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언론의 마호메트 풍자 만평… 아랍이 하면 신성모독, 서구가 하면 표현의 자유?

모슬렘 여학생들이 서구 언론의 만평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한 컷의 만화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덴마크의 한 신문이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예언자 마호메트(영문 표기는 Muhammad)를 희화한 만화에 대한 논쟁이 서구와 이슬람 사이의 ‘문명충돌’로까지 치닫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덴마크 최대 일간지 ‘율란츠 포스텐’이 지난해 9월 예언자 마호메트를 테러리스트와 연관지은 12컷 만화를 게재하면서부터다. 당시 이 만화는 덴마크 내 모슬렘들의 많은 반발을 샀지만 국제적으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올해 1월 초 노르웨이의 한 잡지가 만화를 일부 게재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슬람국인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등이 덴마크 주재 자국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이며 외교 관계를 끊은 것을 시작으로 아랍권 이슬람 국가들이 주도한 덴마크 제품 불매운동과 항의시위가 들불처럼 확산됐다.
만화 게재 국가들 테러 경고
지난 1월 말 예상을 깨고 집권한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도 가자시티 내의 유럽연합(EU) 사무실을 폐쇄하라고 요구하며 덴마크인과 노르웨이인들이 테러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해 긴장감을 더했다. 덴마크 식품업계의 판매량은 며칠 사이 극감해 5500만 달러의 손실을 냈고 대량 감원 사태까지 벌어졌다. 문제를 촉발한 ‘율란츠 포스텐’의 코펜하겐 본사 건물에는 폭탄테러 위협이 가해져 직원들이 근무 중에 수시로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결국 이 신문은 1월 30일 편집국장 명의의 사과문을 내고 사태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2월 1일 프랑스,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유력 일간지들이 일제히 “표현의 자유를 지키자”며 문제의 만화 일부 또는 전체를 게재해 논란에 다시 기름을 부었다.
이제 파장은 유럽과 중동 밖으로 퍼져나갔다. 거의 모든 이슬람 국가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샤라프 대통령은 “만화를 다시 게재하기로 한 (유럽 언론들의) 결정이 테러리스트들을 자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프가니스탄의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만화를 게재한 것은 수억 명의 이슬람인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했다. 최대 인구의 이슬람국 인도네시아도 외교부 성명을 통해 “표현의 자유가 종교에 대한 불경(不敬)을 정당화해주지 못한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의 중부도시 물탄에서는 400여 명의 이슬람 학생들이 ‘프랑스에 죽음을’ ‘덴마크에 죽음을’을 외치며 양국 국기를 불태웠다.
12장의 만화를 전재하며 ‘우리는 신을 풍자할 권리가 있다’는 제목의 별도 만평까지 1면에 게재해 가장 큰 논란을 부른 프랑스 석간 ‘프랑스수아르’는 편집국장을 해임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덴마크인들에 이어 프랑스인들도 테러 대상에 올랐다.
모슬렘들은 알라신이나 예언자 마호메트의 모습을 형상화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비록 신의 형상화를 금지하는 명시적인 구절은 아니지만 코란 구절 ‘(알라는 하늘과 땅의 창조주… 그분과 닮은 것은 아무 것도 없나니…’(42장 11절) ‘아브라함이 말씀하시길, 너희들이 숭배하는 것의 형태가 있다는 말은 명백한 잘못이다’(21장 52~54절) 등은 우상 숭배를 경계하는 부분이다.
모슬렘들에게는 예언자 마호메트의 얼굴을 그리는 것조차 금기(禁忌)인 셈이다. 하물며 그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캐리커처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율란츠 포스텐’이 애초 게재한 만화 12컷은 내용상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만화들을 ‘마호메트’라는 제목 아래 옴니버스식으로 모은 것이다. 모슬렘들이 가장 많이 반발한 것은 다이너마이트 모양의 터번을 쓴 마호메트의 얼굴 그림이다(1번 그림). 모슬렘들은 이 그림을 모슬렘 전체를 자살폭탄테러범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구름 위에 서 있는 마호메트가 자폭테러로 숨져 하늘로 온 모슬렘 남자들에게 두 팔을 저으며 “그만, 그만, 이제 처녀가 다 떨어졌단 말이야”라고 말하는 모습을 그린 것도 있다(2번 그림). 평생 금욕 생활을 한 뒤 성전(聖戰)을 수행하다 목숨을 잃은 이슬람 전사들이 하늘에서 72명의 처녀들(houris)과 함께 살 수 있는 보상이 주어진다는 모슬렘들의 믿음 때문에 자폭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서구인들의 비아냥으로 보인다.
이슬람 반발에 정면대결 양상
또 다른 그림은 한 손에 칼을 든 마호메트가 부르카를 온 몸에 두른 두 여성을 양 옆에 데리고 있는 모습이다(3번 그림). 공교롭게도 여성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있고 마호메트만 눈을 가렸다. 샛별과 초승달로 만든 여성 형상들이 “예언자시여! 미치광이에 멍청한 남성들이 여성들을 통제하고 있습니다”라고 절규하는 모습을 그린 다음 그림이 이유를 설명해준다(4번 그림).
이 외에도 터번을 쓴 자폭테러 용의자 7명을 세워놓고 한 서양인이 “(다들 똑같이 생겨서) 그를 찾아낼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그림(5번 그림), 마호메트가 흥분한 모슬렘 남성들에게 “진정하게 친구들, 그건 단지 배교자 덴마크인들이 그린 그림일 뿐이네”라고 타이르는 모습(6번 그림), 마호메트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모습(7~10번 그림) 등이 있다.
서구 언론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2월3일 신문 1면에 “나는 마호메트를 그려서는 안 된다”는 문장을 반복적으로 적으며 이 문장들로 마호메트의 얼굴과 머리 모양을 형상화한 만평을 실었다(11번 그림). 프랑스수아르는 2월1일 1면에 부처, 야훼(유대교의 신), 마호메트, 예수를 구름 위에 나란히 앉혀놓고 예수가 화난 표정의 마호메트에게 “너무 불평하지 말게, 이제 우리 모두 여기에 만화로 그려지지 않았나”라고 말하는 만평을 내보냈다(12번 그림). ‘신성 모독’이라는 이슬람인들의 반발에 대해 “갈 데까지 가보자”며 정면 대결을 선언한 것이다.
많은 서구 언론들은 이번 논쟁을 ‘표현의 자유냐, 종교에 대한 존중이냐’의 문제로 요약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경없는 기자회’는 이슬람인들의 반발이 민주주의 필수 요소인 언론의 자유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르몽드’에 만평을 그리는 플랑튀는 “만화가들과 유머작가들이 종교 분야를 다루기가 점점 더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영국 배우 로완 앳킨슨은 종교적 증오심을 조장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하자는 자국 내 법안 마련 움직임에 대해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이 제한되며 코미디언은 종교에 대해 농담도 할 수 없게 된다”며 반대했다.
혹자들은 ‘신정(神政)정치’의 이상을 고수하고 있는 모슬렘들의 정교일치 전통에도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구인들은 중세 기독교 권력에 의한 암흑기를 경험한 서구 사회는 근대 이후 엄격한 정교분리(또는 세속주의.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것)의 원칙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근대 개념의 발원지 프랑스는 ‘공화국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평등 이념에 따라 공교육을 받는 이슬람 여학생들에게 히잡 착용을 금지해 마찰을 빚은 적도 있다.
이슬람권도 할 말이 많다. 아랍권 언론들은 “모슬렘들이 기독교나 유대교를 비판하면 ‘모독’이 되고, 서구인들이 이슬람을 모독하면 표현의 자유가 되느냐”(쿠웨이트 일간 ‘알 카바스’)며 서구의 위선적 모습을 성토하는가 하면 “우리는 코란에서 성모 마리아를 매우 존중하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의 왜곡된 누드화를 게재하는 식의 대응을 할 수 없다”(요르단 일간 ‘알 라이’)는 반응도 있었다.
요는 서구인들과 이슬람인들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민주주의와 정교분리가 더 우월하다든지, 내가 믿는 종교의 신성불가침만 지고(至高)의 가치라는 식의 논의는 어느 쪽도 갈등의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국제부/손제민 jeje1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