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미안한 마음에 선물공세… 외부와 단절된 ‘혼자 노는 아이’ 만들어
![[특집]장난감 ‘덫’에 갇힌 아이들](https://img.khan.co.kr/newsmaker/662/2spe1-1.jpg)
오는 3월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는 김상수군(가명·서울 ㄱ초등학교)은 요즘 말로 학교에서 ‘인기짱’이다. 상수는 영어, 수학, 체육, 미술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다양한 상식과 풍부한 유머를 친구들에게 펼치기 때문이다. 봉사활동도 앞장서는 등 또래 사이에서 똑똑하고 좋은 친구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상수는 몇 년 전만 해도 ‘자폐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유아시절 대부분을 장난감에 의지했기 때문에 나타났던 현상이라고 엄마 정영숙씨(가명·36)는 지금도 믿고 있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아이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지요. 대신 보상 차원에서 사주기 시작한 장난감이 온 집안을 가득 메웠죠. 얼마간은 하루에 한 가지씩 사줬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많았겠어요. 퇴근길 아이 아빠 손에는 항상 장난감이 들려 있었죠. 당시만 해도 풍족한 장난감 속에 빠져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는데, 그것은 모두 착각이었어요.”
착각 속에 사는 요즘 부모들
상수는 또래친구와 어울리지 않고 하루 종일 혼자 장난감만 갖고 놀았다. 자폐아로 의심받을 정도로 힘겨운 삶에서, 지극히 평범한 아이로 되돌아오기까지는 부모의 노력이 컸다. 정씨는 고민끝에 다니던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직장생활을 통한 금전적 이익도 중요하지만 아들 상수의 유아기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장난감도 중요한 날을 지정해 사주고, 대신 스포츠단에 들어가 수영을 함께 배우는 등 유아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했다. 2년여 간 정성을 기울인 끝에 장난감만 갖고 놀던 상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 스스로 친구들과 어울리고 오히려 활동이 왕성해진 것이다. 유치원에서조차 혼자 놀고 집에서 갖고 놀던 장난감을 유치원에 갖고 가던 버릇이 없어진 것이다.
정씨는 “우리 아이는 일찌감치 문제점을 발견하고 대처해서 좋아졌지만 지금도 상당수 아이들이 방치된 채 장난감과 하루 종일 보내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들이 성인이 되면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인주의도 개인주의지만,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하고 귀한 줄 모르고 살 것이란 것이다. 더욱이 마약과 같이 중독성이 강한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상수의 경우 부모의 도움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적지 않은 아이들이 지금도 방치된 채 장난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자폐아 전문병원 해마한의원 박재현 원장은 “대부분 자폐아의 경우 선천적인 경우가 많지만 최근에는 장난감 등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자폐아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어린시절 자폐아 증상이 나타나면 적극 치료에 나서야 한다”면서 “현대의학으로는 완치가 어렵지만 어느 정도 부모와 함께 노력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 원장은 모든 병이 그렇듯 초기에 대응해야 효과를 본다고 지적했다.
부산대 임재택 교수(유아교육학과)는 “독일이나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아이들이 컴퓨터와 인터넷 매체를 접촉하는 것 자체를 제한할 정도로 전자매체에 엄격하다”면서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자연을 잃어버리고 놀이도 아이다움을 잃어버린 ‘양계장의 닭’처럼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특히 “교육용이라는 미명하에 팔리는 각종 플라스틱 장난감들이 오히려 아이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병들게 한다”면서 “아이의 손에 장난감을 쥐어주기 전에 먼저 부모가 아이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선진국이 어린아이에게 컴퓨터, 장난감 등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한 것은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있지만 인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 선진국은 인성이 자리를 잡아가기 전인 유아기의 교육에 보다 적극 관심을 기울여야 성인이 돼 바른 인생관을 가질 수 있다는 취지의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일부 장난감에서 발암물질 등 유해물질이 발견된 것은 둘째치더라도 풍부한 장난감은 오히려 아이들에게도 정신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못해본 것 아이에게 퍼주기

최근 한 백화점에서 1500만 원대의 명품 장난감 기차 세트를 선보여 아이들의 눈길을 끌었다.(기사와 관련없음)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선진국과 동떨어져 있다. 대부분 부모들이 무심코 장난감을 자녀들에게 선물하는 게 요즘의 실상이다.
5살 된 자녀를 둔 회사원 현성식씨(40·경기도 화성시)는 “어린시절 장난감을 풍족하게 못가졌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아이에게는 장난감을 원없이 사주고 있다”면서 “그러나 아직 장난감으로 인한 부작용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씨는 “30년 전만 해도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하다 보니 일부 부유층을 빼곤 자연 그 자체가 장난감이자 놀이터였다”면서 “아파트 숲에 갇혀 사는 요즘 아이들이 오히려 안쓰러워 장난감 사주기에 열을 올렸다”고 고백했다. 현씨는 대부분의 아빠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씨의 사례를 통해 요즘 부모들의 생각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실제 대부분 부모들은 장난감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효용이 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을 생각하며 습관적으로 장난감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에게 제공되는 장난감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장난감과 장난감 관련 교재를 판매하는 곳에서 제공하는 광고와 홍보성 글들뿐이다. 부모들은 앞다퉈 머리가 좋아지는 장난감, 창의력이 생기는 장난감을 사고 아이들은 그런 장난감의 홍수 속으로 빠져든다.
아이들이 장난감의 홍수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단기간에 이뤄진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과 핵가족화 때문이다. 고도성장기에 어린시절을 보낸 30∼40대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만큼은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주려는 의식이 크다. ‘나는 가난해서 귀한 장난감을 못갖고 그걸 가진 친구만 부러워했지만 내 아이에게는 얼마든지 좋은 장난감을 마음껏 사줘서 그런 욕구불만을 안 갖게 해야지’라고 생각한 부모들이 매일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장난감을 사주며 대리만족을 한다.
자녀양육전문가 국내 1호인 권오진씨(47)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와의 커뮤니케이션”이라면서 “좋은 장난감을 사주는 것도 좋지만,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개발하고 함께 실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씨는 “아이들과 놀이를 하다 보면 아이의 속마음뿐만 아니라 소질과 꿈도 알 수 있다”면서 “인성발달에 아빠와 함께 하는 놀이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장난감을 갖고 놀더라도 여러 명이 어울려 노는 게 중요하다”면서 “혼자 노는 것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사회성도 좋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완구산업은 1990년대를 정점으로 사양산업으로 몰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가를 무기로 한 중국산 제품의 공습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대 들어서는 대부분 완구류가 중국 등지로부터 수입되고, 이들이 국내 장난감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갈수록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지만 완구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산율 낮아져도 장난감은 ‘호황’
한국완구공업협동조합이 최근 펴낸 자료에 따르면 1998년 1억 달러 규모이던 완구시장이 2003년에는 3억4500만 달러까지 증가했다. 5년 만에 3.5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출산율 저하로 아이들이 줄었지만 소득 수준 향상으로 장난감은 매년 큰 폭의 매출 신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장난감은 한창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의 성장에 꼭 필요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적당한 장난감 놀이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높은 상상력과 지적능력을 가져다 준다. 문제는 절제를 하지 않고 활용한다는 점이다.
숙명여대 서영숙 교수(아동복지학과)는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은 인지발달과 또래활동에 적잖은 도움을 준다”면서 “하지만 과도한 장난감과 제대로 된 교육이 없이 장난감을 무조건 사주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풍요로운 장난감이 오히려 어린아이들에게 독(毒)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난감 중독’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지혜로운 대책과 방안이 시급한 때다.
장난감 발달사 장난감은 한 사회의 기술력과 문화적 전통을 반영하고 있어 장난감만 봐도 그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5000년 전 장난감은 대부분 찰흙과 나무 또는 헝겊으로 만들어졌다. 중세시대에는 기사나 대포의 모형, 수녀 복장을 한 인형이 어린이들의 주요 장난감이었다. 특히 프랑스 귀족 사이에서는 패션인형이 큰 인기를 끈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1700년대 네덜란드와 독일의 상류층 집에는 인형진열관이 꾸며질 정도로 인형 장난감이 크게 유행했다. 이후 1800년대에는 판금기술과 도자기 그리고 고무가 등장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장난감이 나왔다. 1900년대까지는 독일이 세계적인 장난감 메카였지만, 이후 미국의 장난감 제조업자들이 플라스틱을 이용한 신기술과 대량생산, 여기에 유통방식 등을 동원하면서 장난감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지금은 저가를 무기로 세계시장을 누비는 중국산과 고가의 일본 제품이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했다. |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