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자폭테러 이슬람을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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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의 성전 분발 촉구하면서 전통적 남녀차별 딛고 ‘여성 해방의 길’ 제시

[월드리포트]여성 자폭테러 이슬람을 일깨우다

2001년 9월 11일 비행기를 몰고 미국 뉴욕 무역센터를 공격했던 무하마드 아타는 테러를 감행하기 훨씬 전인 1996년 이런 유서를 남겼다.

“성전(聖戰)에 임할 때에는 완전한 마음의 평정 상태에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의 나와 천국에서 결혼식을 올릴 나 사이에 놓인 시간은 매우 짧기 때문이다. 내 장례식에 여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한다. 나중에라도 내 무덤 근처에는 여자가 와서는 안 된다. 혹여 내 시신을 누군가 씻게 된다면 나의 음부는 꼭 장갑을 끼고 씻어주기 바란다.”

성전을 위한 자폭 테러가 곧 성적(性的) 황홀경에 이르는 길이었던 아타에게 감히 여성이 그의 활동에 개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하물며 여성이 성전에 참여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죽은 지 4년. 아타가 속했던 조직 알 카에다가 가장 치열한 ‘성전’을 벌이고 있는 이라크에서는 죽은 아타가 벌떡 일어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원리주의, 극단주의 이슬람 저항세력을 대표하는 알 카에다가 여성 전사들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사이에 무엇이 변한 것일까?

잇따르는 여성 자폭테러 12월 6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한 경찰학교 교실에 니카브(눈만 내놓은 이슬람 여성의 두건)를 쓴 여성 두 명이 들어왔다. 경찰 후보생들은 임산부처럼 배가 불룩한 이들의 등장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이슬람권에서는 남성이 여성 특히 임산부에게 손대는 것을 금기시한다. 그러나 수업이 시작될 무렵 두 여성은 옷속의 끈을 더듬었고 이내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건물이 폭삭 내려앉았다. 경찰과 후보생 등 36명이 숨지고 76명이 부상했다. 최근 3개월간의 폭탄 테러 중 가장 큰 피해였다. 이라크 알 카에다는 재빨리 성명을 내고 “우리가 했다”고 밝혔다.

이라크에서 여성 자살폭탄 테러범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9월. 시리아 접경 텔 아파르 마을에서 미군의 저항세력 소탕 작전이 벌어진 지 2주가 지나서였다. 여성 1명이 자폭해 8명이 사망한 것이다. 이어 10월에는 두 번째 여성이 남편과 함께 모술의 미군 정찰대를 향해 자폭 테러를 감행했다. 이 여성들은 현장에서 산산조각이 났고 누구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지 않아 이들이 남자처럼 차린 여성이었다는 점 외에 신원, 범행 동기 등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여성테러범이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1월 13일 요르단 국영 TV에 전통 이슬람 복장에 폭탄벨트를 허리에 두른 한 여성이 방영되면서부터다. 사지다 무바라크 아트로스 알 라샤위(35)라는 이 여성은 나흘 전 요르단 수도 암만의 호텔에서 남편과 함께 연쇄 자폭 테러를 감행하려다 폭탄이 터지지 않는 바람에 살아남아 경찰에 체포됐다. 남편은 폭탄이 터져 그 자리에서 숨졌으며 결혼식 하객 56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비슷한 시기 서구인들이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벨기에 여성이 자폭 테러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 미리암(38)이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모로코계 벨기에인 남편과 함께 11월 9일 이라크 바쿠바의 미군 호송차량을 상대로 자폭 테러를 저질렀다. 벨기에 검찰에 따르면 미리암은 원래 뮤리엘 더고크라는 이름을 가진 벨기에의 도시빈민으로 일찍이 벨기에에 이민 온 터키, 알제리계 남성들과 교제했다. 결국 그는 모로코계 남성을 만나 결혼했으며 이름을 이슬람식으로 바꾸고 종교도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그는 무슨 이유인지 아이를 가질 수 없었으며 언젠가 모로코를 방문했다가 눈빛이 바뀌어서 돌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용당하는 것인가, 주체로 나서는 것인가 테러 방지에 초점을 두고 있는 서구 언론 및 정보기관들은 여성을 이용한 테러가 성공할 확률뿐 아니라 미디어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는 점에 주목한다. ‘제2의 미리암’이 이라크가 아닌 유럽 또는 미국 땅에서 같은 행동을 해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두려움이 강하게 깔려 있다. 이들은 특히 자폭 테러 외에는 다른 목적 없이 결합한 커플(부부) 테러범들의 등장에 충격을 받고 있다.

자살 테러 전문가인 미아 블룸은 “여성 테러범이 의미하는 것은 테러리즘이 주변부 현상을 넘어섰고 이제 저항세력이 언제나 당신 주변에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위크’는 최신호(12월 12일자)에서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 등을 인용해 알 카에다가 여성 테러범을 내세워 남성 전사들의 분발을 촉구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알 카에다 핵심조직과 이라크의 전위부대가 현실적으로 신병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 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알 자르카위와 관련 있는 한 웹사이트는 “남성들이 생명에 연연할 때 우리 누이들이 순교하겠다고 나선다면 남성들은 수치를 느끼지 않겠는가”라는 알 자르카위의 메시지를 올린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여성을 남성의 종속물로만 보려는 서구의 이슬람 여성관이라는 견해도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인 하마스의 1988년 서약(covenant)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이슬람 여성들의 성역할은 전사(남성)를 만들어내고 미래세대를 교육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슬람 여성이 나름대로 성전을 수행하는 방법이다.

미국의 대 테러전 본격화는 곧 이슬람인들의 성전이 본격화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 많은 이슬람 남성이 죽어갔다. 집안에서 성전을 수행해온 여성들이 무기를 들고 집밖 성전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대개 남편과 형제, 아버지 등 자신 주변의 남성들을 잃은 뒤다.

요르단 부부 테러에서 살아남아 전 세계에 공개된 여성 테러용의자 사지다가 테러에 가담하게 된 동기도 이라크 주둔 미군의 의해 사망한 형제들에 대한 복수심이었다. 그는 지난해 4월 미군의 팔루자 폭격 등에서 3명의 형제를 잃었다. 이후 그는 이라크 알카에다의 문을 두드렸다. 아무리 완고한 이슬람 남성들도 이러한 여성들까지 막을 수는 없는 일.

이와 비슷한 사례는 러시아를 상대로 분리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는 체첸 반군의 ‘검은 과부(Black Widow)’라 불리는 여성 테러단체에서도 볼 수 있다. 러시아군에 의해 남편과 가족이 희생된 여성들로 구성된 이 단체는 러시아에 대한 강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과감한 테러를 결행해왔다. 2000년 여름 27명의 러시아 특수부대원들을 사살하며 활동을 시작한 후 지난해 89명의 사망자를 낸 러시아 여객기 폭발테러, 북오세티야 공화국 학교 인질극 사태 등 체첸반군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테러에 동참했다.

알 카에다가 2003년 3월 여성 자살폭탄 공격부대를 창설하고 아프간, 체첸 등 세계 각국의 이슬람 출신 여성 전사들을 집중조련시키는 훈련캠프도 공개했지만 아직도 지도부 내에는 여성이 테러에 나서는 것에 대한 의견이 양분돼 있다.
여성 자폭테러에는 신병 동원에 어려움을 겪는 알 카에다의 필요에 여성이 동원된 측면이 없지 않다. 동시에 여성 테러는 전통적인 이슬람 사회를 지배하는 복종과 종속의 규칙, 베일과 부르카 속에 숨어 있던 여성들이 ‘이색적인’ 해방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제부/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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