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로 가는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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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매춘 때문에 에이즈 급속 확산… 5년 내 2500만명 감염 우려

[월드리포트]파멸로  가는  인도

‘인도의 트럭 운전사들은 단 13펜스(약 250원)면 여자를 사서 성욕을 해소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에이즈(HIV)를 옮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8월 14일 일요판에서 인도의 매춘산업과 에이즈의 상관관계를 파헤친 ‘파멸로 가는 길(The road to ruin)’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에피소드 1 인도 타밀나두주(州) 항구도시 첸나이의 트랜스젠더 마을에 사는 아운티에 누리에는 올해 54살인 거세남이다. 20년 전 인도인으로는 3번째로 HIV 양성판정을 받은 ‘그녀’는 최근 마을의 중매쟁이 겸 인생상담가로 변신했다. 젊은 날 매춘으로 연명했던 자신처럼 지독히도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과 함께 공존하는 길을 찾아낸 것이다.

[월드리포트]파멸로  가는  인도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는 이 세상에서 벌어진 가장 비참한 일들을 털어놓습니다. 사랑했던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아무런 경제적 능력도 없이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이죠.”

누리에는 붉은색과 황금빛의 전통 사리를 차려입고 만면에 웃음을 짓고 있는 새 신부 엘리자베스를 가리키며 자신도 언젠가 누군가를 만나 함께 새 삶을 꾸리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에피소드 2 첸나이 서쪽 변두리의 발라사라바캄이라는 마을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는 집이 하나 있다. 이곳에는 이름도 없는 영아에서 할머니에 의해 매음굴에 팔린 뒤 갓 구출된 19살짜리 여자아이까지 미성년자 33명이 함께 살고 있다. 이 아이들 중 18명은 이미 HIV 양성판정을 받았고, 태어난 지 1년 6개월이 안 돼 정확한 판정이 미뤄진 ‘예비 양성판정’ 영아도 5명에 달한다. 생후 1년 6개월까지는 엄마에게서 받은 항체가 남아 있어 HIV 판정이 정확하지 않은 탓이다. 이들을 돌보는 의사 마노라마는 1994년 이후 인연을 맺은 아이 200명 중 80%가 HIV나 에이즈 때문에 고아원에서 버려진 아이들이라고 설명했다. 인도 고아원의 상당수는 입양시장에 고아들을 팔아 꾸려가는데 HIV 양성판정을 받은 아이들은 아무도 데려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몰래 버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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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3 분쟁 지역인 아셈주의 군사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인도 최고(最古)의 민병대 보핀더 싱 준장은 최근 에이즈에 대한 군내 경고문을 발동했다. 지난해 5월 부임한 이래 반란군과 교전에서 죽은 병사(18명)의 2배 가까운 32명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은 때문이다. 가족들과 몇 달씩 떨어져 외지에서 근무하는 인도 군인들은 민간인들에 비해 매음굴을 많이 찾는다. 또 이로 인해 성병 감염률이 5배 정도 높다.

군인과 함께 최고의 위험군은 인도 HIV 양성자의 6~8%를 차지하고 있는 트럭 운전사들이다. 전장 7000㎞나 되는 인도의 고속도로를 생활터전으로 삼는 저학력의 트럭 운전자들은 30만~40만 명을 헤아린다. 이들은 붉은 천을 내걸고 손님을 부르는 노변 매음굴이나 자신의 트럭 운전석에서 많게는 1주일에 다섯 차례나 ‘욕구’를 해소한다.

전직 경찰 간부이고 앰부자 세멘트 재단 산하의 자선단체 국장인 V.K. 지안은 현실적인 예방책은 콘돔 사용뿐인데 넘어야 할 난관은 하나 둘이 아니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매음굴을 찾아가 여자들에게 콘돔 쓰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엄지 손가락에 끼우고 시범을 보였지요. 그런데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압니까. 순진한 이 여자들이 실제 성관계 때도 자신의 엄지 손가락에 콘돔을 끼는 겁니다.”

트럭 운전사 남편을 두고 있는 인도 남부 라자스탄 차프라의 델비(25)는 가끔 들르는 남편의 폭력이 에이즈보다 두려워 피임을 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지역 에이즈기구 등에서 공짜로 콘돔을 나눠주고 교육도 받았지만 남편이 꺼리는 일을 감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와 같이 사는 시어머니조차 “남자들은 아내에게 무슨 일이든 할 권리가 있다”고 남편을 편든다는 것이다.

가공할 현실 인도 국영기관 국가 에이즈통제기구(NACO)에 따르면 타밀 나두, 마하라쉬트라 등 6개 주에서는 감염 위험인구의 5%와 임신여성의 1%가 이미 에이즈에 노출됐다. 뭄바이의 매춘 여성 중 절반에 가까운 44%도 HIV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

전체 성인 인구의 20~30%가 HIV 양성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비해 인도는 성인 100명당 1명꼴인 0.91%만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10억3000만에 달하는 거대한 인구와 급속한 환자 증가속도는 경계경보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 20년간 인도 대륙의 에이즈 감염자는 500만 명으로 늘었고 향후 5년 내 2500만 명의 인도인이 새로 에이즈에 감염될 것으로 우려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감염인구 1%가 20%로 늘어나는 데 10년이 채 안 걸렸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 부부의 이름을 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아쉬오크 알렉산더 국장 등은 전세계 에이즈 환자 6명 중 1명이 살고 있는 인도가 ‘에이즈와 벌이는 전쟁’에서 어떤 결과는 내는가가 지구촌 전체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부/이상연 기자 lsy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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