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시민 되기, 알쏭달쏭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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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 획득 시험제도 도입… 본토인도 헷갈리는 난이도 논란

영국의 국가인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Queen)’를 알거나 독특한 영국 억양으로 차를 주문할 수 있다면 영국에서 살아가는 데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 ‘진짜’ 영국인이 되려는 사람은 더 많은 질문에 즉각 답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할 것 같다.

‘영국의 표준 전압은 얼마인가?’ ‘응급상황 발생시 이용할 수 있는 전화번호는 몇 번인가?’ ‘코크니(Cockney), 조디(Geordie), 스카우즈(Scouse)는 각각 어느 지역의 사투리인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성인은 각각 누구이며 그 성인을 기념하는 날은 언제인가?’

알쏭달쏭한 위 질문들은 11월 1일부터 시행된 영국 시민권 획득 시험의 예상문제들이다. ‘라이프 인 더 유케이 테스트 (Life in the UK Test)’로 불리는 이 시험은 영국 시민권을 신청한 사람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24개 객관식 중 18개 이상 맞춰야

영국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04년 한 해 동안 영국으로 이주한 사람은 모두 58만2000여 명이고 시민권을 획득한 사람은 14만여 명에 이른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민자 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따라 시민권을 획득하려는 사람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이전에는 시민권을 신청할 때 별다른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만 18세 이상의 성인이 적정한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춘 상태에서 합법적으로 5년 이상 영국 내에 거주하면 간단한 선서만으로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다.

시민권 획득 시험은 45분간 24개의 객관식 문제를 풀도록 돼 있으며 이 가운데 18문제 이상을 맞히면 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간주된다.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한번에 34파운드(약 7만 원)를 내야 한다. 합격할 때까지 무제한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시험 자체의 부담은 크지 않은 편이지만 시험 문제의 난이도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영국 이민부 토니 맥널티 차관은 “한 개인의 인생에서 영국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라면서 “영국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이해하고 실행해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알아보는 시험”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라이프 인 더 유케이 테스트’의 모의 시험에 참여했던 소수민족그룹이나 ‘ESOL(English Speaker of Other Language, 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 모임)’은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도 풀기 어려울 만큼 까다롭다”며 시험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런던 7·7 테러 이후 영국 내 이민족에 대한 경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동유럽 국가들의 EU 가입으로 값싼 노동력 확보가 훨씬 쉬워진 터라 시민권 획득은 고사하고 영국 내 체류 비자 발급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까다로워졌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엄격해지는 제도가 영국적인 것을 기준으로 이민자들을 소외시키려는 의도를 숨긴 것은 아닌지 불만 섞인 목소리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런던/정수진 통신원 jungsu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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