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어 자연산 거래 잠정중단 명령… EU도 밀수금지 법안 공표

러시아 모스크바의 시장에 진열된 캐비어. 러시아인들에게 캐비어는 결혼 등 큰 경사가 있는 날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1㎏에 최고 700만 원. 금보다 비싼 자연산 철갑상어알(캐비어) 거래가 지난 4일 유엔에 의해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바싹 말라가는 철갑상어의 씨를 지키기 위해서다.
유엔은 ‘멸종위기종 야생동식물 국제거래협약(CITES)’에 따라 앞으로 주요생산국 12개국에 철갑상어를 적절하게 포획하고 있는지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할 때까지 관련어업을 한시적으로 금지한다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캐비어의 주요산지인 카스피해 연안, 흑해·다뉴브강 하류 연안과 러시아·중국의 접경지대인 아무르강 연안에서는 당분간 철갑상어를 낚아올릴 수 없게 됐다. 해당국가 목록에는 이란과 러시아,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등을 비롯해 불가리아와 우크라이나 등이 포함된다. 이들 국가가 지난해 허가받은 수출량은 총 105t으로 총 860억 원어치다.
불법포획 극성 멸종 위기종
유엔의 이번 명령은 영국, 프랑스, 독일과 스위스 등 169개 CITES협약국에도 해당된다. 이들은 앞으로 자연산 캐비어를 수입해서는 안 된다. 다만 도·산매상의 창고에 쌓인 캐비어는 예외인데, 염장식품인 캐비어는 최장 1년 반 정도 보관이 가능하다. 이 분량이 소진될 경우 캐비어를 즐겨찾던 주머니 두툼한 미식가들은 자연산보다 맛이 떨어진다는 양식산을 얹은 카나페 등으로 입맛을 달래야 할 듯하다.
유엔에서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철갑상어에 대한 합법적 포획만큼이나 불법포획이 극성을 부리기 때문이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는 마피아가 돈 되는 캐비어 산업에 조직적으로 손을 뻗치면서 범죄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밀렵시장까지 포함할 경우 전체 철갑상어 시장은 수천 억원 규모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는데,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밀수 캐비어의 총량은 연간 100t에 달한다.
![[월드리포트]유엔특명 “철갑상어를 보호하라”](https://img.khan.co.kr/newsmaker/658/wor1-2.jpg)
철갑상어는 전 세계에 수십 종이 있지만, 특히 ‘후소 후소’로 불리는 벨루가 철갑상어 알이 제일 비싸다. 맛이 가장 뛰어나다는 소문에 수요가 끊이지 않자 싹쓸이 포획이 기승을 부려 멸종위기가 심각하다. 요즘 시세는 1온스(28g)에 200달러(약 20만 원)인데, 지난해보다 배 가까이 오른 값이다. 세브루가, 오세트라 캐비어도 만만찮은 고가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는 도덕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전 세계 캐비어 소비시장의 80%를 차지하는 미국은 카스피해의 자연산 벨루가 캐비어 수입을 금지한 데 이어 10월에는 흑해산도 수입을 금지했다. 캐비어 업자들에게는 날벼락, 벨루가 철갑상어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대서양 철갑상어는 씨가 말라
유엔의 철갑상어 포획금지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01년에 8개월, 2002년에 3주간 같은 조치를 취한 바 있다. 한시적으로 끝난 것은 수출길이 막힌 캐비어 수출국들이 앞으로는 철갑상어 보호에 힘쓰겠다고 공약해서다.
하지만 개발도상국가가 대부분인 수출국의 가난한 어부들에게는 ‘황금알’을 품은 채 바다 밑바닥을 헤엄치는 자연산 철갑상어는 견딜 수 없는 유혹이다. 마리당 최대 300만 개의 알을 품고 산란을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철갑상어를 물길을 지켰다가 그물로 낚은 뒤 대가리를 몽둥이로 때려 기절시키고 배를 가르면 비싼 알을 추출할 수 있다. 산란기에 벌어진 남획의 결과는 어쩌면 당연했다. 전 세계 캐비어 공급의 90%를 차지하는 카스피해 철갑상어 포획량은 1970년대 말 최고 3만t에 이르렀으나, 1990년대 말에 접어들어서는 10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2000년에는 550t. CITES가 처음 철갑상어 멸종문제를 제기하고 개입하기 시작한 게 1998년이니까 조치를 취하기에는 때늦은 감이 있다. 멸종의 시계는 눈깜짝할 사이에 종을 치고 있었다.
![[월드리포트]유엔특명 “철갑상어를 보호하라”](https://img.khan.co.kr/newsmaker/658/wor1-3.jpg)
캐비어라는 단어는 페르시아어의 ‘카크-아바’(어란)에서 유래했다. 철갑상어 그 자체를 이르기도 한다. 철갑상어의 고기와 알은 수세기 넘게 카스피해 연안국가들에 주요한 어업의 부분이었다. 이제는 옛날 얘기지만 1900년대 초만 해도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유럽으로 캐비어를 수출했다. 동부해안에서 서식하던 대서양 철갑상어 등에서 재료를 얻었다. 그러나 현재 이곳 철갑상어들도 인간의 탐욕과 환경오염으로 인해 ‘멸종위기종’이라는 처량한 딱지를 붙이는 신세가 됐다. 요즘 카스피해 연안의 철갑상어가 언론을 주목을 받는 것은 이곳이 철갑상어들의 마지막 생존지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고대 어류의 직계손이라는 이 물고기를 양식장 아니면 해양박물관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조성되면서 지난 5일에는 유럽연합이 캐비어 밀수를 금지하는 새로운 법안을 내놓았다는 소식이다. 수입캐비어를 상품으로 재포장하는 단계에서 반드시 산지를 표기하도록 할 예정이다. 유통과정을 투명하게 하지 않고서는 밀렵과 밀수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제안은 오는 6월 CITES 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WWF) 등 환경단체들은 그러나 호사스러운 인류의 입맛이 한 종을 멸절시키는 것을 막으려면 좀 더 엄격한 감시체계를 내놔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캐비어 생산국들이 생산량에 관한 투명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로 꼽힌다.
사라지는 동물들
지구를 점령한 인간들은 야생동물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다. 프란츠 M 부케티츠는 저서 ‘멸종 사라진 것들’에서 1만 년~2만5000년 전의 선사시대부터 인간의 사냥기술과 더불어 큰 포유동물들의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지적하면서 기후의 변화보다 인간의 창끝이 더 파괴적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마오리족이 1000년 전 이주한 폴리네시아군도에서는 길이 3m가 넘는 모아새가 사라졌고,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사람을 겁내지 않아 포르투갈어로 ‘바보’라는 이름을 단 ‘도도’새가 100여 년 전에 사라졌다. 북미 들소도 개념없는 사냥으로 멸종위기를 맞을 뻔했다. 잡고 싶을 때 잡기만 했을 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까 생각하지는 않았다.
바다의 무진장한 자원도 인간의 기술로 파괴되고 있다. 캐나다 연구진에 따르면 1970년대 시작된 심해 트롤망 어업 때문에 심해어의 개체수가 급감해 보호구역 설정 등 대책마련이 필요한 상태다. 청대구, 가시장어 등 심해어는 60년 넘게 살면서 몸길이 1m가 넘는 것도 많은데, 약 5종에서 87~98%의 개체수 감소가 나타났다. 바다 밑바닥을 훑는 방식 때문에 산호초 등 바다생태계도 파괴되고 있다.
<국제부/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