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여배우 문근영이 ‘국민 여동생’이라면 서른아홉 이금희 아나운서는 ‘국민 누나’다. 문근영이 무슨짓을 해도 깨물어주고싶을 만큼 귀여운 여동생의 매력으로 언니 오빠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다면, 이금희 아나운서는 무슨말을 해도 다 들어주고 어떤 잘못도 감싸줄 것 같은 누나의 포근함과 넉넉함으로 16년째 매일 화면을 통해 얼굴을 보여준다.
성품처럼 ‘넉넉한’ 외모의 이금희 아나운서가 요즘들어 날렵해졌다. 올해초 퀴즈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가 때아닌 ‘프로 근성’ 논쟁을 유발했고, 인터넷 지식검색에까지 ‘이금희 아나운서는 왜 살이 찔까요?’란 질문이 오를 만큼 국민들이 지대한 관심을 쏟았어도 굳건하게(?) 유지하던 체중을 어떻게 줄였을까.
“방송인으로 매일 대중 앞에 서면서도 솔직히 제 몸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항상 몸보다 정신이 중요하다고 교육받았고 평소에도 잘 꾸미질 않거든요.(그 흔한 귀고리나 목걸이 등 액세서리도 안 한다) 그런데 지난해 말에 아주 건강했던 지인이 암으로 죽었어요. 겨우 40대에요. 그때 건강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었고 퀴즈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뚱뚱한 아나운서는 프로근성이 없다?’란 기사와 네티즌들 반응을 보고 충격을 받았죠. 처음엔 속이 상해 참 많이 울었어요. 1주일에 3, 4번 회의를 하고 주변분들에게 모니터를 부탁할 만큼 노력한 프로였는데 열정과 능력은 무시되고 외모로 평가받으니 억울했죠. 인신공격적 비난도 많았지만 ‘당신을 보기가 부담스럽다’란 말에는 공감했어요. 그래서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다이어트전문병원이나 미용센터 등에서 거액의 모델료와 함께 그에게 ‘책임지고 단기간에 살을 확 빼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 그가 택한 것은 식사 조절. 사실 몇번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금희씨는 다이어트를 하기 어려운 ‘종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음식을 사랑했고, 정다운 벗들과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순간을 즐겼다.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특별함이 있다
“습관이 정말 중요해요. 다이어트를 결심한 후 날씬한 사람들의 습관을 관찰했더니 진짜 조금 먹더군요. 혼자선 힘들 것 같아 매일 저와 라디오프로그램에서 만나는 작가와 같이 체중조절을 시작했어요. 식사는 평소량의 3분의 1만 먹고, 하루 5~6잔 마시던 커피나 주스 대신 생수를 마시고, 간식도 끊고 반신욕을 꾸준히 했어요. 물론 헬스클럽에서 운동도 했구요. 서로 격려하고 먹는 것 말려주고 체중 비교하면서 노력했더니 신기하게 조금씩 살이 빠지더라구요”
이금희 아나운서는 현재 KBS TV의 ‘아침마당’, 2FM ‘이금희의 가요산책’ 등의 매일 생방송 프로와 ‘인간극장’ 등의 내레이션을 맡고 있다. 각분야에 조로현상이 심각하고 외모지상주의가 종교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고령(?)에다 과체중에 전혀 튀지않는 성격까지 악조건을 두루 갖춘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맹활약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무조건 날씬하고 젊은 여성이 섹시한 옷차림으로 등장해 남자MC들의 일방적인 진행에 ‘맞아요’라며 백치 같은 미소를 지어야 즐거워하는 이들에게 그의 존재는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금희씨가 진행하는 프로는 대부분 장수한다.
‘아침마당’을 즐겨본다는 상지대 김정란 교수는 칼럼을 통해 “이금희 아나운서는 방송을 주재하면서도 결코 스스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진행으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파묻어버리지 않게 하는 특별한 매력을 지녔다”고 극찬했다.
아픔과 상처를 가진 이들,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등장할 때 이금희씨의 능력은 돋보인다. 가난 때문에 버렸던 자식과 만난 엄마, 구타와 외도를 일삼는 남편 등 ‘유구무언’인 사람들의 굳게 닫힌 마음과 입이 그 앞에서는 열린다. 2000년 남북이산가족 만남의 자리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가족들과 눈높이를 맞춘 질문으로 50년 만의 가족상봉이란 드라마에 감동을 더했다.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는 미리 계획한 건 아니었어요. 50년 만에 가족을 만나 벅찬 마음에 눈물밖에 안 나올텐테 그들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고 소감을 말하라고 하는 건 아무리 방송이라도 참 무례하고 잔인한 일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 순간에 제가 말을 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현장이 워낙 시끄러운데다 대부분 고령이라 귀도 어두우신 분들 앞에 서서 저를 올려보며 말씀하시라고 할 수없어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어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에게 모든 관심을 쏟아붓고 ‘알겠어요. 충분히 그 말에 공감하고 당신을 이해해요’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그 누가 입을 꼭 다물고 있으랴. 그의 포근한 미소와 ‘아, 그렇군요’란 추임새는 때론 진정제, 때론 흥분제가 된다. 너무 편해서 생방송임을 망각한 출연자들이 ‘방송불가’ 판정이 나올 정도의 발언을 하기 일쑤다. 이 정도면 거의 상담사나 신경정신과 전문의 수준이다.
그런 공감의 표정이 출연자들만이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서 그는 불혹을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방송인이다. 물론 ‘금희씨가 나를 보고 웃었다’고 착각한 노총각들이 이따금 방송국이나 집앞에 와서 ‘책임지라’고 주장하는 불상사(?)도 있긴 하지만….
방송과 사생활 일치하는 ‘배려의 여왕’
이금희씨는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일상생활이 일치하는 보기드문 방송인이다. 주변사람에게 그는 ‘배려의 여왕’이란 평을 듣는다. 언제나 누굴 만나도 ‘내가 지금 이 사람이라면 뭐가 필요할까’란 생각이 자동반응을 한다. 생일이나 행사에 직접 선물 들고 찾아가 축하하고, 속상해하는 이들의 투정을 다 들어주고, 너무 고통스러워 누구도 만나려 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에겐 위로카드와 꽃다발을 퀵서비스로 보낸다. 그 대상도 참 다양하다. 강원룡목사 같은 원로나 고현정 같은 유명스타에서 10대 청소년 등 방송에서 만난 이들, 학교동창, 현재 강의를 하는 숙명여대 학생에 이르기까지 한번 맺은 인연은 잘 안 끊는다.
항상 다정한 그와 자신이 꽤 친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난 이금희와 친한 사람들을 대극장에 모으면 친밀도순으로는 2층 라열의 47번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이도 많을 게다. 또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일일이 챙기고 다 관계를 유지하나, 징그러운 인간!’이라고 진정성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다섯딸 중 넷째라 사람 사귀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학교에서도 언제나 새학년이 되면 새친구가 생기고 중학교 때부터 벌써 친구들의 인생상담을 해줄 정도였으니까요. 사람들하고 잘 지내는 게 좋아요. 때론 ‘인간 관계’를 앞세워 여기저기 부탁이 들어와서 힘들지만 그래도 제가 조금 불편해도 남들이 편하고 즐거운게 낫죠. 그래도 이젠 제법 거절도 잘 해요. 거절 못해 억지로 일을 맡았다가 지치고 불편한 마음으로 하는 게 더 나쁘다는 걸 알았거든요”
장애인들을 위한 기금모금을 주관하고 남몰래 기부도 잘 하며, 다른 방송인이 수백만원을 받는 행사도 ‘뜻이 좋다’면 선뜻 무료로 맡는다고 이금희 아나운서에 대한 미담과 칭송을 늘어놓고 싶지만 그만두겠다. 마음 약한 그에게 잔뜩 청탁이 들어가 이금희씨가 과로사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숱한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분명히 미운 이들도 있을 텐데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까. 그는 다른 사람 때문에 속상할 때는 한 후배의 말을 떠올린다고 했다. 자신과 그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다가 지금 우연히 교차점에서 만났을 뿐이므로 잠시 후 제 갈길로 갈 거라는. 그래서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될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미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공감해서 마음에 안 맞는 사람과도 ‘교차점이 끝나기를 기다리자’며 견딘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쁜 일은 잘 잊어버린다. 오랜만에 누굴 만나면 일단 반갑게 인사해놓고 ‘분명히 나랑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뭐였더라’라고 기억을 더듬지만 안 떠오른단다. 자기가 친구에게 선물로 준 액세서리를 보고도 ‘참 예쁘다. 어디서 샀니?’라고 물어본단다. 그러니 “내가 그렇게 잘 해줬는데…”하며 서운해하거나 억울함을 느낄 일도 없다. 참 축복받은 성격이다.
평소엔 영화 보고 책 읽고 산책을 즐긴다. 휴일엔 모자란 잠을 몰아서 잔다. 시간나면 미술사 등의 강좌도 듣고 문득 “아, 그 선배 못본 지 오래네’란 생각이 떠오르면 안부를 묻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이렇게 사려깊고, 따뜻한 품성의 여성이 왜 아직 결혼을 못했을까. 다들 ‘맏며느리감’이라고 칭찬하면서도 왜 여전히 처녀로 내버려두는 걸까. 독신주의는 절대 아니며 좋아하는 남성상도 ‘취미가 비슷하고 한 가지 일은 확실히 잘 하는 사람’으로 지극히 소박한데 말이다.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가 있었어요. 제 맘에 들었고 그 사람도 호감을 표해서 두세번 데이트도 했는데 헤어졌어요. 만나서 식당 가고, 백화점에도 갔는데 다들 저를 알아보고 그 사람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니까 굉장히 부담스러웠나봐요. 충분히 이해해요.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지 중매도 안 들어오고, 전화번호 묻는 남자도 없네요. 결혼도 결혼이지만 연애부터 해야 하는데…”
항상 ‘착한 여자’ ‘사려깊은 사람’ ‘반듯한 모범생’ ‘튀지않는 차분한 성격’ 등으로 묘사되는 이금희 아나운서. 마냥 조신해보이는 그도 집에서는 아주 섹시한 차림을 즐긴다거나 술만 마시면 광폭하게 변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남들에게 규정된 이미지 말고, 정말 타인은 잘 모르는 자신의 개성이 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이금희 아나운서는 소녀처럼 발그랗게 볼을 물들이면서 부끄러운듯 고백했다.
“저요, 사실은요, 굉장히 귀여워요. 그런데 남들은 몰라주더라구요. ‘가요산책’에는 유명스타들이 초대손님으로 오는데 제가 좋아하는 스타가 오면 감정을 못 감춰요. DJ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막 흥분해서 말도 더듬고 어쩔줄 몰라요. 그런게 가끔 노출돼서 애청자들은 ‘귀엽다’고도 하시는데…”
스스로 ‘귀여운 여인’이라고 밝히고는 무안해 어쩔줄 모르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이렇게 귀엽고 사려깊고 예쁘고 게다가 이 불경기에 돈도 잘 버는 21세기형 신부감을 두고 괜찮은 남자들은 다 어느 골목으로 다니는 걸까….
<글/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