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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인사이드
(19)문화 창조 마케팅, 소비자 친밀도 높여
2012년 10월 14일 오스트리아 출신의 스카이다이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는 고도 12만8100피트(약 39㎞)까지 헬륨 풍선을 타고 올라갔다. 지상관제소와의 교신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게 된 순간 그는 지구를 향해 뛰어내렸다. 그가 낙하한 지점은 에베레스트산의 4배를 넘어 지구의 성층권까지 다다른 곳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존층보다···
[ 13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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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0 ]
(18)성능과 미적 감각 둘 다 높이는 ‘굿디자인’
예전에 한 빈티지 상점에 들른 적이 있다. 많은 물건 중에 유독 낡은 조명 스탠드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전기 플러그는 깨져 있었고, 조명은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제품이었지만 ‘굿디자인’이란 생각에 주저하지 않고 값을 치렀다. 1970년대에 생산된 이 ‘앵글포이즈(Anglepoise)’ 스탠드는 필자가 오랫동안 사고 싶어했던 제품이다···
[ 13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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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3 ]
(17)간판도 없이 오직 ‘한 권의 책만 파는 서점’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서촌에 신기한 서점이 문을 열었다. 흔한 베스트셀러나 추천도서는 없다. 달랑 한 권의 책만 세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매달 한 권의 책이 주인공이 되는 공간인 ‘한 권의 서점’이다. 한 권의 서점은 매달 첫날 단어 하나와 함께 그 단어에 어울리는 책 한 권을 선정한다. 신·구간, 독립출판물 등을···
[ 13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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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7 ]
(16)‘자동차 안전의 대명사’ 변치 않는 이미지
독특한 디자인에 탁월한 운전성능을 지닌 소형차를 들어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 중 하나가 ‘미니(MINI)’다. 소형차의 대명사 미니는 ‘작은 차체, 넓은 실내’라는 콘셉트로 1959년 영국의 브리티시 모터 컴퍼니(BMC)에서 처음 제작됐다. 소형차면서도 1964~1967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4회 연속 우승하며 강인한 이미지···
[ 13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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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0 ]
(15)100년 넘게 ‘개인의 취향’을 써내려오다
1991년 12월 25일 소련 최초의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1985년 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된 뒤 추진했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의견 충돌과 쿠데타,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때문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소비에트 연방 해체 문서에 공식 서명을 하려던 찰나 자신이 펜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알았다. 곁에 있던 ···
[ 13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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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3 ]
(14)커피전문점을 넘어 디지털 기술 혁신
외근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커피전문점에 들른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매장을 찾으면 앱이 내비게이션 역할까지 수행해 길 안내를 해준다. 동시에 즐겨 마시는 커피도 미리 충전된 코인으로 자동 결제해 주문할 수 있다. 매장에 도착하면 커피를 받은 뒤 커피전문점에서 제공하는 블록체인을 활용해 거래처에 돈을 보···
[ 13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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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6 ]
(13)소비자와 적극적 관계 맺기 ‘요가복의 샤넬’
얼마 전 평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룰루레몬(lululemon) 플래그십스토어를 방문했다. 손님은 대부분 20대부터 60대까지의 여성들이었다.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으로 선반을 탐색하고 있었고, 매장 안쪽 탈의실 앞에선 두 명의 여성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여러 원단으로 제작된 하의를 입어 보며 비교 분석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 13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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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9 ]
(12)고객 편익 개선, 소비자의 ‘관심’을 꿰뚫다
최고의 마케팅 전략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소비자의 편익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기업이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면 거래가 종료된다고 생각한다. 현명한 기업과 유능한 브랜드는 정반대다. 소비자의 더 많은 편익을 위해 가치 있는 유·무형의 요소를 찾아 제공한다. 전 세계 1억80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
[ 13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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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2 ]
(11)농구 황제의 ‘신념’을 기반으로 한 신발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1997년 다시 애플을 이끄는 자리로 복귀했다.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퇴출당했다가 극적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애플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광고 캠페인을 펼쳤다. 광고는 “여기 미친 사람들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앨버트 아인슈타인·밥 딜런·마틴 루터 킹 등 무언가에 미친 사람이자 창의적인 사고와 발상으로 최고가 된 사람들을 차례로 선보이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의 신념이 진짜로 세상을 바꾼다는 내용을 담았다. 소비자 마음속에 자리 잡는 브랜드 애플의 사례는···
[ 13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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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5 ]
(10)어묵에 대한 ‘생각의 틀’을 바꾼 차별화
어묵은 보통 흰살생선 등을 뼈째 잘게 으깬 뒤 약간의 밀가루를 넣고 묵처럼 뭉쳐 익힌 음식을 지칭한다. 대개 튀기거나 삶아서 익힌다. 국내에선 요리를 가리키기도 하고, 그 요리에 쓰이는 재료를 가리키기도 한다. 조선 숙종 45년인 1719년에 궁중 잔치에 관해 기록한 <진연의궤> ‘생선숙편’ 등에서 오늘날의 어묵과 유사한 찬품을 소개하고 ···
[ 13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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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
‘진짜 업사이클링 제품’의 기준을 만들다
고객 불만이 가장 적은 항공사, 시간을 잘 지키는 항공사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회사가 있다. 1967년 불과 3대의 보잉 비행기로 항공 운송업에 진출한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성공전략은 남달랐다. 활용도가 떨어지는 지방 공항을 이용해 부대비용을 절감했고, 비행기 기종을 하나로 통일시켜 조종사 교육과 부품 재고 ···
[ 13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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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1 ]
(8)‘완벽한 품질’ 고집하는 철저한 장인정신
1912년 4월 10일 타이타닉호는 기념비적인 첫 운항에 나섰다. 영국의 사우샘프턴을 떠난 이 대형 호화 여객선은 프랑스와 아일랜드를 거쳐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수많은 명사를 포함한 승객과 승무원 등 총 2200명 이상이 몸을 실었다. 타이타닉호는 20층 건물 높이에 길이 269m, 너비 27.7m로 지금의 유람선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 1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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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5 ]
(7)본질에 충실한 ‘꼭 가봐야 할 이색 도서관’
NHN 재팬 최고 경영자로 일본에서 ‘라인’ 메신저의 성공신화를 쓴 모리카와 아키라가 그보다 앞서 소니(SONY)에 입사했을 때 일이다. 그는 텔레비전에 인터넷을 연결해 새로운 서비스를 구축하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TV사업부의 기술자들이 “텔레비전은 인터넷과 연결하는 기기가 아니다”라며 반대해 그의 제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가 쓴 책···
[ 13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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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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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카슈미르 충돌과 아프가니스탄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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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상조냐, 이미 온 미래냐···대선 의제로 부상한 ‘주 4.5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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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코알라의 죽음이 남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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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실이 멈추자 일그러진 얼굴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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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반동성애를 신앙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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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귀향길에 들은 아버지의 인간관계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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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선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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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 높으면 통풍? 심혈관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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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시사 2판4판
쇄신은…여전히…
주간 舌전
“노무현 따라 꼬마 민주당 갔다면…”
오늘을 생각한다
나의 열두 번째 대통령
1980년대 이후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계엄 포고문이 여러모로 나를 떨게 했다.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4시간 동안은 두려워서 떨었다. 열 살 먹은 딸이 울고 있는 옆에서 덩달아 울었다. 그땐 그렇게 살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입에 재갈을 물고 살거나 재갈을 풀고 죽거나, 나야 물고 사는 편을 선택하겠지만, 나보다 40년 늦게 태어난 딸이 나와 같은 성장기를 보낸다는 것이 서러웠다. 계엄이 해제되고 광장이 열리자 나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홀로 광야에 선 듯한 고립감에 떨었다. 광장에 나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유사한 경험의 축적으로 나는 광장 이후 세상에 일말의 기대도 품지 못하는 비관주의자, 어쩌면 현실주의가 돼 있었다. 응원봉과 K팝, 전에 없던 광장의 미담과 남태령에서 날아든 기적 같은 이야기들로 마음이 녹을 만도 한데, 나만이 서 있는 이 광야에서 그저 먼 나라 소식을 보듯 광장을 관망했다. 4월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읽어 내려간 윤석열 파면 결정문을 들으며 잠시 감동했지만, 광장이 닫히고 대선 공간이 열린 순간 두려움은 현실이 됐다. 누구에게는 광장의 연속이겠지만, 나에게는 광야의 확장이었다.