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로 황폐화된 뉴올리언스 할로윈데이 맞아 간만에 활기
뉴올리언스 버번스트리트의 밤 가장무도회. 무시무시한 해골처럼 칠한 다이엔 스필러의 얼굴은 야광 녹색으로 그녀가 마시고 있는 마가리타 칵테일 색깔과 어울린다. 방사성 유령일까, 아니면 바다뱀 모양을 한 외계인일까? “카트리나다”라고 회계사인 스필러(57)는 말했다. 뾰족하게 선 머리에 하얀색 콘텍트 렌즈를 낀 그녀는 “괴물 같지 않으냐”라고 되물었다.
![[월드리포트]빼앗긴 터전에도 축제는 온다](https://images.khan.co.kr/nm/650/e2-1.jpg)
이 도시의 할로윈 행사는 마르디 그라 페스티벌처럼 전국적으로 유명하진 않지만 이 지역 출신이라면 누구나 흥겹게 즐기는 큰 축제다. 주민들이 돌아오지 않아 유령의 도시 이미지를 여전히 벗지 못한 이 곳인데 이 날만은 저녁거리에 활기가 넘쳤다. 마녀, 슈퍼 걸, 마릴린 먼로를 옆에 끼고 활보하는 엘비스 프레슬리, 속이 다 보이는 야한 경찰옷의 아마존 금발미인과 찌그러진 지붕, 버려진 냉장고 등 허리케인과 관련된 의상들을 입고 나온 시민도 있었다.
“환경미화는 나중에, 지금은 한잔 할 때”라고 로욜라 대학원생인 바비 휴즈(23)는 말했다. 돼지꼬리 모양의 금발로 된 가발에 미니 스커트와 빨간색 브래지어로 여장을 한 그는 자신의 복장을 뽐냈다. 지나가는 남성이 휴즈에게 “당신, 섹시한데요”라고 찬사를 보냈다. 휴즈의 여자친구 캣 맥키븐은 본인의 곤충 더듬이 차림을 일컬어 ‘사랑의 벌레’라고 했다. 버번스트리트의 블루스 컴퍼니 밖에 서 있던 여성은 발코니에서부터 떨어지는 구슬목걸이에 대한 답례로 그녀의 윗옷을 들어올렸다.
카트리나의 습격과 제방 붕괴 속에서 살아남은 프렌치 쿼터 지대는 지난 10월 재개방 이후 서서히 제자리를 찾고 있다. 술집,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는 구호 요원, 자원 봉사자, 기자 등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전 같지 않지만 재건의 빛이”
가든 디스트릭트에 소재한 드라샐 고등학교에서는 배트맨, 나비 차림의 아이들이 거리의 테이블에 놓인 초콜릿과 사탕들을 봉지에 가득 담고 있었다. 인디언 전사들과 치어리더로 가장한 일부 아이들은 세인트 찰스가(街)의 전기가 끊긴 것은 아랑곳없이 자이데코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초콜릿 좀 먹여주세요”라며 14살의 필립 온케일은 그의 어머니를 불렀다. 영화 가위손의 주인공으로 분장한 온케일은 손가락이 15㎝ 가량의 가짜 칼로 장식된 장갑 때문에 초콜렛을 먹기가 힘들어서다.
허리케인으로 이재민이 된 이들은 고향을 방문하기까지 5개 도시의 호텔을 전전했다. 애틀란타시에 대피해 있으며 아들의 의상을 만들었다는 셰릴 온케일은 “집이 곰팡이 배양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인기 TV 시트콤에 등장하는 인물로 가장한 돈 캐롤(33)은 “도시 전체가 예전 같지 않지만 할로윈 축제로 그래도 재건의 빛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유진(미국 오리건주)/조민경 통신원 mcg99@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