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중앙은행 턴 ‘할리우드 금고털이범’… 첨단 경비 무용지물로 만들어
최근 브라질 세아라주 포르탈레자시에 있는 브라질 중앙은행 지점에서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은행털이가 발생했다. 석달 간의 치밀한 준비를 마친 도둑들이 무려 90m나 땅굴을 파고 들어가 1억5600만레알(6780만달러, 약 680억원)을 훔친 것이다.
헬리퀴 메이렐레스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 지시로 급조된 특별조사팀과 브라질 연방경찰은 이미 용의자 8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추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3년 3월 사담 후세인 일가가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 중앙은행 강탈사건 이후 사상 최대 피해규모로 꼽히는 이번 사건이 브라질 당국의 공언대로 한달 안에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사건 발단 월요일이던 지난 8월 8일 오전 8시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북동쪽으로 약 2500㎞ 떨어진 포르탈레자시 브라질 중앙은행 직원들은 텅 빈 은행금고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철판과 콘크리트로 마감한 1.1m 두께의 금고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고, 현지 지방은행들로부터 거둬들인 50레알 짜리(2만2000원 상당) 헌 지폐를 가득 채운 5개 컨테이너가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지폐들은 폐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수거한 것으로 발권번호를 통한 추적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땅굴 위치로 볼 때 은행 내 금고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며 “은행 내부에 공모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당시 범행현장에는 절도단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드릴과 전기 톱, 용접용 램프 등이 떨어져 있었다.
치밀한 범죄 범인들이 기발한 방법으로 6000만달러가 넘는 현금을 탈취한 점도 대단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수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한 범행이 발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경찰이 전한 범행 전말에 따르면 줄잡아 6~10명으로 추정되는 범인들은 브라질 중앙은행 사무소를 털기 위해 3개월 전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한 주택을 임대했다. 그리고 이 주택을 브라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조경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집 전체는 초록색, 창문은 흰색 페인트로 칠했고 집 앞에는 회사 간판도 세웠다.
나무들과 인공잔디를 진열해 사람들의 눈을 피한 이들은 굴착음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4m 깊이의 지하실 벽을 허물고 사방 폭 70㎝짜리 지하 터널을 야금야금 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터널 작업 중 산소 부족으로 돌발사고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 공기정화용 에어컨을 설치하는가 하면 터널 벽면 붕괴를 막기 위해 나무와 모래주머니, 비닐 등으로 마무리한 뒤 전선을 연결해 중간 중간에 전등을 설치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마침내 중앙은행의 금고까지 이르는 터널을 뚫는데 성공한 범인들은 두께 1.1m의 금고를 만났다. 범인들은 비상벨이 울릴 것을 염려해 폭약을 사용하지 않고 펜치, 드릴, 전기톱, 용접기 등 공구만 사용했는데 은행이 문을 닫은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새벽까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작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경찰은 동작감지기나 감시카메라 등 금고 안에 설치한 첨단 경비장치들조차 작동하지 않았다며 이들의 수법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드러나는 범인 윤곽 사브리라 알부퀘르크 브라질 연방 경찰 대변인은 이번 범죄가 지난해 상파울루의 한 현금수송업체에서 발생한 160만달러 강탈 사건과 매우 흡사하다고 발표했다.
현지 신문인 ‘에스타도 데 상파울루’ 등에 따르면 2004년 10월 당시 은행 ATM에 현금을 조달하는 노르데스테 트란스뱅크라는 회사의 화장실에 일단의 복면강도가 침입했다. 원숭이와 광대 마스크를 쓴 8명의 남자들은 AK 47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노르데스테 직원 75명을 협박해 자루에 돈을 담게 한 뒤 10분 만에 유유히 빠져나갔는데 인근의 한 주택에서 시작되는 120m짜리 터널을 통해서였다.
브라질 경찰은 포르탈레자 중앙은행 털이사건과 지난해 노르데스테 트란스뱅크 범행을 동일한 인물이 주도한 것으로 추정한다. 가장 의혹이 쏠리는 인물은 바로 4년 전 브라질 상파울루 교도소를 탈주한 모이세즈 텍세일라 다 실바. 은행강도 혐의로 2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그는 2001년에도 터널을 파고 교도소를 탈출했는데 당시 100명에 달하는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였다고 한다.
범인들이 조경회사로 개조했던 주택 인근 주민들의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헌책방을 경영하는 리처드 챔버린이라는 중년 남자는 최근 5~6명의 남자들이 드나들었고 사장 행세를 하던 주모자는 가끔 인근 바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술도 한 잔씩 사면서 인심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남자에 대해 “키가 크고, 대머리에 수염을 잘 깎지 않는 남부지역 사람이었다”며 “악센트 등을 볼 때 상파울루 출신 같았다”고 귀띔했다.
한편 현지 언론은 “범인들이 미국의 영화감독 겸 배우인 우디 앨런이 출연했던 영화 ‘스몰타임 크룩스’ 내용을 흉내낸 것 같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2003년 1월 개봉한 ‘스몰타임 크룩스’에서 우디 앨런은 은행 옆에 피자집을 연 뒤 땅굴을 파고 은행금고를 털 계획을 세우는 어리숙한 전과자를 연기했다.
규모별 세계 10대 은행털이 사건 1. 2003년 3월 이라크 개전 직전 이라크 중앙은행 (약10억달러) *( )는 피해규모, 자료 AP통신 |
<이상연기자 lsy7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