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19 ~ 25
2025.05.23 (금)
자주쓰는 링크
로그인
회원가입
표지이야기
특집&이슈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과학
세계
스포츠
오피니언
연재
검색
연재
주간경향
>
광복 70년 역사르포
(26)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 사저… 군정을 종식시키고 문민시대를 열다
1992년 12월 2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꽹과리와 장구 소리가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적막한 새벽을 깨웠다. 상도동 마을 주민들이 김영삼 대통령(YS) 당선을 축하하러 온 것이다. YS는 주민들에게 휩싸여 집 아래 마을 놀이터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우리의 대통령 김영삼 만세’라는 급히 만든 피켓을 든 주민들과 격의없는 축하잔치를 벌였···
[ 1142호
ㅣ
2015.09.08 ]
(25) 여의도 대하빌딩 옛 평민당사…꺼져가던 지방자치에 불 지핀 단식투쟁
대통령선거가 2년 넘게 남았지만 여론조사기관은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 결과를 보면 대체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김문수 전 경기지사, 남경필 현 경기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이 10위권 안에 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배···
[ 1141호
ㅣ
2015.09.01 ]
(24)잠실종합운동장…독재 합리화와 동서화해 88서울올림픽의 양면성
최근 관심을 끄는 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민들이 생각하는 역사적 사건’을 조사한 결과, 한국전쟁이 72.2%(복수응답)로 1위에 올랐다. 관심을 끈 것은 2위가 바로 서울올림픽 개최(64.1%)라는 것이다. 88서울올림픽은 3위인 8·15 광복(62.7%)보다 높았다.(노무현 전 대통령···
[ 1140호
ㅣ
2015.08.25 ]
(23)남영동 대공분실~연세대… 박종철·이한열, 6·10항쟁 불씨가 되다
기자는 고등학교 시절인 1976년 서울역에서 전철을 타고 학교가 있는 용산역까지 통학했다. 그 중간 남영역 앞에 한 건물이 신축 중이었다. 검은 벽돌로 창문도 좁게 짓는 이 건물은 마치 토치카를 쌓는다는 느낌을 줬다. 물론 이 건물이 무슨 용도이며, 누구의 소유인지도 몰랐다. 이 건물의 정체가 드러난 것은 한참 후다. 1987년 1월···
[ 1137호
ㅣ
2015.08.04 ]
(22) KBS와 여의도 광장…전세계를 울린 혈육찾기 생방송
“9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똔~ 똔~ 똔~ 땡! …(9시 뉴스 타이틀 음악) 안녕하십니까? 오늘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는 ….”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 그날 가장 중요한 TV 9시 뉴스는 이렇게 시작됐다. 9시를 알리는 ‘땡’ 소리와 함께 ‘전두환’이 나온다고 해서 ‘땡전뉴스’라고 불렀다. 당시 2개밖에 없던 TV채널 KBS와···
[ 1136호
ㅣ
2015.07.28 ]
(21) 전남대 정문~금남로…5·18광주민중항쟁,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빛이 되다
1980년 5월 17일 밤 9시. 총에 대검을 낀 군인이 중앙청 일대를 경비하는 가운데 국무위원들이 국무회의장에 도착했다.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안건을 의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무회의에서 여성 국무위원인 김옥길 문교부 장관이 잠시 이의를 제기했으나 계엄 확대를 의결하고 8분 만에 끝났다. 그날 밤 11시40분 이규현 문화공보부 장···
[ 1135호
ㅣ
2015.07.21 ]
(20)12·12 군사반란 현장… 국가권력 찬탈을 노린 정치군인들의 하극상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 정문 안쪽에 ‘전쟁기념관’이라는 표석이 있다. 그런데 이 휘호를 쓴 사람이 ‘1993년 12월 25일 대통령 노태우’로 돼 있다. 1993년 12월이면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데 어찌 이런 오류가 발생했을까. 이 전쟁기념관을 계획하고 추진했던 노 대통령이 표석 휘호를 미리 써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1988년 노 대···
[ 1134호
ㅣ
2015.07.14 ]
(19)원주 원동성당-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유신 항거 ‘행동하는 신앙’ 태동하다
지난해 가 창간 69주년을 맞아 강원도민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전국 평균보다 무려 5.8%포인트 높았다. 또 ‘스스로 어떤 이념적 성향을 가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보수(37.7%)라는 응답이 가장 많고 중도(29.7%), 진보(21.9%) 순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전국 ···
[ 1133호
ㅣ
2015.07.07 ]
(18)유신체제의 종언-궁정동 안가… 영구집권 야욕 쓰러뜨린 ‘총성’
권력자는 치욕의 역사를 숨기고 싶어한다. 자신 혹은 선대의 치부를 숨김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치욕의 역사도 분명 역사다. 기억에서 잊혀진다고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권력자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것이 바로 역사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송파구 잠실 석촌호수에 있는 ‘대청황제공덕비’가···
[ 1132호
ㅣ
2015.06.30 ]
(17) 유신체제-장충체육관… 정통성 없는 정권의 코미디 ‘체육관 선거’
1972년 10월 17일 저녁 7시. 갑작스런 대통령 특별선언이 예고됐다. 국민들은 TV와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박정희 대통령은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우리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희구하는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아들여… 나의 중대한 결심을 국민 여러분 앞에 밝히는 바입니다”라고 연설을 시작···
[ 1131호
ㅣ
2015.06.23 ]
(16) 광주대단지 사건-옛 성남출장소… 정부수립 후 최초 도시빈민 투쟁
인구 100만명에 육박하는 경기도 성남시는 분당으로 알려진 신도시가 중심이지만, 과거에는 수정로 숫골사거리가 도심이었다. 아래층에 이마트 성남점, 위에는 고급 아파트가 들어선 신세계 쉐던주상복합 자리가 바로 옛 성남시청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1964년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출장소가 들어선 이후 성남시청이 여수동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지역행정···
[ 1130호
ㅣ
2015.06.16 ]
(15) 전태일 분신 평화시장… 한국 노동운동의 순교자 ‘노동의 가치’를 일깨우다
역사에서 기원전과 기원후를 구분을 하는 A.D.와 B.C.는 ‘예수 탄생 이전과 이후’를 의미한다.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세계 역사가 크게 달라졌다는 의미이다. 요즘 안전과 관련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표현으로 ‘세월호 이전과 이후’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시대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 사건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노동운동사에서 시···
[ 1129호
ㅣ
2015.06.09 ]
(14) 경부고속도로-추풍령…건설근로자 순직 위령탑 조근근대화 ‘날림의 유산’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물건은 무엇일까. 물론 국민이나 애국심 같은 무형의 재산은 제외하고 실제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말이다. 민간·국가를 합해 장부가액으로 가장 비싼 것은 바로 경부고속도로다. 서울에서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0조8806억원이다.(2013년 회계연도 국가결산 기준) 이는 대한민국 국···
[ 1128호
ㅣ
2015.06.02 ]
1
2
3
이번호 기사 베스트
지난호 기사 베스트
1
“두 번 안 당한다” 버틴 중국…급한 미국, 사실상 후퇴했다
2
(32) “100만 표심 잡아라”···52년 만에 해병대 대장 탄생하나
3
‘뽀득뽀득, 쓱싹쓱싹’···편안히 쉬세요, 소리 들려드릴게요
4
‘중국의 저축’이 미국을 화나게 한다···무역전쟁의 속사정
5
(2) 쿠팡의 질주가 드리운 그늘
6
시기상조냐, 이미 온 미래냐···대선 의제로 부상한 ‘주 4.5일제’
7
(5) 카슈미르 충돌과 아프가니스탄의 유령
8
(26) 코알라의 죽음이 남긴 질문
1
급식실이 멈추자 일그러진 얼굴이 드러났다
2
내란의 밤, 대선후보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3
“한덕수·최상목 부재 차라리 잘돼···미와 협상 시간 벌었다”
4
그는 왜 반동성애를 신앙화했을까
5
(31) 귀향길에 들은 아버지의 인간관계 원칙
6
어느 ‘대선탕’에서…
7
요산 높으면 통풍? 심혈관도 아프다
8
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시사 2판4판
쇄신은…여전히…
주간 舌전
“노무현 따라 꼬마 민주당 갔다면…”
오늘을 생각한다
나의 열두 번째 대통령
1980년대 이후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계엄 포고문이 여러모로 나를 떨게 했다.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4시간 동안은 두려워서 떨었다. 열 살 먹은 딸이 울고 있는 옆에서 덩달아 울었다. 그땐 그렇게 살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입에 재갈을 물고 살거나 재갈을 풀고 죽거나, 나야 물고 사는 편을 선택하겠지만, 나보다 40년 늦게 태어난 딸이 나와 같은 성장기를 보낸다는 것이 서러웠다. 계엄이 해제되고 광장이 열리자 나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홀로 광야에 선 듯한 고립감에 떨었다. 광장에 나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유사한 경험의 축적으로 나는 광장 이후 세상에 일말의 기대도 품지 못하는 비관주의자, 어쩌면 현실주의가 돼 있었다. 응원봉과 K팝, 전에 없던 광장의 미담과 남태령에서 날아든 기적 같은 이야기들로 마음이 녹을 만도 한데, 나만이 서 있는 이 광야에서 그저 먼 나라 소식을 보듯 광장을 관망했다. 4월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읽어 내려간 윤석열 파면 결정문을 들으며 잠시 감동했지만, 광장이 닫히고 대선 공간이 열린 순간 두려움은 현실이 됐다. 누구에게는 광장의 연속이겠지만, 나에게는 광야의 확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