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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우의 쇳밥일지
(12)“이래 때아 놓으면 멋지다 아이가”
방송 이후 신변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칼럼을 쓰게 됐다. 한곳도 아니고 무려 세곳이었다. ‘피렌체의 식탁’과 ‘미디어 오늘’, 주간경향에서 제안이 왔다. 모두 받아들였다. 초라한 역량에 비하면 너무 큰 욕심이었지만, 현장노동자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자주, 넓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 사이 로템 하청업체를 나와 다른 용접 회사···
[ 14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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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6 ]
(11)“쇳밥 먹는 청년공, 천현우입니다”
“일기란 개인의 역사다!” 다이어리 맨 앞장에 거창하게 써놓은 문구였다. 저 글귀대로라면 내 역사 속엔 숱한 외세의 침략이 있었던 게 아닐까. 몇달 꾸준하게 쓰다가 2년 건너뛰고, 격주에 한 번씩 쓰다가 아무 복선 없이 월 단위로 넘어가는 등 구멍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반성하는 의미로 일일보고서처럼 현장을 써내려갔다. 일러스트 김상···
[ 1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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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2 ]
(10)“나라 곳간만 꽉 차면 뭐하노, 일터 돌아가는 꼬라지가 이 모양인데”
모니터 한가득 구직사이트 창을 띄워놓다 보면 머리엔 안개가 끼고 가슴엔 가뭄이 온다. 그대로 몇시간 지나면 억울함의 파도가 몰려온다. 내가 무슨 대기업만 노리는 것도 아닌데, 알짜배기 중견기업 찾느라 눈알 굴리는 것도 아닌데, 그저 다달이 200만원 월급에 8시간 일하면 충분한데, 그조차 왜 이리도 힘겨울까. 하루 취업농사를 말아먹고 침대···
[ 14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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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8 ]
(9)“우리 회사는 최저시급부터 시작합니다”
수도사처럼 지낸 겨울이 끝나갈 무렵, 홀쭉해진 몸에 잔근육이 오돌토돌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머릿속은 시냇물 흘러가듯 고요하고 차분했다. 그 시절 생활은 반 자연인에 가까웠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차가운 방에서 운동으로 몸을 데우며 책이나 팟캐스트로 하루하루를 넘겼다.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차곡차곡 알아갔다. 대학···
[ 14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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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5 ]
(8)“짬밥 무면 누구나 다 합니더. 조급해 마이소”
양산에 온 지 일주일. 엄마가 보지 말았으면 하는 이야기. 내가 받을 수 있는 최선의 대우를 제시받고 타지로 왔다. 아직도 내가 집을 떠났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일요일 밤을 지내고 나면, 그나마 제일 행복했던 시기로 다시 돌아갈 것만 같다. 이런 유치한 바람에서 깨어나질 못한다는 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일까. ···
[ 14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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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1 ]
(7)“원래 용접사라는기 떠돌이 신센기라”
격동의 시기였다. 2016년 총선, 영원할 듯했던 권력의 가슴팍에 몰락의 신호탄이 꽂혔다. 단독 개헌선 운운하며 머릿속에서 별나라를 구상하던 새누리당은 패닉에 빠졌다. 그 순간에도 나는 용접을 하고 있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적응의 힘인지, 젊음의 힘인지 어느새 불량 감소와 생산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어느덧 정직원 ···
[ 14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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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7 ]
(6)“내일도 사부지기 때아 보자이”
“저녁 8시 30분, 오늘도 힘겹게 잔업을 마쳤다. 퇴근 카드를 찍고 후문을 나서면 불 꺼진 한국재료연구소가 보인다. 길을 건너 마산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가장 빠르게 가는 108번 버스마저 12분 후에 도착. 뭔 놈의 버스가 이리 느긋한지, 한숨 쉴 기력조차 없어 조용히 벤치에 앉아 휴대폰만 들여다본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
[ 14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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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6 ]
(5)“합격입니더!” “합격이라꼬?”
대학교 멘토링 시간에 김규환 명장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대우중공업에서 ‘시다’로 시작해 노력과 기술만으로 인정받은 사나이의 인생 이야기였다. 교수는 이 사례를 들어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다. 1970년대 중후반의 허술하고 거친 시대상을 현재에 갖다 붙이는 건 옳지 않다. 바뀐 시대는 읽지 않고 산업화의 로망만을 강조하는 ‘꼰대 소리···
[ 14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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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3 ]
(4)“만사 관심 끄고 살 생각 아니면 정치를 알아야 해”
내 삶의 도로에서 시간은 늘 상습 과속을 저질렀다. 간신히 시간을 붙들었을 땐 이미 소집해제일이 임박해 있었다. 어느새 모든 선배가 회사를 나가고 후배만 3명인 ‘왕고’가 됐다. 그러자 슬슬 입사 시절이 떠올랐다. 이렇다 할 수리 매뉴얼이 없어 벽에 부딪힐 때마다 선임자에게 꼬치꼬치 캐물어야 했다. 말은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았고 선배는 ···
[ 14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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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9 ]
(3)“전문대 나와가 대기업 갈 수 있나”
중소기업은 이직률이 높다. 나 역시 그 통계 표본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2년 이상 꾸준히 다닌 곳보다 몇달 다니다가 때려치운 회사가 훨씬 많았다. 사람들이랑 안 맞는다거나, 주당 노동시간이 길다거나, 출퇴근에 문제가 많다거나, 단순 노동 강도가 빡세다거나 등. 온갖 일이 겹치다 보면 금방 일하기 싫어지곤 했다. 몸에도 이상반응이 왔다. 근···
[ 14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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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6 ]
(2)“현우야, 기능요원 해볼래? 자리 생겼다”
김광석의 명곡, ‘이등병의 편지’는 참 묘한 노래다. 몇줄 안 되는 가사의 주인공이 생판 남이었다가 어느 순간 내 얘기가 된다. ‘어느 순간’이란 바로 입영통지서가 날아온 시점, 전문대를 졸업한 지 한달도 되지 않은 때였다. 삶의 우선순위란 기나긴 줄에 갑자기 나타난 병역의무가 새치기를 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그날부터 가···
[ 14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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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2 ]
(1)“1㎝ 더 녹았음 발목 짜를 뻔했구마”
‘돈 많이 버는 대기업이니 하청도 대우가 괜찮겠지.’ 그 순진한 생각은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박살 났다. 고향의 풍경은 풀보다 쇠가 더 많았다. 마산항 바다 맞은 바라기엔 언제나 커다란 배와 드높은 철골 크레인이 눌러앉아 있었고, 해안대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면 수출자유지역이 보였다. 퍼런 지붕과 빛바랜 외벽의 공장들을 한참 지···
[ 14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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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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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헌법에 충성’한 법무관과 ‘사람에 충성’한 육본 법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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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당이 날 후보로 인정 안해”···국민의힘 지도부 직격
시사 2판4판
어느 ‘대선탕’에서…
주간 舌전
알량한 후보 자리 지키려…정말 한심
오늘을 생각한다
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관료 출신으로 경제와 통상의 요직을 두루 거쳐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고,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다 21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사퇴해 공직에서 물러난 자연인 한덕수씨에게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묻는다. 2007년 첫 총리 지명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이 제기한 ‘2002~2003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재직 시절 외환은행 매각 사태(론스타 게이트) 연루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첫 총리직과 주미대사를 역임하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2012년부터 3년간 무역협회장으로 재직하며 받은 급여 19억5000만원과 퇴직금 4억원, 2017년부터 5년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18억원, 2021년 3월부터 1년간 에스오일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8000만원 등 퇴직 전관 자격으로 총합 42억3000만원의 재산을 불린 일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지금도 그대로인가? 이처럼 전관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다시 윤석열 정부의 총리 제안을 수락해 공직으로 복귀한 것 역시 관료로서 부적절한 처신이 아니냐는 문제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