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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6뉴스메이커 763호
[독서일기](51)‘앎의 거인’으로 추앙받는 다치바나 다카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br> |다치바나 다카시·박성관 옮김·청어람미디어쪾2008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
|다치바나 다카시·박성관 옮김·청어람미디어쪾2008

지난 10여 년은 내 책읽기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월이다. 실로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어치우고 그 책들에 대한 리뷰도 부지런히 썼다.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 탐욕스러운 책읽기에 고개를 젓기도 한다. 읽은 책들의 목록을 일일이 적지 않았으니 정확하게 몇 권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동안 서재에 늘어난 책이 1만 권이 넘는다. 그중에서 3분의 1을 읽었다면 3500권 안팎이다. 그보다는 조금 더 읽었을 것이다. 거의 날마다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는 얘기다.

책을 읽은 뒤 이런저런 지면을 통해 쓴 리뷰 따위를 모아 낸 책이 세 권이다. 근래에 읽은 ‘대단한 책’(이언숙 옮김, 마음산책)을 쓴 요하네스 마라나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표정훈·김명남 옮김, 김영사)를 쓴 A. J. 제이콥스 같은 사람도 있다. 둘 다 폭주기관차의 질주와 같은 속도로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들을 읽어치운 사람이다. 두 사람의 경우는 뇌세포의 대사활동 전체가 책을 통해 구동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과 비교하면 내 책읽기의 범주는 그저 한가롭고 청정한 취미 수준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책들의 총량을 바다에 견준다면 내가 읽은 책이란 건 그 바다에서 티스푼 분량의 물을 떠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더 적을지도 모른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을 읽으며 또 한 번 기가 눌린다. 기가 눌린 것은 내 나름대로는 부지런히 책을 읽어왔다고 하지만 이 책에 언급된 책의 대다수는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아주 생소한 책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다카시와 같은 밀도 높은 내공을 가진 사람의 관점에서는 내 책 편력 수준이라는 게 거의 초보자 단계를 벗지 못한 정도일 터다. 다카시는 이 지구 위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는 사람이다.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한 번 충격을 먹은 바 있고, 그 뒤로도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뇌를 단련하다’ ‘사색기행’ ‘우주로부터의 귀환’ ‘에게―영원 회귀의 바다’를 읽으며 거듭 감탄한 바 있다.

그는 책들을 시각이라는 매개 없이 대뇌 변연계에서 직접 삼켜버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를 통해 확신한 것은 지적 욕구는 사람의 내면에 내재된 근본적 생의 욕구라는 점이다. 앎에의 욕구는 끝이 없으며, 그 욕구의 정점에 이 세계 전체를 통째로 다 이해하고 싶다, 라는 욕망이 있다. 한편으로 그 욕망의 정체는 세상의 모든 책을 읽고 싶다는 비현실적인 꿈과 관련이 있다. 책은 인류문화사 안에서 최고의 발명품이다. 문화는 그 본질에서 놀이다. 책을 미친듯이 읽는 행위가 앎에의 욕구와 상관이 있다면, 책에 몰입하는 행위는 놀이의 즐거움 속에서 자아를 구속하는 현실의 모든 제약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해방과 자유에의 꿈과 상관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 해도 나라면 오늘의 내 삶을 둘러싼 현실과 아무 접점이 없는, 다카시의 말을 빌리자면 당장 나의 “피와 살이 되지 않는”, 실로 기묘하고 일상 보편의 진실에서 한참 벗어난 요괴학, 시장의 비합리성을 해명하는 새로운 금융이론, 게임뇌의 공포, 해군 특별공격대 전투기록, 지진 예지연구, 시가회계 불황, 분자국의 전도전자, 흑요석 3만 년의 여정, 일본국 헌법제정 계보, 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정신분석, 중국의 성애문화사, 바기나론, 텔레포테이션… 따위를 다룬 책들에는 손이 가질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카시는 그런 분야의 책들까지 거침없이 나아간다.

[독서일기](51)‘앎의 거인’으로 추앙받는 다치바나 다카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를 붙들고 있는 내내 책이란 무엇일까, 라는 아주 단순한 물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치바나 다카시나 요하네스 마라와 같은 사람의 삶을 단숨에 집어삼켜버리는 책이란 무엇일까? “철학이란 파리잡이통에 갇혀 버린 파리에게 파리잡이통에서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것이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저 유명한 철학의 정의를 읽으며 책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데 생각이 닿는다. 파리잡이통의 파리는 위로만 날아오르려는 본성 때문에 유리병 밑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도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우리는 파리잡이통에서 무지와 혼돈의 날개를 불안하게 윙윙대는 파리들이다. 앎은 무지에서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만 거꾸로 이성을 그 부분적인 앎에 가둔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성이라는 파리잡이통에 갇힌 파리다. 한 권의 책에서 얻은 앎은 그것을 읽기 전이 무지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만 한편으로 그 앎에 자아를 가둔다. 그 앎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또 다른 그 많은 책은 자아와 이성을 가둔 그 많은 눈에 보이지 않는 파리잡이통들을 끊임없이 깨뜨리고 바깥으로 나오게 하는 촉매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뭔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은 모르는 사람이고 자기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실은 많이 아는 사람이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은 일본 최고의 지성이라는 꼽히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편력기다. 실로 어마어마한 분량의 독서, “피도 되고 살이 되는” 책들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그 역시 젊은 시절 미혹과 방황을 거듭하다가 책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그는 명문대 불문과를 나와 유명기업인 문예춘추사에 들어갔으나 곧 그만두고 다시 철학과에 학사 입학을 한다. 퇴사 이유는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삼성’에 입사한 청년이 회사 업무가 너무 과중해서 책을 맘대로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없어 회사를 그만둔다, 는 말이다.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없다면 회사를 사직한다”는 식의 행동은 한마디로 앎에의 욕구가 얼마나 절박했던가를 말해준다. 다카시는 이런 욕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 욕구는 생명의 약동, 특히 생명원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불가피한 욕구다. 다카시는 신주쿠에서 술집을 경영하다가, 다시 중근동과 유럽을 방랑하는 여행을 떠나는 등 그의 말대로 “꽤나 심상치 않은 인생 궤적”을 걸어온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수많은 책을 섭렵하면서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우뚝 섰다. 정치, 경제, 과학, 테크놀로지, 철학, 사상, 현대예술 등 인류가 내놓은 지적인 것의 거의 전부를 가리지 않고 읽어 온 그가 “앎의 거인”으로 추앙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카시에게 책을 향해 뻗치는 욕구는 “더 전방위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 인간학과 자연과학에서 사회과학적 인식까지, 이 전부를 포괄한 세계인식을 원한다”는 욕구다. 이 앎의 거인이 솔직 담백하게 털어놓는 독서 이야기이니 한 번쯤 귀 기울여 볼 만하다. ‘고양이 빌딩’이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그의 작업실은 4만 권 정도의 장서와 자료들로 가득 차 있고, 그곳은 그의 저서들이 잉태되고 산란(産卵)되는 곳이다. 그는 1권의 책들을 쓸 때마다 최소한 500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지식의 입력과 출력이 그 비율에 못 미칠 때 책의 밀도는 떨어진다. 다카시는 피와 살이 된 책과 그렇지 못한 책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가로질러간다. 600쪽이 넘는 꽤 두꺼운 책이지만 술술 넘어간다. 결코 어렵지 않다. 그동안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 이 한 권을 독파한다면 인간·지구·우주·자연과학과 테크놀로지·국제정치와 사상·예술과 미술·철학과 사상·종교·각종 경전들·뇌과학·죽음·문명·생물권·신화와 역사·전쟁·환경과 생태학·생명공학·성과 사랑·금융공학과 세계경제를 종횡하며 저자가 읽은 1000권 정도의 책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흡수할 수 있다. 책값이 2만3000원이지만 그만하면 아깝지 않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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