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은 예년과 달리 꽃샘추위가 오래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세월 이겨낼 장사는 없는 법. 주택가 담장 너머로 진달래며 개나리가 제법 화사한 꽃봉오리를 피워 올리고는 봄인사를 건넨다. 겨우내 안으로 응축되어 있던 기운이 밖으로 발산하는 계절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지라 양기(陽氣)가 점점 강해지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기 순환이 활발해지는 등 생체 리듬이 바뀌게 된다. 그러나 우리 몸은 생각처럼 그리 빨리 변하지 않는데 그 때문에 밥맛이 없다, 온몸이 나른하다, 몸이 무겁다, 자꾸 졸린다 등 춘곤증에 시달린다. 대개 춘곤증은 간장과 심장의 기운이 쇠약해져서 봄기운에 적응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수가 많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음식은 쓴맛이 나면서 향긋한 내음을 풍기는 식품이다. 쓴맛은 오장육부 중에 심장 기운을 도와주는 까닭이다.
쓴맛을 내는 대표적인 식품으로는 뭐니뭐니해도 씀바귀가 으뜸이다. 중국에서는 아이가 갓 태어나면 젖을 먹이기 전에 오향(五香)이라 해서 다섯가지 맛을 먼저 보여준다고 한다. 첫번째는 식초 한 방울, 두번째는 소금, 세번째는 씀바귀의 흰 즙, 네번째는 혀끝을 가시로 찌르고, 다섯번째는 사탕을 핥아먹게 한다는 것이다. 세상사 쓴맛단맛을 일찌감치 맛보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초 시식 때 아이들에게 씀바귀나물을 먹였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음식을 통해 인생의 깊이를 가르치고자 했던 지혜가 느껴진다.
쓴나물, 싸랑부리, 씸배나물, 고채(苦菜)라고도 불리는 씀바귀는 옛날부터 봄철 미각을 돋워주는 먹을거리일 뿐 아니라 좋은 민간약이었다. 이른봄 씀바귀나물을 먹으면 그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했던 옛날 어른들의 믿음대로 약효가 뛰어나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오장의 독소와 미열로 인한 한기를 풀어주며 장기의 기능을 강화해준다. 또 노곤해지는 봄철 정신을 맑게 해주며 부스럼 등 피부병에 좋다고 하였다. 이 밖에도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오면서 배뇨시 아랫배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을 때도 효과적이며 기침 증상을 가라앉힐 때도 좋다. 민간에서는 타박상이나 종기가 있을 때 씀바귀를 짓찧어 환부에 붙이고, 음낭 습진으로 고생할 때는 씀바귀 달인 물로 환부를 닦아냈다.
최근엔 씀바귀가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끌었다. 원광대 인체과학연구소에서는 2년 동안 씀바귀의 성분을 조사했는데 그 결과 씀바귀 추출물이 토코페롤에 비해 항산화 효과가 14배, 항박테리아 효과가 5배, 콜레스테롤 억제 효과가 7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스트레스, 항암, 항알레르기 효과도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렇게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것은 면역증진과 항암에 뛰어난 알리파틱, 그리고 노화억제와 항산화 기능을 지닌 시나로사이드 같은 성분이 다른 식품에 비해 풍부하기 때문이다.
조성태<한의사·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겸임교수>
[요리법] 씀바귀무침
■재료 씀바귀 150g, 당근 1/4개, 붉은 고추 1개, 고춧가루 1큰술, 설탕 2작은술, 다진 마늘 1작은술, 통깨 1작은술, 소금 약간 ■요리법 1. 씀바귀는 찬물에 담가 바락바락 문질러 쓴맛을 없앤 후 맑은 물에 잠시 담가 다시 한번 쓴맛을 우려낸 후 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