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인도의 핵무기 개발을 사실상 승인했다. 양국간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인도의 핵 에너지 개발에 협력하겠다고 발표한 것. 인도는 그동안 미국 주도의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비밀 핵실험을 해왔다는 점에서 핵확산금지 문제에 관한 한 북한·이란 등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부시 행정부는 자국 이익을 위해 ‘이중잣대’를 쓰고 있다는 국내외의 비판에 직면했다.
인도도 어엿한 핵무기 보유국?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7월 18일 미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핵에너지 개발 등 협력 협정에 서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양국 관계는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전략적 제휴관계’”라며 “인도는 진보된 핵기술을 가진 신뢰할 수 있는 국가로 인도 핵발전소에 연료 공급을 재개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인도에 대한 핵기술 이전 금지를 해제하도록 의회에 요청하고 이에 관한 국제적 규정을 고치기 위해 동맹국들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이 제공한 민감한 핵기술과 장비를 인도가 다른 나라에 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문제는 미국이 인도에 판매할 핵기술은 발전용에 그치지 않고 무기급 플루토늄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눈부신 경제성장 때문에 극심한 에너지난에 시달리고 있는 인도로서는 엄청난 실리를 챙겼으며 이미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핵무기에 대해서도 핵보유국의 ‘큰형님’격인 미국으로부터 승인받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 NPT에 가입하지 않고도 핵무기를 사실상 보유한 이스라엘이 미국의 묵인하에 핵무기 기술을 습득한 것과 비슷하다.
샴 사란 인도 외무차관은 “미국은 우리가 다른 핵무기 보유국과 같은 권리와 이익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합의가 인도를 정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도를 향후 수 십년간 아시아에서 미국의 핵심 전략 파트너로 공고화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그동안 인도가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면서 NPT 가입을 거부했기 때문에 북한·이란 등 다른 나라들처럼 핵분야 협력을 제한해왔다.
인도는 1974년에 이어 1998년 라자스탄주 사막에서 지하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NPT 가입을 거부했다. 이에 분노한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인도에 대한 경제제재를 실시했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자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등에 대한 대 테러전 협력을 얻기 위해 인도에 대한 제재를 유보했다.
중국 위협론 미국이 세계 핵 정책의 모순을 무릅 쓰면서까지 인도에 예외를 인정한 것은 인도가 가진 전략적·경제적 가치 때문이다. 미국은 우선 아시아의 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아시아의 ‘균형추’로 인도를 활용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느끼는 안보 위협은 상상을 초월한다. 장기적으로 중국은 북한·이란보다 훨씬 큰 잠재적 위협이다.
미 국방부가 7월 19일 발표한 ‘중국 군사력 연례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연간 국방비 지출은 중국 당국이 공개한 액수의 3배가 넘는 900억달러로 미국·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다. 이 보고서는 “중국의 해·공군 전력 증강이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단거리 미사일은 해마다 100기씩 증강하고 있으며, 해군 함정의 3분의 2를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배치하고 2척의 신형 구축함과 지대공 미사일을 러시아에서 구입하는 등 별다른 주변 위협이 없는데도 꾸준히 전력 증강을 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의 모든 군사관학교에서는 1000여 년의 경험에서 유래된 ‘머우뤠(謀略)’, 즉 ‘전략적 기만술’을 가르치고 있다”면서 “특히 중국은 현대 들어서도 예상을 깨고 한국전에 개입해 미국을 놀라게 하는 기만술을 썼다”며 극도로 경계심을 나타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중국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해제하자는 유럽연합(EU)의 주장을 한사코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은 거대한 시장 인도의 경제적 가치에도 주목한다. 이는 싱 총리가 정상회담 후 미 의회에서 행한 연설 중 “인도의 성장과 번영이 미국의 국익과 일치한다. 인도는 대규모 외국인 직접투자가 절실한 만큼 미국 기업들이 우리가 만들고 있는 기회에 참여하기를 바란다”는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는 뭐냐…”, NPT는 이제 종잇조각 미국은 인도에 대해 ‘예외적 지위’를 공식 인정함으로써 기존의 핵 비확산 정책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그러잖아도 흔들리고 있는 NPT 체제가 더욱 약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당장 핵개발 문제로 미국 등 서방과 대립중인 북한, 이란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인도와의 거래는 핵기술 지원 합의가 아니어도 유엔 안보리 가입 보장 등과 같은 카드로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핵확산 금지에 대한 미국의 ‘이중잣대’는 이란, 북한과의 핵 합의 도출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NPT를 준수하던 국가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다. 일본은 내심 핵을 갖고 싶어했던 만큼 상실감이 더욱 클 것이다. 인도의 라이벌로서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협력하고 있는 파키스탄은 배신감마저 느꼈음직하다. 마침 7월 28일부터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던 샤우카트 아지즈 파키스탄 총리가 7월 16일 뚜렷한 이유 없이 돌연 일정을 연기한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도 나왔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무기통제 전문가인 조셉 치린치언은 “부시 대통령이 핵 비확산 문제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그것과 모순되는 대 인도 노선은 어떻게 정리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에드워드 마키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번 합의는 이란, 북한, 파키스탄보다 핵무기 개발능력은 있으면서도 NPT를 철저히 준수하기 위해 핵개발을 자제해온 한국, 일본, 대만,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심지어 부시 행정부 내에서도 존 볼튼 유엔 대사 내정자의 경우 부시 대통령의 인도 예외 인정 정책에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국제부/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