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첫 자동차경주대회 ‘힘빠진’ 시동… 부대시설 부족, 레이싱 모델에만 관심 쏠려

3월 15일 경기 용인 스피으웨이에서 열린 타임 트라이얼전에서 자동차들이 굉음을 내며 달리고 있다.
3월 12일 경기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올해 첫 자동차경주대회가 열렸다. 겨우내 조용했던 경기장에 특유의 굉음과 환호성이 울려 퍼진 것이다. 막판 기승을 부리는 꽃샘추위 때문에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졌고 살을 에이는 듯한 칼바람이 불었지만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린 레이서들, 레이싱 모델들, 팬들은 오전부터 스피드웨이에 모여들었다.
이날 경기는 타임 트라이얼 1전이었다. 타임 트라이얼은 출발선에서 여러 대의 차가 동시에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한 대씩 일정한 간격으로 출발해 가장 빠른 시간에 구간을 통과하는 선수가 승리하는 경기 방식이다. 박진감은 다소 덜할지 모르나 현란한 레이싱 테크닉을 볼 수 있는 경기이다.
모터스포츠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빅3 스포츠이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모터스포츠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독일의 미하엘 슈마허가 전 세계를 통틀어 매년 스포츠갑부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모터스포츠의 인기가 대단함을 방증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모터스포츠가 일반인들의 시선을 많이 끌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빈약한 모터스포츠 현 주소 확인

3월 15일 올해 첫 자동차경주가 열린 용인 스피드웨이.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자동차 생산 면에서 미국, 일본, 독일, 중국에 이어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들이 저마다 경기장을 5개 이상씩 보유하고 있고 각종 세계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애쓰는 현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모터스포츠 현황은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을 만큼 초라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자동차 경기장도 상설경기장으로는 경기 용인과 안산, 강원 태백, 이렇게 세 곳에다 경남 창원에 특설경기장이 있을 뿐이다.
3월 12일 열린 타임 트라이얼전의 텅 빈 관람석은 빈약한 국내 모터스포츠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날이 추운 것이 큰 원인이었겠지만 올해 첫 경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텅 빈 관람석은 업체들의 지원도, 대중들의 관심도 극히 미비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이날 스피드웨이를 찾은 사람들도 대부분 자동차경주 자체보다는 ‘경기장의 꽃’으로 불리는 레이싱 모델들에 더 심취해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카메라를 들고 레이싱 모델의 모습을 한 컷이라도 더 담아내려고 애썼다. 이날 참가하지 않은 한 레이싱 모델의 팬이라고 자처한 사람은 “수년 동안 경기장을 찾았으나 경주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사람들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레이싱 모델들이 ‘피트 워크(pit Walk)’(경기를 앞둔 자동차가 출발선상에서 준비하고 있을 때 레이싱 모델들이 차와 함께 포즈를 취하는 것) 행사에 참여할 때이다.
추운 날씨 때문에 레이싱 모델들도 곤욕을 치러야 했다. 레이싱 모델들의 유니폼이 짧은 것은 다 아는 사실. 모델들은 담요나 두툼한 재킷 등으로 맨살을 가리며 몸을 보온하기에 바빴다. 쉴새없이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마구 헝클어지는 긴 머리칼도 이날만큼은 골칫덩어리였다. 실내가 아니고서는 머리칼이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추위에 떠는 모델들을 안타까워한 팬들은 앞다퉈 따뜻한 음료나 담요 등을 직접 선물하기도 했다.
현란한 자동차 묘기에 탄성 터져

3월 15일 열린 타임 트라이얼전에서 입상자들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모델 구은경씨는 “날이 추운 것 말고는 어려운 점이 없었다”며 “오히려 사진을 찍는 팬들이 더 고생했을 것 같다”고 팬들을 걱정했다. ‘안구건조증’이 있다는 모델 김시향씨는 “날이 추우면 눈이 더 이상해진다”며 “추운 날은 많이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자차나 초콜릿, 쌍화차 등을 챙겨주는 팬들이 있어 힘이 난다”고 한다. 이날 처음 레이싱 모델로 데뷔한 황영아씨는 “한 팬이 직접 선물해준 것”이라며 두툼한 담요로 허벅지와 종아리를 친친 감고 있었다. 그러나 모델들은 ‘피트워크’ 때나 ‘포토타임’ 때만큼은 담요와 재킷을 걷어내고 카메라 앞에서 과감한 포즈를 취해 프로다운 면모를 보였다.
서브 스폰서 업체의 수가 적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날 서킷의 부스는 본부측과 콘보이 등을 합해 모두 4곳뿐이었다. 타임 트라이얼전을 주최한 하우스버그의 박윤재 실장은 “날이 추웠고 첫 경기 일정을 1주일 연기한 탓에 당초 참여하겠다던 업체의 부스가 서너 곳 비게 되었다”며 서브 스폰서 업체의 수가 적었던 까닭을 설명했다.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경기장 한쪽에 마련해놓은 아스팔트 구역에서는 드리프트(레이싱 테크닉)를 연습하는 차량이 끊임없이 굉음을 내고 있었다. 드리프트에 한창인 차량을 보기 위해 구경꾼들이 몰리자 차는 더 현란한 묘기를 선보이며 구경꾼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타임 트라이얼전에서 입상한 선수들과 레이싱 모델들의 시상기념촬영 모습.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올해 첫 자동차경기가 펼쳐졌지만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였다. 가장 큰 아쉬움은 아직까지 우리나라 모터스포츠가 대중화돼지 못했다는 현실이다. 정부와 업체들의 지원이 부족해 모터스포츠를 제대로 홍보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레이서들 역시 거의 자비를 들여 경기에 참여하기 때문에 모터스포츠에만 빠져 있을 수 없다는 것도 모터스포츠 대중화를 저해하는 요소다. 경기보다는 레이싱 모델들에게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원인이 된다. 매점, 화장실 등 경기장 내의 시설이 부족해 가족단위로 경기장을 찾기가 꺼려진다는 것 역시 모터스포츠가 대중화에 성공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자동차경주협회, 한국자동차경주선수협의회 등 단체들 간 의견이 쉽게 조율되지 않고 있으며 자동차경주 관련 업체와 협회들 간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한국자동차경주협회측은 “현재 열악한 자동차경주 환경과 풍토가 서서히 좋아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자신한다.
“자동차경주는 첨단레저스포츠이자 생활체육”이라는 한국자동차경주협회측의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대중화가 시급하다. 화창한 날, 아빠·엄마와 아이들이 손잡고 자동차경주장을 찾을 날은 과연 언제일지 궁금하다.
<용인/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