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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몰락 10년사
(19) MBC는 재기할 수 있을까
공정한 경쟁을 통해 권력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지킬 수 있는 정의로운 사장이 MBC를 되살릴 수 있다고 구성원뿐 아니라 시청자들도 믿고 있다. 이런 환경은 필요조건이 아니라 최소한의 조건이다. 11월 13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김장겸 사장을 해임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이후 10년 동안 암흑의 시기를 보냈던···
[ 12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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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
(18) 김재철이 구속되어야 할 10가지 이유
김 사장 이후 MBC 경영진은 실력 있는 수많은 방송인들을 일부러 내쫓으면서 일터를 망쳤는데, 누군가의 지시를 받지 않았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2017년 11월 10일 새벽, 김재철 전 MBC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 영장담당 판사는 김재철 전 사장의 범죄혐의에 대해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가 대부분 수집된 점, 도···
[ 12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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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1 ]
(17) 부당권력과 10년 동안 싸운 노동조합
탄압 속에서 MBC 노동조합은 단 한 번도 더러운 타협을 하지 않았다. 공정방송 조항을 단체협약에서 없애면 모든 걸 들어주겠다는 회사 측 회유에 굴복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고위관료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MBC 화면에 등장했다. 특히 안광한 전 MBC 사장이 지시해서 만들었다는 라는 토론 프로그램에 ···
[ 12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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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4 ]
(16) 자유한국당, 김장겸과 함께 침몰하려는가
지난 9년간 집권을 하면서 현 자유한국당 세력은 과거 정권에 대한 종북공세와 색깔론으로 부패와 무능을 덮었고, 거기에 동원된 일등공신은 MBC였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몰려갔다. 방통위가 공석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들을 합법적으로 선임하는 걸 막겠다는 이유였지만 그 의도는 명확해 보였다. 일종의 그림 ···
[ 12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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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7 ]
(15) MBC, 드디어 봄이 오는가
2000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월급을 포기하며 한목소리로 사장 퇴진을 외쳤던 적이 있었는가? 언제 절반 이상의 보직간부들이 사퇴를 하며 사장 용퇴를 건의했는가? MBC의 이사회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김원배 이사가 10월 18일 사의를 표명했다. 9명의 이사 가운데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과 그 세력들(구여권)이 추천한 이사가 6명···
[ 12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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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1 ]
(13) MBC를 망친 외부자,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고영주 이사장의 과거는 천만 관객 영화 ‘변호인’에 등장한다. 그는 영화의 배경사건인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였다. ‘부림사건’은 1980년대 부산지역 대학생 독서모임을 ‘간첩조직’으로 둔갑시킨 대표적인 조작사건이었다. 고영주씨는 현재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장이다. 방문진은 MBC를 관리·감독하고 사장을 ···
[ 12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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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4 ]
(13) 「PD수첩」, 이명박 정부의 치부를 드러내다
MB 정부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관용이 없었고, 국정운영은 법치를 가장한 독재에 가까웠기 때문에 「PD수첩」이 다루어야 할 내용들은 차고 넘쳤다. 21세기 문명국가에서 공영방송의 한 시사프로그램이 국가정보기관으로부터 이토록 처참하게 장악당한 적이 있을까?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언론장악 문건에 대한 조사를 위해 검찰에 출···
[ 12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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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7 ]
(12) 부역자들이 얻은 건 무엇이었을까
제작비는 나날이 줄어들었지만 간부들의 법인카드 한도는 크게 늘어났다. 철마다 간부들에게 ‘아이패드’, ‘갤럭시기어’ 등 달콤한 선물과 국내 리조트, 제주도, 해외로 이어지는 외유성 연수가 주어졌다. “MBC를 망쳤다는 김재철·안광한·김장겸의 사람들은 전부 MBC 출신이잖아. 그런 그들이 왜 그랬을까?” 주위 사람들이 많이 묻는 내용이···
[ 12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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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0 ]
(11) MBC 몰락, 그 시작은 MB였다
2009년 이근행 노조집행부가 출범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검찰이었다. PD수첩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PD와 작가를 체포하고자, 방송관련 자료를 압수하기 위해 영장을 들고 MBC에 들이닥쳤다. 영화 의 포스터는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얼굴이 크게 모자이크 되어 있다. 영화의 말미, 최승호 감독은 이명박 대통령을 찾···
[ 12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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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
(10) 김장겸이 망친 보수, 보수가 망친 MBC
보수세력은 궤변을 동원해 MBC가 망가지는 것을 방조했는데, MBC가 망가지는 만큼 자신들이 영달할 줄 알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MBC에서는 지금도 메인 뉴스에서 ‘박근혜씨의 허리가 아프다’는 동정뉴스를 보도한다. 방송 3사 중에 유일하다. 태극기 집회에 참가하는 극소수 시청자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호소할 일이 아니라면 있을 수···
[ 12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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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9 ]
(9) 손석희의 시선집중, 신동호의 시선집중
만약 MBC가 정상적이었다면 손석희의 후임으로 신동호의 시선집중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4년간 뉴스데스크를 탁월하게 진행했던 박혜진 앵커가 이 전통의 시사프로그램 타이틀 롤을 이어받지는 않았을까. 지금은 TBS 등이 아침 시사라디오 분야를 이끌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이 분야의 원조는 2000년에 시작한 이었다. 오전 6시부터 8시···
[ 12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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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2 ]
(8) 공범자의 놀이터가 된 MBC 시사교양
영화 의 감독인 최승호 PD는 안광한 사장이 직접 해고한 당사자다. 최승호 PD가 안 전 사장이 MBC가 제공한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걸 기다려 질문을 던지는데, 안 전 사장은 카메라를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을 친다. 영화 에서 가장 인상적인 주인공 중 한 사람은 올해 2월까지 MBC 사장을 지낸 안광한씨다. 김장겸 현 사장이 MBC의 ···
[ 12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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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5 ]
(7) ‘MBC 블랙리스트’ 이렇게 만들어졌다
세월호가, 4대강이, 노동문제가 PD수첩에서 다룰 수 없는 아이템이 되어갔지만 변변히 저항할 수 없었다. 저항하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적히고,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얼마 전 비제작부서로 쫓겨난 MBC 기자들은 일제히 ‘새로운 친구를 만나보세요’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받았다. 새로운 친구로 등장한 주인공···
[ 12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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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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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카슈미르 충돌과 아프가니스탄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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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코알라의 죽음이 남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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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시사 2판4판
쇄신은…여전히…
주간 舌전
“노무현 따라 꼬마 민주당 갔다면…”
오늘을 생각한다
나의 열두 번째 대통령
1980년대 이후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계엄 포고문이 여러모로 나를 떨게 했다.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4시간 동안은 두려워서 떨었다. 열 살 먹은 딸이 울고 있는 옆에서 덩달아 울었다. 그땐 그렇게 살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입에 재갈을 물고 살거나 재갈을 풀고 죽거나, 나야 물고 사는 편을 선택하겠지만, 나보다 40년 늦게 태어난 딸이 나와 같은 성장기를 보낸다는 것이 서러웠다. 계엄이 해제되고 광장이 열리자 나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홀로 광야에 선 듯한 고립감에 떨었다. 광장에 나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유사한 경험의 축적으로 나는 광장 이후 세상에 일말의 기대도 품지 못하는 비관주의자, 어쩌면 현실주의가 돼 있었다. 응원봉과 K팝, 전에 없던 광장의 미담과 남태령에서 날아든 기적 같은 이야기들로 마음이 녹을 만도 한데, 나만이 서 있는 이 광야에서 그저 먼 나라 소식을 보듯 광장을 관망했다. 4월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읽어 내려간 윤석열 파면 결정문을 들으며 잠시 감동했지만, 광장이 닫히고 대선 공간이 열린 순간 두려움은 현실이 됐다. 누구에게는 광장의 연속이겠지만, 나에게는 광야의 확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