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로라공주·6월의 일기 새로운 시도… 관객에게 메시지 전달하는 효과 커
![[문화]연쇄살인범 편이 된 감독들](https://images.khan.co.kr/nm/653/cul2-1.jpg)
스릴러 영화가 추구하는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영화에 현실감이 있을 때 극대화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극장 안에서 2시간 동안만 관객을 휘어잡을 뿐이다. 극장 바깥을 나가면 관객은 현실로 돌아간다. 하지만 12월 1일 개봉한 영화 ‘6월의 일기’는 다르다. ‘내가 저런 상황에 닥친다면?’이라는 생각에 영화가 끝난 뒤에도 머릿속이 뒤숭숭하다.
영화의 중심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왕따다. 육교에서 한 중학생이 난자당해 살해되고 같은 반 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두 사체의 위 속에서 발견한 캡슐 안에 일기의 일부분이 발견된다. 이를 통해 형사 추자영(신은경)과 김동욱(문정혁)은 연쇄살인사건임을 파악한다. 이어 이 글씨가 한 달 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여진모의 것과 같다는 게 밝혀지면서 여진모의 엄마 서윤희(김윤진)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이 와중에도 살인사건은 진모가 미리 써놓은 ‘6월의 일기’대로 계속 발생한다. 영화는 서윤희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기존 영화와 달리 범인 미리 알려줘
살인 동기는 추자영의 수사를 통해 서서히 밝혀진다. 진모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 영화 속 왕따 묘사는 무서울 정도다. 구타 수준을 넘어 성적인 치욕마저 당한다. 하지만 진모는 고통을 토로할 곳이 없다. 엄마는 빚 때문에 행방불명된 남편 대신 생계를 꾸리느라 힘겹다. 믿었던 엄마마저 등을 돌리자 진모는 결국 자살하다시피 삶을 마감한다. 원래 서윤희는 살인만은 안된다고 생각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진모가 당한 일을 알아가면서 그들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몰랐던 자신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연쇄살인범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형사 추자영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추자영이 서윤희에 대해서 알아가면 갈수록 관객은 혼란스러워진다. 서윤희에게 과연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임경수 감독은 왕따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50대 여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코믹물이었던 시나리오를 왕따를 주제로 한 스릴러물로 바꾼 이유다. 영화는 처음부터 사회의 무관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칼에 찔려 도움을 청하는 중학생을 피하는 행인,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하는 여성을 보고도 모르는 척하는 20대 남성. 무관심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이는 주변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진모엄마 서윤희도 마찬가지였다.
![[문화]연쇄살인범 편이 된 감독들](https://images.khan.co.kr/nm/653/cul2-2.jpg)
원작을 쓴 서민희 작가는 자신의 딸이 납치당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큰 일은 없었지만 당시 방관자에 대한 서운함, 제도권에 대한 서 작가의 불만은 분노로 이어졌고 시나리오에 이런 분노를 담았다. 감독은 영화에서 사회문제를 최대한 줄이고 정순정 개인의 복수로 집중하려 했지만 사회문제는 영화 전반에 흐르고 있다.
두 영화는 비슷한 형태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기존 스릴러영화와는 달리 범인을 미리 알려준다. 대신 범인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오로라공주는 연쇄살인범 정순정의 심리를 따라가고, 6월의 일기는 형사 추자영의 시각을 통해 연쇄살인범 서윤희의 심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살인범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단서를 조금씩 흘리다 종반부에 이르러서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이쯤 되면 많은 관객은 살인범에 공감하게 된다.
관객에 범인 심정 이해하도록 유도
이런 내용을 가진 한국 영화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한다. 새로운 시도에 관객은 호응을 보여줬다. 얼마 전 간판을 내린 오로라공주는 100만여 명의 관중을 동원했는데 이는 스릴러영화 중에서는 많은 편이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오로라공주에 대해 “연쇄살인범과 구체적이고 잔혹한 살해장면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찾은 것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에 호응한 것이 아니겠냐”며 “이런 방법이 성공했다는 점에서 오로라공주는 한국 영화 속에서 중요한 성취를 이뤘다”고 말했다.
두 감독은 연쇄살인범을 ‘변호’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물론 이들이 살인이나 사적 복수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은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영화의 흐름 속에서 연쇄살인범의 심리에 동조한 관객은 연쇄살인범에게 돌을 던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원죄를 갖고 있는 사회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임 감독은 “사회의 거울인 영화에 이런 내용이 등장하게 된 것은 그만큼 사회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극악무도하고 흉악한 범죄가 계속 반복될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6월의 일기 뒷이야기![]() 영화는 충격적인 내용의 왕따 동영상으로 현실감을 더한다. 임 감독은 교사와 학생, 그리고 자료를 바탕으로 왕따 동영상을 만들었다. 너무 과한 것은 아닌가 싶어 여러 학생에게 “너무 영화적이지?”라고 묻자 현실은 더 심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는 서윤희라는 인물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다. 120여 장면 중 12장면밖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큰 배우가 하지 않는다면 인물이 죽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섭외가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임 감독은 배우 김윤진을 찾아가 영화의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했다. 김윤진은 흔쾌히 허락하면서도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감독에게 물었다. “저 정말 12장면밖에 안나와요? 나름대로 2002년 제23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탔는데…”라며 웃었다. 등장횟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김윤진의 열연 덕택에 호소력을 갖는다. 종반부에서 서윤희가 아들이 당하는 동영상을 보는 장면이 있다. 롱테이크로 2분여 동안 이어지는 이 장면을 찍을 때에는 미처 왕따 동영상이 제작되기 전이었다. 감독의 설명만 듣고 김윤진은 카메라를 응시하며 분노와 죄책감이 뒤섞인 열연을 실감나게 해낸다. 이 장면을 통해 관객은 서윤희의 분노에 크게 공감하게 된다. 감독은 왕따를 당한 진모의 얼굴을 끝까지 숨기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에 이르러서야 공개했다. 진모의 얼굴을 보지 못한 관객은 그가 어리바리하다고 받아들이기 쉽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 소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를 통해 관객은 영화 속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어딘가에는 벌어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갖게 된다. 이런 느낌은 영화가 현실에 발을 딛는 데 도움을 준다. 영화는 형사 이야기와 복수 이야기의 교집합이다. 형사 이야기가 진행되는 부분에는 신은경, 문정혁을 내세운 코믹연기가 많다. 이는 더 많은 관객이 영화를 보러 찾아와줬으면 하는 감독의 바람 때문이다. 일단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관객이 영화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
<정재용 기자 jj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