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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역사르포
(39) 세월호 침몰 진도 팽목항… 졸속·망각에 불신 더한 ‘대한민국의 민낯’
분향소에는 촛불만 껌벅거리고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나이 지긋한 여성이 조용히 신발을 벗고 들어와 무릎을 꿇고 십자가 성호를 그었다. 일어서는 그의 얼굴에는 눈물이 맺히다 못해 주르륵 흘렀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벌써 없었던 일처럼 된 것이 가슴 아프다, 우리나라 사람은 너무 빨리 잊는 것 같다”고 말하며 흐느꼈다. 나이가 예순 여덟이···
[ 1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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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9 ]
(38)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케케묵은 칼로 ‘민주주의 목’을 베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매년 11월 말을 기준으로 ‘디딤돌 판결’(최고의 판결)과 ‘걸림돌 판결’(최악의 판결)을 선정한다. 민변이 2015년 올해의 걸림돌 판결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선정했다. 민변은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자유와 다원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공개한 것”이라고 선정 이유···
[ 11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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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2 ]
(37)역삼동 오피스텔 607호…국정원 대선 개입 ‘역사 퇴행의 현장’
12월의 서울 강남대로는 번득이는 전광판 조명과 가로등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 조명으로 흥청거린다. 하지만 이면도로를 끼고 바로 한 블록만 들어간 곳에 위치한 성우 스타우드 오피스텔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아마 오피스텔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어 호텔이나 유흥주점 같은 것이 허가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용하게 일을 하기에는 적격이었다···
[ 11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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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5 ]
(36) 천안함 침몰… 무능 정권이 만든 안보교재·안보프레임
초계함이란 배수량 1000톤 내외의 군함으로 정(500톤급)보다 크고, 구축함(3500톤 이상)보다 작다. 초계함은 연안에서 경비 임무를 맡지만 기관포와 함포, 대함 미사일까지 탑재해 공격 능력도 뛰어난 전함이다. 음파탐지기가 있어 대잠수함 능력도 갖추고 있다. 1998년부터 3000톤이 넘는 한국형 구축함이 배치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초계···
[ 11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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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8 ]
(35)봉하마을 부엉이 바위… 부정과 불의의 구체제에 스스로 몸을 내던지다
11월 17일 오후, 늦가을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은 많았다. 관광버스도 몇 대 들어왔다. 사람들은 뒷짐을 지고 말 없이 묘역을 이리저리 걸었다. 1960년대 베스트셀러였던 라는 책이 생각났다. 사건으로 구속된 양수정 편집국장은 서대문형무소 사형집행장으로 가는 조용수 사장을 비롯한 사형수의 마지막 모습을 관찰했다. ···
[ 1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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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1 ]
(34) 4대강 강천보… 과학을 정치로 오염시킨 애물덩어리 건조물
강원 태백시 대덕산 검룡소에서 시작한 남한강은 강원 정선에서 송천과 합류하고, 영월에서 평창강, 충북 단양에서 도담삼봉을 이루다 충주에서 달천을 만나 강폭을 키운다. 남한강물은 횡성·충주·괴산댐을 지나지만 북한강에 비해 평지가 많아 비교적 ‘편안한’ 여행을 했다. 남한강은 경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을 이루며 드디어 수도 서울···
[ 11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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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4 ]
(33)청계·광화문 광장… 촛불이 모여 거센 횃불이 되다
복잡한 도심 속에 넓게 개방된 장소가 광장이다. 고대부터 광장은 종교·정치·사법의 중심지이자 시민의식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광장은 개방·소통의 장소이며, 집단 의사표시의 장소로 활용됐다. 5·16 쿠데타 군인들이 시청 앞에서 ‘시위’한 것이나, 6·10 항쟁 때 시청 앞에서 노제를 벌인 것, 2002 한·일 월드컵 시청 앞 응원 등···
[ 11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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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3 ]
(32)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노동투쟁의 모든 것 ‘쌍차사태’ 해고자 28명이나 세상 떠나다
지난 10월 12일,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와 거세게 부는 바람 속에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 앞의 허름한 천막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찬바람을 막기 위해 천막 주변을 비닐로 둘러치고, 비닐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군데군데 모래주머니를 놓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곳에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은 ···
[ 1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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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7 ]
(31)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상 초유 현직 대통령 탄핵소추 성난 민심의 역풍을 부르다
여의도가 ‘대한민국 정치 1번지’가 된 것은 1975년 9월 22일 제94회 정기국회가 열리면서부터다. 그전까지 국회의사당은 광화문 뒤에 있던 중앙청(현재는 헐렸음)과 태평로 구 부민관(현 서울시의회)을 전전했다. 전쟁통에는 대구·부산의 극장과 심지어 체육관을 국회로 쓰기도 했지만, 대체로 태평로 국회의사당 시절이 가장 길었다. 정부···
[ 1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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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
(30)고양 금정굴… 민간인 집단학살의 쓰라린 역사 진실을 밝히고 화해를 시도하다
10월 3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 황룡산 기슭에 있는 금정굴에서 조촐한 합동 위령제가 열렸다. 한국전쟁 통에 억울하게 죽은 민간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제였다. 이곳 금정굴은 한국전쟁 중 반공단체와 경찰에 의해 153명이 집단으로 학살된 곳이다. 그러나 정작 희생자의 유골은 고양시 벽제에 있는 한 추모공원에 임시로 안치돼 있다. ···
[ 1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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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3 ]
(29)세종특별자치시… 노무현 정부 지방분권 정책 핵심 행정복합도시로 ‘운명’ 바뀌다
2002년 12월 19일의 제16대 대통령선거는 헌정사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낳았다. 16대 대선은 군인 정치시대를 끝내고, 이어진 3김시대를 마무리하는 첫 선거였다. 게다가 김영삼 정부의 3당합당, 김대중 정부의 DJP연대를 넘는 우리 정치사에서 ‘야합’과 ‘연대’를 벗어난 단독 세력의 첫 집권이었다. 또한 3김시대로 일컬어지는 ‘87년···
[ 1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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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6 ]
(28) 개성공단-남북정상회담의 결실 합작품 관계 경색으로 겨우 명맥 유지
남과 북의 정치 권력자들은 서로 비난하거나 경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협상도 했다. 1972년 7월 4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괴뢰’로 비난하던 북한에 보내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이렇게 이뤄낸 7·4 남북공동성명은 남북정상회담의 시작이었고, 이때 합의한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이라는 3원칙은 남북관계의 기본정석이 됐다. ···
[ 1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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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2 ]
(27)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남대문 시장…경제주권을 잃은 무능한 관료, 금 모아 국난을 극복한 민초들
최근 세계 경제를 뒤흔든 유럽발 경제위기의 진앙지는 그리스다. 그리스는 2010년과 2012년 두 번이나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지원을 받고 긴축재정과 자산 매각을 약속했으나 이행하지 못했다. IMF 구제 프로그램이 종료됐지만 그리스는 부채를 상환하지 못했다. 혹독한 IMF의 요구조건에 맞서겠다며 정권을 잡은 급진좌파연합 ···
[ 1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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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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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카슈미르 충돌과 아프가니스탄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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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코알라의 죽음이 남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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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시사 2판4판
쇄신은…여전히…
주간 舌전
“노무현 따라 꼬마 민주당 갔다면…”
오늘을 생각한다
나의 열두 번째 대통령
1980년대 이후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계엄 포고문이 여러모로 나를 떨게 했다.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4시간 동안은 두려워서 떨었다. 열 살 먹은 딸이 울고 있는 옆에서 덩달아 울었다. 그땐 그렇게 살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입에 재갈을 물고 살거나 재갈을 풀고 죽거나, 나야 물고 사는 편을 선택하겠지만, 나보다 40년 늦게 태어난 딸이 나와 같은 성장기를 보낸다는 것이 서러웠다. 계엄이 해제되고 광장이 열리자 나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홀로 광야에 선 듯한 고립감에 떨었다. 광장에 나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유사한 경험의 축적으로 나는 광장 이후 세상에 일말의 기대도 품지 못하는 비관주의자, 어쩌면 현실주의가 돼 있었다. 응원봉과 K팝, 전에 없던 광장의 미담과 남태령에서 날아든 기적 같은 이야기들로 마음이 녹을 만도 한데, 나만이 서 있는 이 광야에서 그저 먼 나라 소식을 보듯 광장을 관망했다. 4월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읽어 내려간 윤석열 파면 결정문을 들으며 잠시 감동했지만, 광장이 닫히고 대선 공간이 열린 순간 두려움은 현실이 됐다. 누구에게는 광장의 연속이겠지만, 나에게는 광야의 확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