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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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15주년을 맞아 현지서 둘러 본 보통사람들의 리포트

[월드리포트]독일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독일연방공화국(Federal Repubic of Germany, Bundesrepublik Deutschland)의 외교부가 2003년 5월 출간한 ‘독일에 관한 사실들(Facts about Germany)’이라는 영문 서적은 외국인들에게 독일의 현실을 알려주는 공인된 안내 책자다. 이 책의 354쪽~355쪽에는 사회(Society)라는 작은 제목 아래 독일인 가족에 관한 설명이 있다.

“…점차 많은 부부들은 가정의 잡일을 나눠서 하고… 함께 사는 ‘커플’ 중 89%는 여전히 전통적인 남녀로 이뤄진 가정을 꾸리고 있다. … 1996년 이래 서독 내 결혼하지 않고 한 지붕 아래 함께 사는 커플이 25% 늘어나 170만명에 이르고….”

이 책의 152쪽에는 첫째, 둘째, 셋째 아이에 대해 매월 각각 154유로를 지급하고, 넷째 아이와 그후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각각 매월 179유로를 지급하며…”라는 부분도 있다. 이건 우리나라가 자녀 출산을 위해 마련한 대책과는 좀 다르다. 또 책의 어딘가에는 “젊은이들은 늦게 결혼하는데다 아이도 늦게 가지며…”라고 돼 있다.
기자는 지난 10월 말 독일 취재 일정을 앞두고 이 책을 읽으면서 현실이 과연 책의 서술과 일치하는지 점검해 보기로 했다. 아래의 인물들은 기자가 독일의 여러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요즘 독일인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증을 풀어보자.

페터 보이텔(Peter BEUTEL) 괴테 인스티투트(Goethe Institut, 독일 문화원) 안내자로 대학 생활만 9년째인 30대 초반의 젊은이다. 프랑크푸르트암마인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만난 첫 독일인.

공항에 나온 페터 보이텔(독일·프랑스인 등 유럽인들은 BEUTEL처럼 성을 영문 대문자로 쓴다)은 185㎝ 이상의 키에 노란 머리카락. 그는 머리카락을 묶어 골키퍼 김병지처럼 ‘꽁지머리’를 하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암마인(마인강에 연한 프랑크푸르트, 오데르강에 연한 프랑크푸르트는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라고 한다)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페터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대학’의 학생. 대학에 입학할 때는 외국어 전공이었으나 지금은 전공을 정치학으로 바꾸었다.

독일의 공립학교들(초중고와 대학, 대학원)은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대학생 신분을 즐기려 함인지 대학생활을 5년 이상 하는 학생이 흔하다. 대학을 통상 5년 만에 졸업하면 매우 빨리 졸업하는 것이라고 한다(열심히 공부할 경우에만 이 기간에 졸업할 수 있다). 독일의 대학은 우리의 대학 4년제에 석사과정을 묶어서 교육하기 때문. 문과 대학을 졸업하면 석사학위에 해당하는 ‘마기스터(Magister)’를 수여한다(‘마기스터’의 악센트는 둘째 음절에 있다).

[월드리포트]독일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페터의 말에서 독일인은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2~3년간 더 교육을 받아야 정식으로 직장에서 일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기자가 만난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아시아 담당 국제부 차장 페터 슈투름 박사(Dr. Peter STURM)는 “신문사 입사 후 2년간은 교육받아야 기사도 쓰고 편집도 한다”며 페터의 말을 확인해 주었다. ‘독일인들의 교육 수준이 이 정도로 높은가’ 내심 놀랐다. 기자가 되려면 대학 졸업 후에도 몇 년 더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페터 보이텔의 희망은? 그는 현재의 국제관광 업무를 발전시켜 독립적인 ‘고급 관광 안내업’을 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최고의 관광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최고의 값을 받겠다”고 말하는 그는 아직 미혼.

게릿 복(Gerrit BOOK)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속철도 ICE(Inter-City Express)를 타고 밤늦게 베를린에 도착해서 만난 안내인은 게릿 복이었다. ‘복’은 영문으로 ‘책’을 의미하는 철자여서 “가문이 책과 연관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책과 무관하다면서 독일식 발음은 ‘북’이 아니라 ‘복’이라고 답했다(독일어로 책은 ‘다스 부흐 das Buch’다). 그는 자신의 조상이 스웨덴에서 왔다고 말했다.

키가 185㎝를 넘는 듯 호리호리한 복은 일부의 영어 발음만 부정확할 뿐 영어가 대체로 괜찮았다. 복은 원래 서독지역인 브레멘에서 태어났으나 현재는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 처음 만난 날 밤이 늦었지만 기자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친척들이 찾아 왔느냐”고 그에게 물었고, 그는 “친척들이 몇 차례 다녀갔다”고 답했다.
복의 명함 아래쪽에는 한자로 ‘博書(푸슈)’라고 쓰여 있다. 그는 “몇 년 전 중국에 유학갔을 때 중국인 교수가 한자로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했다. 중국인 교수가 아마 그의 성(Book)을 보고 이렇게 작명했나보다. 복은 베를린의 유명한 훔볼트 대학에서 중국학(사이놀러지·Sinology)을 공부하다가 중국 칭다오에 있는 쓰촨대학으로 유학, 2년간 중국어를 배우면서 동시에 중국인들을 상대로 독일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복은 독일어 회화를 가르친 경험을 들려주었다. 중국인들도 한국인들처럼 소극적 또는 내성적이어서 그런지 좀처럼 용기있게 독일어로 말하려 하지 않더라며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 외국어를 잘 배울 수 있겠느냐”는 외국어 교육론을 전개했다. 그의 말이 맞다.

중국체류가 끝난 후 복은 베를린에 돌아가 4년 전 중국학 석사를 받았다. 지도교수는 “박사과정에 지원하면 받아주겠다”고 제의했으나 공부하는 과정이 너무 길고 힘들 것 같아 수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그는 영어와 중국어를 쓰면서 관광 안내를 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월드리포트]독일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복과 기자는 ▲독일군은 독자적 작전권을 갖고 있는데 한국군은 (전시) 작전권을 갖고 있지 않은 문제 ▲복은 군대 복무(독일도 남자의 경우 1년간 군대 근무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를 마쳤는지 ▲통일 후 독일이 얼마나 변했는지 등을 놓고 대화했다.

복은 군대 근무보다는 ‘민간 근무(civilian service)’를 택해 3개월 기초훈련을 받은 뒤 9개월 동안 정신병원에서 근무했다고 말했다. 복은 “정신병원 근무중 슬로비디오로 보듯이 온몸을 매우 천천히 움직이던 여성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너무 천천히 움직이는 것도 정신병이라고 그는 회상했다.

독일 여행중 가장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사람이 게릿 복이다. 그의 꿈은? 그는 인터넷을 통해 국제적 규모에서 관광사업을 할 것을 모색중이다. 페터 보이텔과 유사한 직종에 뜻을 두고 있다.

아니카 슐츠(Annika SCHULTZ) 괴테 인스티투트 프랑크푸르트 지사 소속의 또 다른 안내자. 30대 초반~중반으로 보이는 아니카는 상당한 미모에 세련된 여성인데 검정색 양장을 입고 기자 일행을 안내했다.

그녀는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스페인으로 가서 청소년기를 보내 스페인어와 독일어를 모국어처럼 말할 수 있는 ‘바이링궐(bilingual)’이라고 소개했다. “스페인어로 장사가 되겠느냐”는 질문에 “사업은 잘 안 되지만 스페인어 서적을 수시로 번역한다”고 말했다. 영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오클랜드에 수년간 체류하면서 배웠단다. “나도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2002년 후반기부터 2003년 말까지 체류하며 저널리즘 스쿨에 다녔다”고 말하자 그녀는 “혹시 우리가 어디서 스쳐 지나갔는지 모르죠”라고 말하며 웃었다.

서독 출신으로 스페인과 미국 생활을 경험한 아니카는 “동독에 가봤느냐”는 질문에 “동독에는 왜 가느냐”고 대답했다. 그녀는 “동독에 먼 친척이 있으나 서로 볼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아름답고 세련된 그녀가 ‘동서독인 간에 마음의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자에게 인식시켜 주었다. 키가 170㎝ 이상으로 보이는 아니카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손을 흔들며 기자 일행을 전송했다.

세바스티안 플루크바일(Dr. Sebastian PFLUGBEIL) 그는 아마 기자가 독일에서 만난 최초의 ‘사회 부적응’ 인간일 것이다. 58세. 그러나 플루크바일 박사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자신의 철학을 주장했다. 동베를린에서 태어난 박사는 동독의 ‘청년단’에 속하지는 못했으나 공부를 열심히 해 핵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구동독 치하에서 과학아카데미에 소속돼 있었으나 ‘반체제적 민주인사’로 찍혀 박사학위도 받지 못했다.

통일 후 어렵게 핵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독일(통일된 독일)의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폐기물이 폐암 등 인체에 심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로 인해 독일은 핵발전소를 모두 폐쇄했다고 말했다. ‘독일에 관한 사실’이란 책엔 독일에는 핵발전소가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이후 그는 원자력 업계나 정부의 어디서도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그는 “구동독 시절에는 공산 독재의 억압을 받았고, 통일된 독일에서는 일자리가 없어 여전히 가난하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아내는 물리학자, 딸은 산파로 생계를 꾸린다. 그는 “돈 없이 자본주의 사회에 산다는 것은 감옥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는 외국으로 ‘탈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울리히 바움개르텔 (Dr. Ulrich BAUMGAERTEL) 독일인 할아버지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라이프치히 월드컵 경기장과 시내를 안내한 바움개르텔 박사(64)는 ‘컴퓨터를 사용한 스포츠 훈련’의 전문가다. 반도핑 실험 등 업무에서 실적을 올렸다고 그는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또 “구동독 시절 스포츠는 정치의 일부로 이용당한 측면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바움개르텔 박사는 “월드컵이 끝나면 라이프치히 경기장을 사용할 일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미술가로 명성을 날린다고 자랑하면서 손자와 손녀 얘기도 곁들였다.

이원복 교수의 만화 ‘먼 나라, 이웃 나라’에 “독일인 아빠들은 매우 엄격하다”고 서술된 것이 기억나서 “정말 그런가” 하고 물었다. 박사는 요즘 젊은이들은 아이를 하나나 둘밖에 낳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집안에서 황제”라는 말로 대답했다. 중국의 한 자녀가 ‘소황제’로 불리는 것이 연상됐다. 그의 아들은 그의 손자(8)와 손녀(2)에게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박사는 동시에 “이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수학을 직접 가르친다”며 손자 자랑을 했다.

안야 베커(Anja BECKER) 안야는 11월중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박사과정 학생이다. 안야는 파트타임으로 ‘라이프치히 전후 역사 박물관

(Zeitgeschichtliches Forum Leipzig)’에서 안내를 한다. 미국과 독일의 근대 관계사를 전공한 그녀는 박사논문 자료수집을 위해 최근 2년간 하버드대학과 MIT에 머물렀으며 고교시절에도 미국에서 1년간을 보냈다고 한다. 10월말 기자가 만난 안야는 표정이 맑고 밝았다. 안야는 “이미 박사논문 방어를 끝냈고 한 달 후면 박사가 된다”며 즐거워했다.

기자는 이들 외에도 여러 독일인을 만나 대화했다. 내년 2월부터 독일인이나 독일주재 한국인들을 상대로 김치 사업을 하려는 라이프치히 교외의 디자이너 토마스 브로벨(Thomas WROBEL·36), 라이프치히 슈타지 박물관의 이름트라우트 홀리처 관장(여), 베를린 인근의 슈타지 감옥소 안내원 페터 헬슈퇴름(58) 등등….

통일 15주년을 맞은 독일, 또 이 땅에 사는 독일인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기자에게 다가왔다. 특히 게릿 복, 울리히 바움개르텔 등은 독일인의 삶이 어떤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8박9일간의 짧은 기간에 독일을 둘러본 기자가 받은 독일의 인상은?

이 나라는 한국에 비해 박사가 흔하고, 교육기간이 매우 길며, 책자가 말하듯이 젊은이들이 늦게 결혼하며, 상당한 정도로 국제화된 나라가 아닌가 싶다. 기자는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할레 라이프치히 등 4개 도시를 둘러보며 독일인들의 삶을 담아보았다. 이 기간에 특히 고교시절 2년간, 대학시절 2년간 익힌 녹슨 독일어를 되살려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독일, 안녕. 아우프 비더젠(Auf Wiedersehen)!

<인물팀/설원태 기자 solw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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