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자유는 멀고 이슬람 율법은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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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로 개종한 아프간 남성 처벌 문제로 서방-이슬람 간 문명충돌 2라운드 조짐

안사룰라 모라베자다 아프가니스탄 대법관이 압둘 라흐만으로부터 압수한 기독교 성경 번역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안사룰라 모라베자다 아프가니스탄 대법관이 압둘 라흐만으로부터 압수한 기독교 성경 번역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유럽의 ‘마호메트 만평사태’로 불거졌던 서방과 이슬람 간 문화충돌이 이번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다시 점화될 조짐이다.

기독교로 개종해 이슬람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형당할 위기에 처한 중년의 아프간 남성을 놓고 서방이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배교(背敎) 혐의로 새 아프간 정권에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된 이는 압둘 라흐만(41). 그는 16년 전 인근 파키스탄의 아프간난민수용소에서 의료지원요원으로 근무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독일에 9년 간 머물다 최근 아프간에 귀국한 그는 자녀의 양육권 문제를 놓고 가족과 다투던 중 경찰조사에서 개종과 기독교 성서 소지 사실을 들켰다. 사법부는 그가 다시 이슬람으로 개종할 경우 무혐의 처분을 내리겠다고 제안했지만, 라흐만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며 서방은 발칵 뒤집혔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3월 22일 이 사건을 정치쟁점화하겠다고 나섰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직접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에 전화를 걸어 ‘바람직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은 심각한 것 이상이다. 야만적인 처사다”라며 아프간측을 맹비난하고 나섰고, 독일 디 벨트는 “라흐만이 처형되면 아프간은 야만의 암흑시대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프간 정부는 라흐만의 정신상태가 재판에 부적합하다며 그를 정신병동에 수감하는 타협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서방의 반발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부시의 친 아프간정책도 도마에

이번 사태는 누구보다도 2001년 9·11 직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탈레반정권을 전복시키고 ‘아프간 민주화’를 외쳐온 부시 미 대통령에게 당혹감을 안기고 있다.

당장 부시의 지지세력인 보수 기독교계가 들고 일어났다. 토니 퍼킨스 가족연구소(FRC) 소장은 부시에게 보낸 항의서한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지하드주의자들로부터 해방시킨 것이 고작 기독교인을 죽이는 급진 이슬람세력의 통치를 위해서였는가. 미국인들은 새로운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고 강경하게 비판했다. 또 다른 기독교계 인사 찰스 콜슨은 “우리가 개혁적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한 나라에서 근본적인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외교정책 전반의 신뢰가 문제될 수 있다”며 흔들리는 부시의 ‘중동 민주화’를 겨냥했다.

배교혐의로 기소된 아프가니스탄인 압둘 라흐만이 3월 23일 카불 법원 앞에서 기자들의 질의에 대답하고 있다.

배교혐의로 기소된 아프가니스탄인 압둘 라흐만이 3월 23일 카불 법원 앞에서 기자들의 질의에 대답하고 있다.

특히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부시가 이슬람의 모범적 지도자이자 중동에 법과 인권을 기반으로 한 민주제를 뿌리내리는 데 필수적인 동맹으로 꼽아온 터여서 충격파가 더욱 크다. 부시는 틈날 때마다 아프간의 변화상을 내세우며 미국 내 반전여론을 무마시켜왔다.

사실 아프간의 종교·부족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4년 만에 이식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것으로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아프간 전체인구 2500만 명 중 99%가 모슬렘으로, 기독교 예배는 공공장소에서 사실상 금지돼 있다. 아프간의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기독교 개종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형을 받는다. 2004년 제정된 아프간 헌법도 신정(神政)을 배제하지 않는다. 유엔 관리들이 초안을 작성했지만 훗날 아프간 관리들의 논쟁과 개정을 거치면서 ‘인권을 존중하되 어떤 법도 이슬람에 위배돼서는 안 된다’는 모호한 성격으로 변질됐다.

미 평화연구소의 알렉스 데어는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이 사건은 모순을 안은 아프간 헌법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을 계기로 아프간이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국가인지, 아니면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사법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이슬람국가인지 여부가 가름지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라흐만 사건만큼 부각되지 않았지만 아프간에서 ‘반이슬람’ 행위로 처벌받은 사례는 전에도 빈번했다. 2004년 모슬렘의 일부다처제에 이의를 제기했던 대선후보, 타종교로의 개종이 과연 이슬람에 어긋나는지를 공론화했던 잡지 관계자 등에 대해 하디 쉬놔리 아프간 최고대법관이 종교적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온건성향의 카르자이 대통령이 강경세력에 사법부를 양보한 것이 결국 오늘날의 문제로까지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카르자이는 지난주에야 뒤늦게 쉬놔리를 비난하며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사법부의 체질개선 없이는 ‘제2의 라흐만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아프간 대중의 정서도 아직까지는 인권보다는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 서슬퍼런 탈레반 정권 당시 샤리아에 따라 절도범은 손목이 절단됐고, 간통한 자는 돌맹이로 쳐서 사형에 처했다. 이같은 처형방식은 탈레반 정권이 전복되며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샤리아는 아프간에서 정통성을 인정받는 도덕기준이다. 미국 등 서방의 경제 및 군사지원을 달가워하면서도 서구적 가치는 경계하며 수용하지 않는다.

마찰 피해 사형 대신 출국권고 가능성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이슬람학교(마다라사)에서 소년들이 쿠란을 읽는 모습.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이슬람학교(마다라사)에서 소년들이 쿠란을 읽는 모습.

그렇다면 문제의 주인공 라흐만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라흐만은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나는 배교자나 도망자가 아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들이 사형을 내린다면 나는 달갑게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성직자들은 수니파와 시아파를 막론하고 라흐만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탈레반 정권 시절 세 차례 투옥된 경력이 있는 온건파 성직자 압둘 라울프조차 “이슬람 율법을 거부하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신이 모독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교도소 관계자들은 “능지처참해도 모자랄 죄인”이라며 원색적인 비난까지 퍼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정부가 라흐만을 석방할 경우 주민들이 보복에 나설 움직임도 감지된다.

서방의 반발과 압력으로 라흐만을 사형에 처하기 어려운 아프간 정부로서는 외교마찰을 피하기 위해 라흐만에 출국을 권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사건에 대해 “마호메트 만평사태와 마찬가지로 문명의 상호 이해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슬람국가들이 마호메트의 형상화에 대해 민감했던 것처럼, 서방국가들은 기독교인 처형 움직임에 발끈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서방국가들의 반발에 머물고 있지만, 다른 아랍국가들이 ‘아프간 내정간섭’이라며 서방을 비난할 경우 또 한 차례 문명충돌 양상까지 우려된다.

<국제부/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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