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일씨 등 일제때 훼손된 문화 복원… 한지·대나무 이용 고유의 등 재현
등을 만드네 등을 만드네
수박등 마늘등 연꽃등을 만든다네
칠성등 일월등을 만들면 길복이 온다네
병등 방울등은 누굴 위해 만드는고
배등 가마등은 님을 위해 만든다네
학등 잉어등 거북등은 나라 위해 만든다네
하늘 나르는 연등을 만들어
등산에 걸린 달을 따러 가세
<부여지방 민요 中>
고대신화에서 빛은 신이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는 동시에 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도구였다. 빛이 만들어내는 밝음은 부정한 것, 잡스러운 것을 물리치고 선한 것을 보호하는 생명력의 원천이었다. 우리네 조상들이 불빛을 밝히고 불놀이를 했던 것은 그러한 마음의 발현이다. 달집태우기, 달맞이, 연등달기, 등싸움놀이, 횃불싸움 등의 세시풍속에는 빛이 뿜어내는 밝음을 통해 행운을 불러들이고 불행을 쫓던 마음이 깃들었던 것이다. 특히 사월초파일엔 집집이 환하게 수많은 등을 밝히고 춤과 노래, 그리고 다양한 놀이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결속을 방해하려는 일본의 책략으로 세시행사와 대동놀이가 금지되면서 전통등도 훼손됐다. 등을 들고 3~4열로 행진하는 제등행렬은 우리 전통과는 관계 없는 것으로 일본식 불교행사와 민간축제의 특징이다. 등 역시 국적불명의 것들이 난무했다.
프랑스 파리 공원에서 전시 찬사
이처럼 우리 전통의 맥이 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지와 대나무를 이용한 우리 전통등을 복원, 재현하는데 앞장서는 장인(匠人)이 있다. 전영일씨(36)다.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가 전통등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8년의 일이다.
“1997년 당시 조계종 문화부장이던 지현스님(현재 청량사 주지)이 초파일 연등축제를 한국 전통의 연등축제로 복원해보자며 동국대 미대 출신 젊은 작가들에게 연구를 의뢰했어요. 그때 전통등연구회가 생겼고 우리 전통등은 대나무나 철사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한지를 붙인 후 색깔을 입히는 등 다종다양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덕분에 1998년 연등축제에는 오랜만에 우리의 전통등이 대거 선보일 수 있었어요. 전 1999년에 합류했는데 누군가는 계속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어요. 물론 재미도 있었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하는 거예요. ”
초파일을 포함해 연평균 5~6회의 전통등 전시회를 갖고 지난 3월에는 한솥밥을 먹는 공방 작가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 아클라마타시옹 공원에 우리의 전통등을 전시, 파리시민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이 전시는 매년 9월 원주에서 열리는 ‘원주 한지축제’를 방문한 파리 관계자들의 초대로 마련된 것이었다.
전씨는 대중이 향유하고 즐기지 않으면 전통등 역시 박물관용으로만 보존될 뿐, 결코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전통등 만들기 강습을 계속하는 이유다.
“우리 조상들이 만들던 등을 흉내내 제작하고 있지만 여기엔 시대가 상실돼 있어요.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변천사 중간이 끊어졌기 때문이죠. 각종 문헌을 뒤지고 민속학자의 도움을 받아도 한계가 있어요. 더 큰 문제는 어렵게 우리의 등문화를 세워도 이것을 봐주는 대중이 많지 않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전통등 기법을 이용하되 현대인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좋아할 수 있는 조형성을 가미한 등을 제작하기로 했어요. 예를 들어 고구려 수렵도에 나오는 무사나 마을 입구에 세웠던 장승 등 우리 전통의 소재를 전통 기법을 통해 다채롭게 표현하는 것이죠.”
3월까지 필룩스조명박물관 전시
그에 의하면 우리 전통등은 모양에 따라 상징하는 바도 다르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면서 석류등·수박등·마늘등을, 무병장수를 위해서는 거북등과 학등을, 입신출세를 위해서는 잉어등을, 요사스러운 것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호랑이나 표범등을 만들었다. 또 종등은 지옥중생을 구제해 억압과 고통을 멈추게 한다고 믿었다.
흥미로운 점은 등문화가 발달한 중국이나 일본의 등과 우리의 등은 얼핏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전씨는 “등은 그 자체로 발달한 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에 포함돼 전수된 것이기 때문에 그 민족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대륙적 기질 때문인지 중국인들의 등은 크고 화려해요. 특히 사회주의 국가가 되면서 작품성보다는 여러 사람이 한눈에 볼 수 있고 움직임이 많은 등이 번성했죠. 설화 등 이야기가 있는 등문화가 확산됐고 비용면에서 저렴한 합성섬유를 사용해 제작한 등이 많아요. 반면 일본의 등은 사무라이를 표현한 작품이 상당수예요. 주제가 그렇다보니 모양뿐 아니라 색상도 살벌하죠. 같은 붉은색을 써도 우리는 따뜻한 느낌의 붉은색을 쓰는데 비해 일본 작가들은 차가운 느낌의 전위적 붉은색을 사용하거든요.”
그는 2006년 1월 13일부터 3월 13일까지 필룩스조명박물관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감성조명과 한지 전통등의 만남을 통해 우리 전래 등의 아름다움을 형형색색으로 표현해보자는 취지다. 전영일씨 외에 국근일, 신승용, 풍미화, 현재열 등 전영일공방 작가들이 함께 참여한다.
<양주/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필룩스조명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