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터넷은 ‘기회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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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3인방의 신화… 인물 평가는 좋지 않아도 엄청난 부 축적

[월드리포트]중국 인터넷은 ‘기회의 땅’

요즘 중국에서 열손가락에 꼽히는 부자 가운데 5명 정도는 인터넷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마윈(馬雲, 전자상거래)과 전톈차오(陳天橋, 온라인게임), 리옌훙(李彦宏, 검색엔진) 3명은 중국 인터넷의 ‘영웅’으로 불린다. 이들은 인터넷으로 성공한 1세대 갑부들의 뒤를 잇는 2세대 ‘영웅’으로 모두 5년 남짓한 기간에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3인의 인터넷 ‘영웅’은 정작 인터넷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는 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 ‘전톈차오는 신용이 없고 마윈은 큰소리 치기 좋아하는 허풍꾼에 불과하며 리옌훙은 교활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이들에 대한 평가는 썩 좋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이들의 성공은 수많은 중국 젊은이를 인터넷 창업 전선으로 이끄는 찬란한 ‘신화’임에는 틀림없다.

자칭 ‘포레스트 검프’ 마윈 “나는 컴맹이지만 IT업종에 종사한다. 나는 경영학을 배우지 않았지만 보스를 하고 있다. 나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단순한 사람이다.”

마윈은 1964년 항저우에서 태어났다. 인터넷 3인방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지만 그 누구보다 당당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좀 멍청했다고 한다. 수학을 1점 맞은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저는 머리가 우둔해요. 한꺼번에 3개를 물으면 미처 대답 못하니까 하나하나씩 물어주세요. 천천히 생각하게요.” 마윈은 이런 사람이다.

고등학교도 재수를 했는데 수학 점수는 고작 31점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영어 과목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능력을 보여줬다고 한다. 그는 대학 진학은 생각도 하지 않다가 20살 때 기차역에서 ‘인생’이라는 책을 주웠는데 그 책을 읽은 후 대학에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에게 행운이 따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1984년 합격점수에 5점이 모자랐지만 항저우사범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항저우전자공업학원에서 영어 교사로 첫발을 뗐다. 교사로 일하면서 번역전문회사를 운영하는가 하면 작은 물건들을 파는 보따리 장사를 하며 착실히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드디어 1995년 4월, 주위 사람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터넷회사를 세웠는데 그 회사를 기반으로 1999년 6만 달러의 투자금을 받아 중국 최초의 B2B사이트인 ‘알리바바(alibaba)’를 시작했다. 알리바바는 1999년 말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으면서 급부상했고 2000년에는 50만 개의 회사가 거래를 하는 사이트로 성장했다.

인터넷 거품이 극심했던 2001년에도 알리바바는 수익을 내는 몇 안 되는 회사로 인정받는가 하면, 2003년에는 하루 수익이 100만 위안에 도달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에도 마윈의 사업적 수완은 계속 발휘됐는데 2004년 개설한 ‘타오바오(taobao)’는 1년 만에 이베이(ebay)중국을 제치고 중국 최대의 경매사이트로 성장했다.

“저는 아주 미련한 사람인데 창업에 성공했어요. 저 같은 사람도 성공했는데 80%의 젊은이들이 창업해서 성공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마윈은 얼마 전 야후(yahoo)중국의 지분을 100% 사들였다.

인수합병의 귀재 전톈차오 1973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난 전톈차오는 마윈과는 달리 영재축에 속하는 인물이다.

1990년 상하이 푸단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3년 만에 졸업을 하고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상하이의 한 회사에서 간부로 근무하던 전톈차오는 1999년 인터넷회사에 다니던 동생의 도움으로 50만 위안의 자본금으로 ‘산다(shanda)인터넷’을 설립해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한국의 온라인게임 수십개를 들여와 중국내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최근 중국내 이용자수는 1억7000만 명을 넘어서는 ‘대박’을 터뜨렸다. 산다인터넷은 세계 3대 온라인게임 업체로 발돋움했고 지난해 한국의 ‘액토즈(actoz)소프트’의 지분 29%를 사들이기도 했다. 전톈차오의 몸집불리기는 계속돼 최근에는 중국의 최대 포털사이트인 ‘시나(sina)’의 지분 25%를 인수하는 등 업계가 주목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전톈차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한국의 온라인게임 개발회사들과 여러 가지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남몰래 상대방 회사의 주식을 매집하는 행위로 비도덕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다인터넷 역시 사회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돈밖에 모른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익만 중요시하고 신용을 지키지 않는 산다인터넷의 불공정 행위는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중국 인터넷 시장의 좋은 환경 때문에 산다인터넷은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았으며 성공적으로 나스닥에 상장했고 지금도 부단히 기업사냥에 전념하고 있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미남’ 리옌훙 8월 5일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검색엔진 업체 ‘바이두(baidu)’는 중국 인터넷 사업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좋은 사례로 평가된다. 바이두는 상장 첫날 공모가의 5배 가까이 폭등하는 저력을 보였을 뿐 아니라 전문가들로부터 “구글을 능가할 것”이라는 평가까지 덤으로 받았다.

바이두의 설립자는 1968년 태어난 리옌훙으로 인터넷 3인방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다. 어렸을 때 연극학원에 다녔을 정도로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1987년 산시성 양취안시 최고의 성적으로 베이징대학 도서정보학과에 입학했으며 1991년 미국 뉴욕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컴퓨터에 눈을 떴다.

학교를 다니면서 마쓰시타에서 인턴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면 실리콘밸리를 거쳐 1994년 월스트리트에 입성했다. 다우존스에서 금융 관련 통계를 담당하다 1997년 검색엔진 업체인 ‘인포시크(infoseek)’로 옮겨 사업을 꿈꾸기 시작했다. 인포시크의 성공적인 나스닥 상장을 지켜본 리옌훙은 중국으로 돌아와 검색엔진 회사를 차렸는데 이것이 바이두의 시초이다.

그렇지만 사업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그는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백방으로 뛰어야 했다. 이렇게 겨우겨우 받아낸 120만 달러의 투자금이 바이두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 됐고 불과 9개월 후 바이두는 1000만 달러의 신규투자를 무리없이 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바이두는 현재 중국내 검색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제일의 검색엔진이지만 구글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게다가 돈을 받고 검색순위를 바꾸는 사업모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용자들이 점차 바이두를 이탈하고 있는 점도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다.

중국내에서는 리옌훙보다 그의 아내에 대한 소문이 훨씬 많다. 리옌훙을 성공으로 이끈 것은 아내의 내조라는 칭송이 자자하다. 리옌훙의 아내는 중국과학기술대학을 졸업한 재원으로 미국 뉴저지주에서 유학하던 중 그를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했다. 리옌훙이 청운의 꿈을 품고 중국으로 돌아가려 할 때 미국의 모든것을 포기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 리옌훙도 아내가 자신의 사업에 숨은 조력자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저는 성격이 느긋한 편이어서 뭘 하든지 속도가 나지 않아요. 아내는 반대로 성질이 급하죠. 이런 아내의 성격은 제가 사업하는 데는 유리하게 작용했죠.”

<베이징/천광 통신원 chocobi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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