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제철인 문어는 일명 ‘바다의 카멜레온’이라 불린다. 적이 나타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몸 색깔을 바꿔 해초나 바위 등 주변 배경과 같은 보호색을 만들기 때문인데, 문어의 피부가 적·흑·황색의 색소 함유 세포로 이루어져 있어 단순한 신경자극만 받아도 순식간에 빛깔이 바뀌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절이나 관혼상제 상차림에 흔히 문어를 올리고, 옛날부터도 문어가 많이 잡히기로 유명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경상도와 함경도를 포함한 37개 고을의 토산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서양에선 문어를 데빌 피시(Devil Fish, 악마의 고기)라 해서 거의 먹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흑심을 품은 괴물’ 또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약자를 괴롭히는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보았다. 제2차대전 초기 대영제국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문어의 머리를 한 처칠 총리가 문어발로 인도와 아프리카 등 식민지를 휘감고 있는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다.
꿈틀거리는 긴 다리와 약간은 혐오스러운 생김새 때문일까, 동양문화권에서도 문어를 달가워하진 않았던 듯하다. 간혹 문어 중에 두 마리가 서로 발이 얽힌 채 잡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교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철천지원수처럼 서로의 발을 잘라 먹느라 얽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일컬어 ‘문어 사랑’이라고도 표현한다.
그 이미지야 어쨌든, 문어는 예부터 보양식과 민간치료제로 애용되었다. 대표적인 건강식으로 ‘건곰’이 있다. 문어와 명태, 홍합을 넣고 잘 끓이다가 조미료 삼아 파를 썰어넣은 국으로, 노인들이나 병후 회복식으로 먹었다. 또 바닷바람과 햇볕에 껍질째 말린 피문어는 피를 맑게 하고 혈액순환에 좋다고 해서 산후조리하는 산모들에게 권했다. 고문서인 ‘규합총서’에는 “육질이나 맛이 오징어와 비슷하다. 맛이 깨끗하고 담담하며 알은 머리와 배, 보혈에 좋고 토하고 설사하는 데 유익하다”고 전해진다.
민간에서는 좀더 폭넓게 쓰였는데 치질로 고생할 때에는 먹통의 먹물을, 두드러기나 동상이 있을 때에는 문어 삶은 물로 닦아내 치료했다. 쇠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에도 문어 삶은 물이 아주 효과적이라고 한다. 때문에 소가 문어를 먹으면 장이 녹아서 죽는다는 옛말이 전하는 모양이다. 문어의 단맛을 내주는 타우린 성분은 혈중 콜레스테롤 증가를 억제하여 동맥경화나 심장마비 등 성인병을 예방하고 시력 감퇴를 예방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문어는 신선도를 가늠하기 힘든 수산물 중 하나지만 미끈미끈한 점액이 많거나 삶았을 때 껍질이 벗겨지면 선도가 떨어진 것으로 보면 된다.
조성태<한의사·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겸임교수>
요리법 냉동문어 미나리볶음 ■재료 냉동문어 300g, 미나리 50g, 양파 1/4개, 홍고추·청고추 각 1개, 소금 약간, 고추장볶음양념장(고추장 2와2/1큰술, 간장·맛술 1작은술, 다진 마늘·물엿 1큰술, 생강즙 1/4작은술, 참기름1/2작은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요리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