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핵가족이 다시 뭉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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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대가족가구 급증, 경제적 이유와 아시아·라틴계 이민자 문화적 요인

대가족이 사는 미국의 한 주택 구조

대가족이 사는 미국의 한 주택 구조

부동산 중개업자인 테스 크레시니는 재혼할 약혼자와의 달콤한 신혼생활을 꿈꿔온 51세 미국 여성이다. 그녀는 룸메이트를 약혼자와 애완견으로 국한시키려고 노력해왔지만 불행하게도 그게 잘 안된다. 크레시니는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있는 침실 4개짜리 집에서 장성한 두 아들과 며느리, 세 살 난 손녀딸 그리고 그녀의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5월 25일자에서 미국 내 새롭게 일고 있는 대가족 붐을 소개했다. 미국 인구통계조사 자료에 따르면 조부모와 부모, 자녀 3대가 한 집에 사는 ‘대가족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대가족용 주택 틈새시장 형성

대가족 가구는 가장 최근 인구통계조사가 실시된 2000년 420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4%에 불과하지만 10년 전에 비해 38% 증가했다. 독신가구, 편부모가구 등을 제치고 모든 가구 유형들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부동산·건설 전문가들은 2000년 이후 이런 추세가 더욱 빨리 진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어느새 부동산 업계에서는 대가족 가구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집을 짓는 것이 각광받는 시장이 돼버렸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대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집을 짓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가족 가구용’이라는 이름의 모델하우스도 처음으로 등장했다. 3, 4대가 함께 살기에 적합하도록 정원과 주방이 넓어지고, 침실은 좀더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출입구나 베란다를 두며, 전등 스위치를 좀더 낮게 설치해 휠체어 탄 노인이나 어린이들이 쉽게 닿을 수 있도록 한 것 등이 ‘한지붕 3대 가구’의 특징이다.

그렇다고 대가족 가구가 수백만 달러씩이나 되는 비싼 집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부분 대가족 가구는 돈을 절약하기 위한 방편이다. 최근 집값이 급등해 주택 임차료 또는 집 구입비가 큰 부담이 되고 있어서 30~50대 성인들이 자녀들까지 데리고 자신의 부모 밑에 들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가 좋은 예다. 집값이 다른 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캘리포니아주에 대가족 가구가 가장 많다. 나이든 부모 밑으로 들어가면 만만치 않은 자녀 양육비도 절약할 수 있다. 미혼모가 출산한 아기가 많은 지역일수록 이러한 대가족 가구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지역의 ‘대가족 가구용’ 주택은 대략 70만 달러(약 6억6000만 원)에 거래된다. 부동산업자들은 100만 달러(약 9억4000만 원) 미만 주택 시장의 경우 돈을 버는 가족 구성원들이 갹출해서 대가족 가구용 주택을 구매, 각자의 주택 비용을 줄이려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한 대가족 가구의 모습. 할머니 파트리샤 멕코넬(오른쪽)이 그의 딸 데브라 판돌피니(왼쪽)의 집에 입주해 손녀딸(가운데) 줄리아나의 공부를 돕고 있다.

미국의 한 대가족 가구의 모습. 할머니 파트리샤 멕코넬(오른쪽)이 그의 딸 데브라 판돌피니(왼쪽)의 집에 입주해 손녀딸(가운데) 줄리아나의 공부를 돕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요인 외에 문화적 요인도 있다. 아시아 및 라틴계 이민자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대가족 가구가 늘어난 측면이 있다. 조부모가 손주들을 돌보는 것이 전통인 아시아와 라틴계 이민자들의 경우 자연스럽게 3대가 모여 산다. 아시아계가 많은 캘리포니아주 아카디아의 부동산업자 이본 로사 페티는 “이러한 집들을 보면 10명씩 무리지어 가는 한 무리의 대상(隊商)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베이비 붐 세대들이 퇴직 후 실버타운에 가서 살기보다 자식들과의 함께 살면서 유대감을 강화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뿌리와 연결돼 사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어요.”
세대간 결합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통합세대(GU)’의 사무총장 도나 M. 버츠의 말이다. 그는 “그동안 가족들은 너무 오래 헤어져 있었다”면서 “이제 그 반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어른과 살면 아이들 교육효과 크다”

대가족 가구의 상당수는 조부모 세대가 주도해서 모여 살게 됐다. 대가족 가구들 중 62%가 조부모 의사에 따라 뭉친 것으로 나타났다. 66세 된 여성 앤 브리스토우의 예가 대표적이다. 인디애나 대학 도서관 사서 출신인 그녀는 또래 노인들처럼 혼자 남은 인생을 즐기며 살 수도 있었겠지만 최근 36세 된 딸과 20개월 된 손녀와 함께 살기 위해 시애틀에 방 두 개가 있는 집을 샀다. 이혼해 혼자 살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막내 딸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홀로 되자 자연스럽게 3대가 함께 살게 됐다. 딸이 교사 일을 위해 집을 비우는 동안 손녀딸을 봐주며 소일하는 브리스토우는 “내겐 매우 당연한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세대간 결합이 때론 긴장을 낳기도 한다. 청소와 요리 등 가사분담을 잘 해야 하고,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때 신구간 기호의 충돌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럴 때 희생하는 쪽은 주로 어른들이다.

산호세의 크레시니의 경우 방 4개 중 2개를 그녀의 두 아들에게 줘버렸다. 약혼자랑 단 둘이 살았다면 체력단련실로 쓰려 했던 것이다. 시를 쓰고 약혼자랑 호젓한 시간을 보내려던 꿈도 일단 접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도 자녀들, 손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며느리가 그녀의 재혼 준비를 도와주기도 한다.

그녀의 29세 큰 아들 마이클 호블런드는 “어른과 함께 살게 되어 일상생활에 대해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그래도 크레시니는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들들이 독립해서 각자의 가구를 꾸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네소타 인구센터에서 미국 가족사를 연구하는 스티븐 루글스는 “본격적인 도시화가 진행되기 전인 19세기 관습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대가족 가구는 남북전쟁이 시작될 직전인 1850년쯤부터 사회보장제도가 강화돼 노인들이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되면서 감소했다. 그러한 추세는 1990년 이후 역전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대가족 가구는 아직 저소득층 내에 더 보편적으로 퍼져있다. 부동산 업체들은 좀더 부유한 사람들을 상대로도 이 틈새시장을 확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나의 대가족 가구는 그 특성상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아이들은 자라고 조부모들은 언젠가 숨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애틀의 브리스토우와 그녀의 딸은 손녀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도중에 헤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아프거나 내 몸을 스스로 돌보지 못하게 되면 내 딸이 나를 불러줘 함께 살자고 할 것”이라는 브리스토우의 말에는 지금은 손녀 딸 돌보느라 고생하지만 노후가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국제부/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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