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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역사르포
(13) 장기집권 서막-국회 제3별관… 시의원 명단보다 더 중요한 ‘날치기 교훈’
서울의 한복판, 시청앞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가는 길이 세종대로다. 옛날 주소로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4거리(세종대로 4거리)까지가 태평로, 여기서 광화문까지가 세종로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길이다. 왼쪽으로 덕수궁, 오른쪽 시청으로 시작해 프레스센터, 서울시의회 건물, 파이낸스빌딩, 신문사 2곳, 세종문화회관, 교보문고, 미국대사관···
[ 11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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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6 ]
(12) 베트남 파병 출정식 열린 동대문운동장…공과 따지기 어려운 ‘참전의 양면성’
“정의의 깃발 드높이 들고, 거친 파도를 넘고 또 넘어, 우정의 다리를 월남에 놓고… 우리는 비둘기 대한의 용사.” 1965년 2월 9일 이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서울운동장(1984년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뀜)에서 출발한 비둘기부대 파병용사들은 종로를 거쳐 시청앞까지 행진했다. 길가 빌딩 옥상에서는 꽃종이가 뿌려지고, 유명 영···
[ 1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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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9 ]
(11) 6·3 사태 발원지-옛 서울대 문리대 교정(마로니에 공원)…민족·민주를 위한 갈망 푸르게 물들이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맞는 봄비는 싱그럽다. 마로니에는 프랑스어로 ‘달고 큰 밤나무’라는 뜻이다. 지중해가 원산지로 7개 잎에 밤과 비슷한 열매를 맺는데 ‘천재’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이곳 마로니에 공원은 1924년 일제가 만든 경성제국대학에서 시작됐다. 지금 마로니에 공원 한쪽에는 1931년 준공된 경성제국대학 본관 건물이 ···
[ 1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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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2 ]
(10) 남산 중앙정보부…무소불위의 공작과 고문의 흔적
남산은 한강과 함께 600년간 수도 서울을 내려다보며 한민족의 질곡과 함께한 존재다. 불과 해발 262m에 불과한 야산이지만 남산은 나라의 제사를 올리는 성스러운 산이자 성곽과 봉수대가 있어 수도를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근세 들어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일제강점기 멀리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애국···
[ 1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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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5 ]
(9) 5·16쿠데타 첫 총격전-한강대교 남단…넘으려는 자, 막으려는 자 정반대의 군인상이 교차
김종필 전 총리(JP)는 2013년 12월 10일 자신의 아호를 딴 운정기념사업회 창립식에 참석하기 위해 여의도 국회를 찾은 적이 있다. 5년 10개월 만에 국회를 찾은 JP는 “국립묘지에 가지 않고 조상이 묻히고 형제들이 누워 있는 고향에 가서 눕겠다. 비석에 ‘영생의 반려자와 이곳에 함께 눕노라’라고 쓰겠다”면서 “회고록도 쓰지 않겠다···
[ 11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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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8 ]
(8)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창립-천도교 중앙대교당…4·19의 열망 ‘평화통일’로 승화
1961년 2월 25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 전국에서 모인 1000여명의 대의원들이 의자도 없어 멍석 위에 앉았다. 단상 양쪽에는 ‘뭉치자 민족 주체세력’ ‘배격하자 외세 의존세력’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상해임시정부 외무차장 출신의 장건상은 감격스런 표정으로 “민족통일의 주체세력이 되는 이 대회는 역사적 모임이므로 통일···
[ 1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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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1 ]
(7) 대구 삼성상회 터-한국재벌의 탄생…정치권력을 넘어선 경제권력의 발원지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얼마 전 상징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다. 지난 2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조현상 효성그룹 부사장을 비롯해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재계인사 21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 것이다. 청와대는 문화·체육 활성화를···
[ 11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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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4 ]
(6) 김창룡 암살현장-원효로 1가…이승만 독재 하수인을 응징하다
59년 전 3면에 한 사건의 약도가 실렸다. 워낙 중요한 사건이었으니 현장 약도까지 실었을 것이다. 위치는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21번지, 자혜병원 앞이다. 약도에는 120m 언덕 위 자택에서 점선으로 내려오는 표시가 있다가 자혜병원과 미장미장원 중간에 엑스표, 즉 ‘사건 현장’이 표시돼 있다. 지금은 그 자택도, 자혜병원도,···
[ 1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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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7 ]
(5) 김주열 시신 발견된 마산항 중앙부두…4월 혁명의 횃불이 솟아오른 곳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4월 11일 오전 11시. 마산(지금의 창원)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시신이 떠올랐다.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시민의 시위를 경찰은 최루탄과 총격으로 강경진압했다. 주춤하는가 했던 시위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 4·19 학생혁명의 기폭제가 된 것이 이 시신이었다. 김주열군의 어머···
[ 11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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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31 ]
(4) ‘사법 살인’ 현장-구 대법원 청사 ‘오욕의 역사’ 미술로 감춰질까
“주목되던 ‘진보당 사건’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27일 밀려든 방청객들로 말미암은 법정 혼란으로 예정보다 늦게 오후 12시5분 개정했다. 김세완 재판장의 판결문 낭독으로 판결 이유 설명이 있은 후 오후 1시45분 최종 언도가 있었다. 이날 대법원 판결은 원심을 완전히 뒤집어 진보당의 평화통일론은 헌법에 보장된 ‘언론자유’에 저촉되지 않는다···
[ 1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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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4 ]
(3) 임시수도 부산…한국정치 파동의 출발역, ‘복고 마케팅’ 한창
“여느 때보다 일찍 찾아든 초여름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52년 5월 26일 임시수도 부산의 아침이었다. 동래 온천장을 출발한 국회 통근버스는 광복동 동아극장 앞에서 국회의원 30명을 더 태워 모두 47명을 싣고 임시의사당이 있는 경남도청 정문을 들어서려다 집총 헌병들의 검문을 받았다. 26일 0시를 기해 발동된 계엄령 아래선 어···
[ 1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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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7 ]
(2) 남북을 동강 낸 38선…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없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8월 15일 연합군 최고사령부 일반명령 제1호가 발표됐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에서는 미군, 북에서는 소련군이 일본의 무장해제를 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38선 분할에 대해 정치학계에서는 많은 논란과 연구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미 국무·전쟁·해군 3부 조정위원회(SWNCC)에서 근무하는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
[ 1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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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0 ]
(1) 서대문형무소…나라 빼앗긴 참담함과 해방의 환희가 서린 곳
1945년 8월 10일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 일본은 사실상 패전국 준비에 들어갔다. 조선총독 아베(阿部新行)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조선에서 일본인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었다. 흥분한 조선인이 일본인에 대해 보복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베는 송진우를 만나 치안 유지를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상황이 급해진 아베는 15일 오전 여···
[ 11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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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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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카슈미르 충돌과 아프가니스탄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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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코알라의 죽음이 남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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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실이 멈추자 일그러진 얼굴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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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귀향길에 들은 아버지의 인간관계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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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선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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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시사 2판4판
쇄신은…여전히…
주간 舌전
“노무현 따라 꼬마 민주당 갔다면…”
오늘을 생각한다
나의 열두 번째 대통령
1980년대 이후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계엄 포고문이 여러모로 나를 떨게 했다.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4시간 동안은 두려워서 떨었다. 열 살 먹은 딸이 울고 있는 옆에서 덩달아 울었다. 그땐 그렇게 살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입에 재갈을 물고 살거나 재갈을 풀고 죽거나, 나야 물고 사는 편을 선택하겠지만, 나보다 40년 늦게 태어난 딸이 나와 같은 성장기를 보낸다는 것이 서러웠다. 계엄이 해제되고 광장이 열리자 나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홀로 광야에 선 듯한 고립감에 떨었다. 광장에 나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유사한 경험의 축적으로 나는 광장 이후 세상에 일말의 기대도 품지 못하는 비관주의자, 어쩌면 현실주의가 돼 있었다. 응원봉과 K팝, 전에 없던 광장의 미담과 남태령에서 날아든 기적 같은 이야기들로 마음이 녹을 만도 한데, 나만이 서 있는 이 광야에서 그저 먼 나라 소식을 보듯 광장을 관망했다. 4월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읽어 내려간 윤석열 파면 결정문을 들으며 잠시 감동했지만, 광장이 닫히고 대선 공간이 열린 순간 두려움은 현실이 됐다. 누구에게는 광장의 연속이겠지만, 나에게는 광야의 확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