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금기 깨고 ‘콘돔 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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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에이즈 예방 위해 허용안 검토… 엄격한 보수성 일대전환 주목

로마 교황청이 오랜 금기를 깨고 ‘콘돔 허용’이라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릴까.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청 보건위원회에 에이즈 환자의 콘돔 사용을 허용하는 사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혼인관계의 배우자가 HIV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경우 나머지 배우자의 감염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콘돔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줄곧 ‘금욕예방책’ 주장 견지

1968년 바오로 6세가 교황회칙(Humanae Vitae)을 통해 ‘성을 쾌락의 도구로 삼으면서 생명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콘돔을 포함한 인공적인 피임을 금지한 가톨릭의 원칙이 약 40년 만에 바뀌게 되는 셈이다.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는 바티칸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교황청의 새로운 방침을 담은 문서가 보건위원회의 승인을 받았으며, 신앙교리성성의 검토와 교황의 최종승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가톨릭 관계자들은 콘돔 허용처럼 민감한 문제가 바티칸 내에서 공론화된 것을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엄격한 보수주의자로 신앙교리성 장관을 지낸 베네딕토 16세가 취임 1주년을 맞은 시점에 이와 같은 논의가 벌어지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간 가톨릭의 엄격한 ‘콘돔 금지’ 정책은 전 세계 4000만 명이 에이즈로 고통받고, 매일 1만3000명의 새로운 감염자가 발생하는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라며 진보진영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교황회칙이 내려졌을 때만 해도 공포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가 수십 년 만에 가톨릭 인구가 많은 제3세계를 초토화시키는 것을 사실상 방조했다는 지적이다.

[월드리포트]가톨릭 금기 깨고 ‘콘돔 해금’

교황청은 에이즈를 피하는 최상의 방법은 오로지 금욕이라는 주장을 견지해왔다.
가톨릭의 변화는 지난달 말 추기경단의 유력인사인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전 이탈리아 밀라노 대주교)의 지상논쟁을 통해 감지됐다. “피임용구 사용은 어떤 상황에서는 더 작은 악(lesser evil)을 구성한다. 배우자 중 한 명이 에이즈에 감염됐다면, 그는 다른 배우자를 보호할 의무를 갖는다”는 설명이었다. 자기방어의 정당성을 언급한 것으로, 만약 남편이 에이즈에 감염됐다면 아내는 피임이란 결과를 무릅쓰고도 콘돔 사용을 권장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풀이된다. 앞서 2004년 하비에르 로자노 바라간 추기경도 자기방어로 최대 정당방위 차원의 살인까지 허용하는 가톨릭 신학을 언급하며 “아내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이 직접적으로 콘돔 사용을 옹호하고 나선 것은 아니다. 섹스가 생명을 창조하는 목적이 있다고 보는 바티칸의 관점은 신성불가침에 가깝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아프리카 신자 보호 차원

위_남아프리카공화국 젊은이들이 콘돔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br>아래_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복지사가 에이즈에 걸린 빈곤층 모녀와 상담하고 있다.

위_남아프리카공화국 젊은이들이 콘돔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아래_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복지사가 에이즈에 걸린 빈곤층 모녀와 상담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안에 대한 가톨릭계 내 이념대립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보수론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콘돔이 허용될 경우 금욕과 정절을 강조해온 교회의 원칙이 허물어질 수 있음을 염려한다. 신학자 브라이언 V 존스턴은 “바티칸이 특수상황에 한정해 용인해도 일반 대중은 자기 입맛대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성과 결혼에 가톨릭의 원칙 자체를 뒤흔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교황이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으로 활동할 때보다 교리해석에 엄격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낸다. 가톨릭계 생명문화재단의 오스틴 루스 회장은 “어떤 교황이라도, 특히 현 교황이 교회의 기존 원칙을 바꾸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낙태와 안락사, 사형을 반대하는 바티칸의 생명관에 비춰볼 때 죽음에 이르는 질병 에이즈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엄연한 수단을 반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논쟁이 불붙은 배경으로는 가톨릭 인구가 급감하는 서구권과 반대로 신도가 급증하는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 꼽힌다. 가톨릭 자선기구들은 아프리카 의료·보건지원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데, 현지 봉사자들 사이에서도 교회의 원칙을 지킬지, 아니면 콘돔을 보급해 질병을 예방할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에이즈 감염인구의 60%가 거주하는 아프리카의 가톨릭 신도 숫자는 1억3700만 명에 달하며, 특히 이곳의 가톨릭 인구가 2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2025년에는 최고 8900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에이즈로 숨질 것이라는 전망(유엔, 2005년)이 나오고 있다.

최종적으로 콘돔 허용 논쟁에 도장을 찍게 될 베네딕토 16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보수파는 교황이 논쟁을 통해 ‘순결과 금욕’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이와 반대로 이미 입지를 굳힌 교황이 기존 교회의 교리를 바꾸지 않고서도 콘돔 사용을 허가할 수 있는 충분한 영향력을 확보했다는 주장도 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에이즈 담당연구원인 레베카 슐라이퍼는 “바티칸의 변화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겠지만,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톨릭 지도부가 에이즈 상황의 심각성 및 콘돔의 유용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한 필리핀 및 아프리카 등지에서 일대 변혁를 몰고 올 것이라는 기대다.

포경수술이 에이즈 감염률 낮춘다?

아프리카에서는 최근 에이즈(AIDS) 확산을 막는 수단으로 포경수술이 각광받고 있다. 포경수술을 한 남성 에이즈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3분의 2 정도 낮고, 이미 감염된 경우라도 전염률이 30% 정도 낮다는 연구발표도 나왔다. 남아공의 남성 3274명을 포경수술을 한 그룹과 하지 않은 그룹으로 나눠 17개월 후에 비교한 결과 수술을 받지 않은 남성 중 49%가 HIV에 감염된 반면, 수술을 받은 그룹은 20%만 감염됐다는 연구도 발표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공식 승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각국 병원은 수술을 받으려는 남성들로 문전성시다. 잠비아 수도의 한 병원은 18개월 전부터 3달러의 수술비용으로 매월 약 400명의 남성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스와질랜드는 수술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지난 1월 약 60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포경수술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에이즈로 사촌과 고모를 잃었다는 한 스와질랜드 여성은 “아들(16)과 조카(10)에게는 꼭 포경수술을 시킬 생각이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국제부/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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