거품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린 적이 있다. 그때의 문제의식은 달랐지만 역설적으로 해법은 현재의 버냉키 의장과 같은 셈이다.

특히 최근 6개월 동안 세계경제에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FRB는 물론 ECB와 심지어 ‘디플레이션의 나라’ 일본의 중앙은행까지도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분석기사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우려할 5가지 이유를 소개했다. 먼저 지난 4년 동안 세계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해 유휴 설비를 모두 써버렸다는 데서 기인한다. 성장여력을 소진했기 때문에 추가적인 성장에 인플레이션이 따르게 된다. 두 번째로는 에너지 수급 문제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리스크로 에너지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공급은 고정돼 있다.

세 번째로는 ‘세계의 공장’ 중국이 세계경제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예상보다 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중국이 저가 공산품을 공급해 세계물가를 끊임없이 떨어뜨릴 것으로 전망했지만, 실제 미국과 유럽에서 물가하락분은 각각 연 0.1%포인트, 0.3%포인트에 불과했다. 네 번째는 가계대출 등을 통해 세계 각국에 너무 많은 돈이 풀려 있는 상태다. 또한 다섯 번째로 이에 따라 가계 등 경제주체에게 향후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것이란 강한 인식이 퍼져 있다.

주택시장거품도 한몫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와 분석이 진행되면서 고유가와 함께 주택시장 거품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견해가 제기돼 주목된다.

미국 노동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동향’에서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5월 미국의 식품과 에너지가격 변동치를 뺀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5월에 0.3% 상승했다. 수치 자체로도 낮다고 할 수 없지만 시장 예상보다 높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FRB 등 정책 입안자들이 ‘인플레이션이 임박한 것’으로 파악할 정황증거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우려를 더욱 심각하게 하는 것은 3개월 연속 시장 예상치보다 근원 소비자물가지수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근원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올해 들어 1월 0.2%, 2월 0.1% 등 연초 안정세를 보이다 3월부터 0.3%로 뛰어올라 4월(0.3%), 5월까지 이어지고 있다.

3~5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연간 상승률로 환산하면 3.8%로 1995년 3월 이후 가장 높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이 “바람직하지 못한 진전(unwelcome develop- ments)”이라고 지적할 만하다.

여기에 포괄적인 의미의 ‘집 값 거품’이 수수께끼처럼 인플레이션 유발인자로 숨어 있다. 당장 ‘집값’과 관련한 물가변동치를 뺐을 때 5월 근원소비자물가상승률은 0.2%로 시장 전망치와 일치한다.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은 5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0.4%) 가운데 ‘집값’ 부문이 기여한 비중은 50%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집값 거품’이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이유는 우선 한국과 버금가게 미국에서도 집값이 많이 올라 주택구입을 포기한 사람들이 렌탈로 돌면서 렌탈비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 주택시장이 진정 기미를 보이면서 집값 하락을 예상한 수요자들이 주택구입을 미루고 렌탈로 돌면서 마찬가지로 주거와 관련한 비용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국에서 주택가격이 급등하면서 구매를 포기한 젊은층이 전세로 돌고 일부지역에서 전세·월세가격을 끌어 올리는 상황과 비슷한 셈이다. 양국에서 모두 첫 단추는 저금리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이다.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금리인상이 역설적으로 또 다른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뜩이나 주택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황에서 모기지금리마저 인상되면서 더 많은 사람이 구입 대신 렌탈 쪽으로 옮아가게 만들고 있다는 것. 한번 나타나면 쫓아버리기 어렵다는 인플레이션. 30년 만에 세계경제에 얼굴을 내밀려고 하는 인플레이션을 경제에 주름살을 만들지 않으면서 퇴치하려다 보니 버냉키 의장 등 많은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제부/안치용 기자 ahn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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