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대선은 미국 이민법이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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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 600만 명에 달해…새 법안 내용 따라 멕시코 민심 민감한 반응

지난해부터 각국에 좌파 정권이 속속 들어서면서 과거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리던 남미에는 강한 반미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현재 남미 지역에 좌파 정권이 들어선 나라는 브라질·아르헨티나·쿠바·베네수엘라·볼리비아·에콰도르·칠레·우루과이 등 8개국이다. 5월28일 대선을 치른 콜롬비아에서 친미 강경주의자인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남미 좌파 도미노 현상은 일단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9일 치러지는 페루 대선 결선투표는 민족주의 성향의 좌파인 오얀타 우말라 후보와 온건 좌파인 전 대통령 출신의 알란 가르시아 후보간의 대결로 치러지게 돼 있어 또 하나의 좌파 정권 수립이 예약된 상태다.

친미 후보냐, 반미 좌파 후보냐

이런 상황에 다음달 2일 치러지는 멕시코 대선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세계 7위의 산유국인 멕시코에서 좌파 돌풍이 이어져 야당 후보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멕시코시티 시장이 당선될 경우 멕시코는 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와 같이 에너지 산업 국유화 조치를 취하고 반미 연대에 가담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멕시코 대선 결과는 남미 지역 전체의 질서와 미국의 남미 정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미국으로서는 멕시코 대선 결과가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는 상황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최근 “미국은 멕시코 대선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립을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은 부시 대통령 발언의 진위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멕시코 대선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 의회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새로운 이민법안이 어떤 형태로 확정되느냐에 따라 멕시코 대선의 판도가 바뀌기 때문이다.

멕시코가 미국 이민법에 이처럼 민감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미국에 살고 있는 멕시코인이 1200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설명될 수 있다. 미국에 사는 멕시코인이 고향의 가족에게 송금하는 돈의 액수는 연간 300억 달러나 된다. 멕시코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인데다 멕시코 내에서 발생하는 고용창출의 압력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는 액수다.

그런데 1200만 명의 미국 이민자 중 절반 정도는 합법적인 거주·노동 자격을 갖지 못한 불법 체류자다. 이들은 대부분 일자리와 생계수단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사람이다. 만약 미국의 새로운 이민법안이 이민자들에게 관대한 쪽으로 개정된다면 멕시코 출신 불법체류자가 합법적으로 미국에서 일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이는 곧 수백만 명의 멕시코인이 장기·안정적 수입원을 갖게 되고 멕시코의 경제난을 크게 완화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멕시코 대선에서 가장 친미적인 성향을 가진 집권 국민행동당(PAN)의 펠리페 칼데론 후보는 유리한 고지를 얻게 된다.

반면 이민을 규제하고 불법체류자를 범법자로 간주하는 이민법안이 확정된다면 멕시코의 반미 정서는 더욱 높아지고 중도 좌파인 민주혁명당(PRD)의 오브라도르 후보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오브라도르 후보는 그동안 비센테 폭스 현 대통령이 미국과 이민 협정에서 항상 저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멕시코에 유리한 이민협정을 체결하려는 노력은 헛수고”라고 주장해왔다.

미 상·하원 서로 상충된 법안 통과

현재 미국 의회에서는 상·하원이 각각 상충되는 요소를 가진 이민법안을 통과시켜 놓은 상태다. 지난달 25일 상원을 통과한 이민법은 최근 20년 동안 가장 진보적인 내용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펠리페 칼데론 후보(왼쪽),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

펠리페 칼데론 후보(왼쪽),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

상원 법안은 불법 이민자들에게 궁극적으로는 합법적인 체류기회와 시민권 신청 자격을 부여하는 일종의 ‘사면’ 형식을 띠고 있다. 미국에 입국한 지 5년 이상된 불법체류자들에게는 벌금을 부과하고 일정 기간 노동기회를 제공한 뒤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5년 미만의 불법체류자들은 일단 출국한 뒤 초청 노동자 자격을 얻어 재입국해야 하고 2년 미만은 추방된다. 초청 노동자 프로그램에 따라 매년 20만 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초청 노동자로, 150만 명을 임시 농업노동자로 받아들이고 이들에게는 모두 영주권 신청자격을 준다. 그러나 2011년까지 국경경비요원을 1만4000명 증원하고 6000명의 군병력 투입, 600㎞에 달하는 국경 장벽 설치 등의 월경감시 강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 말 하원을 통과한 이민법안에는 불법 이민자를 강력히 규제하는 강경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하원 법안은 불법체류자들을 모두 형사범으로 간주해 구금 후 추방하도록 했다. 초청 노동자 프로그램은 고려하지 않으며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고용주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개인 또는 단체도 형사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민법이 확정되려면 이처럼 상충되는 법안을 통과시킨 상원과 하원이 최종 절충안을 만들어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의회는 조만간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에 착수할 예정이지만 견해차가 워낙 커 절충안을 만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멕시코의 대선 판도는 예측불허다. 가장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여당인 칼데론 후보가 39%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선두를 지키고 오브라도르 후보는 35%로 그 뒤를 바짝 추격한다. 제1야당인 제도혁명당(PRI)의 로베르토 마드라소 후보는 22%로 3위에 머물고 있다.

멕시코 대선은 결선 투표 없이 최다득표자가 이기는 단판 승부여서 선거가 다가올수록 작은 변수도 큰 영향력을 가진다. 칼데론 후보는 폭스 현 대통령의 보수적 재정운영과 친미적 시장경제 정책을 이어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오브라도르 후보는 미국에 의존해야만 하는 자유시장주의 경제를 지양하고 사회 인프라·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등의 중하층을 겨냥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상반된 성향과 판이한 공약을 가진 두 후보의 대결이지만 결국 승부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요소는 결국 미국 의회의 결정에 달려 있다. ‘미국에는 너무 가깝고 하느님으로부터는 너무 멀어서 불행한’ 멕시코의 현실을 이번 대선이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유신모/국제부 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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