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총리 종전일 기념 참배 않기로… 총선 앞두고 실익 없다고 판단한 듯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종전 기념일인 15일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일본 국내외의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던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역사교과서 문제로 반일시위가 한·중국에서 잇따라 발생해 일본에서도 늘 뉴스의 호재로 삼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관군 전사자를 추도하기 위해 1869년 설립된 초혼사(招魂社)로서, 1879년 ‘나라를 편하게 한다’는 뜻을 지닌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A급 전범이 이곳에 합사된 것은 1978년 10월이나 이듬해 일본 매스컴에 크게 보도되면서 일반에 알려졌다. 그나마 A급 전범이 모두 합사된 것은 아니고 사형되거나 옥사한 14명만 합사되었다. 이들이 30여년이 지나 합사될 수 있었던 것은 패전 후 불기소 처리되어 정·재계의 지도층으로 재기한 전범들 때문이다.
정치적 위기 때마다 정국타개 카드로
패전 후 쇼와(昭和) 일왕은 모두 8번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1975년 무렵 이 문제가 매스컴에 거론되면서 헌법 해석 등을 둘러싸고 정치문제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쇼와 일왕은 A급 전범의 합사에 반대해 1975년 이후로는 참배하지 않았고, 지금의 아키히토 일왕도 참배하지 않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야스쿠니 참배가 문제된 것은 1985년 나카소네 총리가 처음이다. 문제가 확대되면서 일본에는 외교적 국익을 위해서라도 참배하지 않는 게 좋다는 여론이 과반수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그만두지 않는 데에는 정치적인 배경이 따로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함께 야스쿠니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의 멤버였지만 총리가 되기 전에는 1979년 한 차례 참배했을뿐이다. 그러나 1995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하시모토 전 총리가 자민당의 지지기반인 일본유족회에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약속하고 당선되자 생각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3번째로 도전한 2001년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하시모토와 대결하게 되자 이번에는 그가 신사참배를 내세워 당선될 수 있었다. 전격적으로 고이즈미 총리가 참배를 포기한 것은 다음달 총선을 앞두고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반드시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를 계기로 일본 젊은이들의 야스쿠니 참배가 급증했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측은 지난날 전성기에 비해 수익은 절반으로 줄었다고 일본 시사주간지 ‘아에라’가 보도했다. 원인은 거액을 기부하던 중소기업경영자들이 고령으로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올들어 매스컴의 집중 보도로 야스쿠니 신사의 최고 신관인 궁사(宮司)가 세계 1위의 광고회사 덴츠 출신이라는 것과 인기그룹 ‘Globe’의 멤버 고무로 데츠야와 게이코가 여기서 결혼식을 올려 일반인의 흥미를 끌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패전 후 정치적으로 역사 청산을 하지 못한 일본의 과제로 남아있다. 또 식민지 당시의 한국인, 대만인뿐 아니라 일본 기독교인 등도 이곳에 합사되어 있어 위패 반환을 둘러싼 종교적인 문제로도 역풍이 거센 것으로 알려진다.
<도쿄/이수지 통신원 buddy-suj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