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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리 20년 회고
(5(끝)) 만화 속 현실, 20년 전과 비슷
현실비판 전달 전력 다해 그동안 보내준 독자들의 격려에 보답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100m 달리기로 하루 일과를 마치곤 했다. 신문사에서 마감시간에 쫓겨 만화 원고를 들고 책상에서 약 100m 떨어져 있는 스캐너실로 달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종이원고를 들고 뛸 필요 없이 액정 태블릿으로 그려진 원고를 사내 전산망을···
[ 1141호
ㅣ
2015.09.01 ]
(4) 권력의 비상식에 대한 비판
유럽에서 태동한 만화, 그림을 통해 현실에 대한 풍자 보여줘
오랜 세월 한국 사회에서는 ‘만화’라는 장르가 허무맹랑하고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 내용을 담은 것으로 매도되었고 아직까지도 그러한 인식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학생들을 상대로 그려진 교육용 만화를 ‘학습만화’라고 하고, 인문사회적 내용을 담은 만화를 ‘교양만화’라고 불러···
[ 1140호
ㅣ
2015.08.25 ]
(3) 정치권력 대신 자본권력 시대로
커져가는 ‘돈의 힘’에 의해 언론자유 위축, 민주적 가치 훼손
5공 시절, 정권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자주 다루던 4컷 만화 ‘두꺼비’에는 서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는 느긋한 풍경이 그려지는데, 이 만화 때문에 담당 만화가가 연행되고 연재가 중단되는 사건이 있었다. 대통령의 특정 신체 부위가 연상되는 둥그런 해가 저물어가는 표현을 문제 삼은···
[ 1139호
ㅣ
2015.08.18 ]
(2) 드라마틱한 진보적 사회변화
김대중 정부 시절 언론사 세무조사 반발로 ‘조중동 대 진보언론’ 프레임 탄생
장도리는 기승전결을 갖춘 가장 짧은 형태인 4컷으로 이루어져 신문을 통해 하루에 한편씩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만화다. 한국의 신문독자들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공통 관심사를 다루다 보니 주로 정치, 사회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다. 매일 연재되는 만화이지만 장편 스토리 만화와···
[ 1138호
ㅣ
2015.08.11 ]
(1) 4컷만화의 주인공은 ‘우리 이웃’
세상이란 무대 위에서 제 역할 하려면 ‘모순과 부패’ 사라져야
경향신문에 4컷 만화 장도리를 연재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됐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하루하루를 만화로 표현하고 기록하며 독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한다는 기쁨이 있었고, 역사적으로 중대한 사건을 접하면서도 부족한 실력과 내공 탓에 컷 안에 깊이 있게 담아내지 못함을 한탄하기도 했다···
[ 1137호
ㅣ
2015.0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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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선탕’에서…
시사 2판4판
어느 ‘대선탕’에서…
주간 舌전
알량한 후보 자리 지키려…정말 한심
오늘을 생각한다
나의 열두 번째 대통령
1980년대 이후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계엄 포고문이 여러모로 나를 떨게 했다.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4시간 동안은 두려워서 떨었다. 열 살 먹은 딸이 울고 있는 옆에서 덩달아 울었다. 그땐 그렇게 살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입에 재갈을 물고 살거나 재갈을 풀고 죽거나, 나야 물고 사는 편을 선택하겠지만, 나보다 40년 늦게 태어난 딸이 나와 같은 성장기를 보낸다는 것이 서러웠다. 계엄이 해제되고 광장이 열리자 나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홀로 광야에 선 듯한 고립감에 떨었다. 광장에 나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유사한 경험의 축적으로 나는 광장 이후 세상에 일말의 기대도 품지 못하는 비관주의자, 어쩌면 현실주의가 돼 있었다. 응원봉과 K팝, 전에 없던 광장의 미담과 남태령에서 날아든 기적 같은 이야기들로 마음이 녹을 만도 한데, 나만이 서 있는 이 광야에서 그저 먼 나라 소식을 보듯 광장을 관망했다. 4월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읽어 내려간 윤석열 파면 결정문을 들으며 잠시 감동했지만, 광장이 닫히고 대선 공간이 열린 순간 두려움은 현실이 됐다. 누구에게는 광장의 연속이겠지만, 나에게는 광야의 확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