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 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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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명문구단 지배한 미국자본 비난하는 여론 차츰 우호적 시각도 생겨

지난 9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2005-2006 챔피언스리그 예선이 열린 6만석 규모의 올드 트래포드(Old Trafford,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용구장)는 이례적으로 1만5000여석이 비어 있었다. 축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영국 축구팬들과 세계적 명성의 축구 클럽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난 6월 말 주위의 염려와 반대를 뿌리치고 미국인 백만장자 말콤 글레이저(Malcolm Glazer)는 약 8억 파운드(1600억원)를 출자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글레이저의 현재 지분은 98%. 과거 최대주주의 개인 지분율이 28%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사실상 글레이저 개인 소유가 된 셈이다.

구단의 재정적 안정 기대

글레이저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수 문제가 불거진 올해 초부터 연고지인 맨체스터를 비롯해 영국 전역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수 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5월에는 글레이저의 구단 인수에 항의하는 팬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글레이저 죽어라(Glazer die)’라는 과격한 구호를 외치며 사진을 불태우는 흥분한 시위대와 경찰의 몸싸움도 벌어졌다. 시위대가 폭력성을 보여도 대다수 영국 국민들은 시위대를 지지했다. 공영방송인 BBC가 홈페이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투표에 참가한 2만145명 가운데 63%가 찬성표를 던지며 시위대에 힘을 실어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주주연합회 닉 타울(Nick Towle) 회장은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고 시즌 티켓 값과 주차비를 올릴 것이 뻔하고 그렇게 된다면 경기장을 찾는 팬이 많아질수록 글레이저의 구단 인수는 더 쉬워지는 셈”이라며 팬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독려했다. 일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은 “영국의 축구 전통이나 클럽의 축구 역사에 대해 문외한인 미국 장사꾼이 주인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말로 미국을 아래로 보는 은근한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국인들의 의견도 엇갈리는 양상이다. 한편에서는 “글레이저가 미식축구팀을 사들여 그 가치를 네배 이상 올렸놓았을 정도로 능력있는 사업가이기 때문에 구단의 재정적인 안정은 물론 더 훌륭한 팀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옹호론을 펼치기도 한다.

어쨌거나 시즌 시작 전부터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 언제나처럼 경기는 팬들의 환호 속에 시작됐고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 예선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린 후에도 700여명의 군중은 경기장 밖에서 요란하게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글레이저의 세 아들은 경기장 안 로얄석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구단과 실리를 중시하는 미국인의 경영이 어떤 궁합을 만들어낼지 지켜보는 것도 박지성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런던/정수진 통신원 jungsu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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