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연쇄폭발테러범들의 면면, 그리고 소외받은 영국 모슬렘의 현 주소
서유럽 최초의 자살폭탄테러로 밝혀진 지난 7월 7일의 런던 연쇄폭탄테러가 영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영국 국민들은 수십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이번 범죄가 자국 젊은이들에 의해 발생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BBC방송, 일간 ‘인디펜던트’ 등은 “이슬람계 이민 2, 3세들이 자발적으로 테러리스트가 되는 현실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어려운 과제가 남았다”며 “서유럽 사회에 대한 이들의 증오를 이해하고 해답을 찾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평범한 테러범들 타비스톡 광장에서 폭발한 2층 버스의 테러범인 하시브 후세인(18)은 잉글랜드 서북부 리즈시 출신의 평범한 10대였다. 크리켓을 좋아했던 후세인은 중학교 졸업자격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지난해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잡히기도 했지만 문제아 수준을 넘는 아이는 아니었다.
7월 7일 후세인은 가족들에게 런던에 있는 친구를 방문한다고만 말한 뒤 집을 나섰다. 이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경찰에 아들의 실종신고를 접수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사건해결의 단서로 작용했다.
에지웨어로드역 폭탄테러 용의자 모하메드 사디크 칸(30)은 이슬람 서점을 운영하던 초등학교 보조교사였다. 그는 가난한 이웃의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치는 모범적인 시민이자 성실한 가장이었다. 한 이웃주민은 칸의 아내 역시 남편과 함께 동네 아이들을 가르쳤다며 이들은 8개월 된 딸을 두고 둘째아기 출산을 기다리던 평범하고 조용한 부부였다고 전했다.
알드게이트역 폭탄테러 용의자 세흐자드 탄위어(22)는 마른 체격에 머리를 멋지게 염색한 말쑥한 차림새의 젊은이였다. 그는 스포츠와 무술을 좋아했고 가끔 아버지의 메르세데스 벤츠를 빌려 타고 친구들과 어울릴 만큼 사교적이었다. 2남2녀를 둔 그의 부모는 파키스탄에서 영국으로 이민온 뒤 자수성가한 사업가였으며 리즈대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탄위어는 아버지의 레스토랑 사업을 돕고 있었다.
탄위어와 친했던 아지 모하메드는 13일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열흘 전에도 탄위어와 함께 크리켓 경기를 했다”며 “그는 유머가 풍부하고 지적이었지만 정치에는 별관심이 없었다”고 믿지 못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삼촌 아흐메드는 조카의 뜻밖의 변신에 대해 배후세력이 개입됐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탄위어가 지난 6개월간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했는데 이때 알카에다 교관이나 선전원들을 만났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가장 인명피해가 컸던 킹스크로스역 폭탄테러 용의자는 이자즈 또는 나딤 피아즈로 알려진 30대 초반의 남자다. 친구들 사이에서 ‘잭시’라고 불린 그는 혼자서 루턴역까지 와서 다른 테러 용의자들과 합류한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이웃들은 수년 전부터 비어 있던 피아즈의 집에 최근 사람들이 드나들었지만 특이한 행동은 없었다고 말했다.
사건 배경 리지시 시의회 의원인 모하메드 이크발은 14일 BBC와 인터뷰에서 “24시간 동안이나 사건의 원인을 밝혀 보려 노력했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고 답답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영국 모슬렘 지역사회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9·11테러가 발생한 이후 수년간 소외되고, 차별받던 지역사회가 젊은이들의 불만을 키웠고 심각한 실업과 교육문제가 이들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는 분석이다.
파키스탄 정통 복장을 하고 턱수염을 기른 리지시의 한 젊은이는 모슬렘 지도자들이 젊은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며 모슬렘 이민사회의 세대 단절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젊은이들은 영어를 사용하고 나이든 이들은 주로 아랍어 등 모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세대간 언어와 문화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어느날 모스크(회교사원) 들어와 ‘실례하지만 나와 같이 런던을 날려버리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다고 누가 동참하겠습니까.”
젊은 세대는 말이 통하지 않는 중장년층과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는 게 현실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리즈시의 또 다른 젊은이는 영국 모슬렘 사회 젊은이들의 정체성 혼란 문제를 지적했다. “우리는 나름대로 정체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지만 백인 주류사회 등 외부인들은 오직 모슬렘이라는 한 가지 잣대로 우리를 봅니다.”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모슬렘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영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진정한 영국인이 되고 싶어하지만 9·11테러,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이 이어지면서 주류사회로부터 차별받고 백안시되고 있다는 의미다.
BBC는 최근 경제적 궁핍과 함께 자포자기 심정에 빠진 지역사회에 팔레스타인인 등과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희생문화(Victim Culture)’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번 테러도 이같은 기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불안한 모슬렘 사회 영국 모슬렘의 15%가 살고 있는 리즈시는 이번 테러로 불똥이 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AP통신은 런던 테러 이후 모슬렘을 겨냥한 보복공격이 단 1주일새 100여 회에 이를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켄트에서는 18세의 아랍에미리트(UAE) 출신 학생이 한 영국인 10대가 던진 유리병에 맞아 턱을 크게 다쳤고 런던 교외의 캠던에 있는 한 모스크는 폭탄공격 협박을 받았다. 영국을 방문 중이던 카말 라자 버트라는 파키스탄인도 지난 10일 노팅엄에서 젊은이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모슬렘 집단거주지역에 대한 경비를 한층 강화했다.
테러범 탄위어의 이웃주민인 우즈마 라피크는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 모슬렘 거주지역을 떠날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며 “길거리에 나가기조차 두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칼릭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이웃은 이번 사건이 빌미가 돼 지역사회에 대한 감시의 눈길이 강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런던경찰청은 “이슬람 사회를 모욕하고 보복을 가하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며 사태수습에 나서지만 모슬렘들은 불안한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국제부/이상연 기자 lsy7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